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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들은 갇혀 있기를 거부한다.
2021년 제100회 뉴베리상 수상작이다.
뉴베리상은 안데르센상,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과 함께 '아동문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최고의 아동문학상. 미국 아동문학 발전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작품(작가)에 메달이 주어진다.
표지부터 한국 전래동화를 보는 것 같은 소설책이다
나는 투명 인간이 될 수 있다.
로 시작하는 소설.
그만큼 존재감 없는 성격으로 조아여(조용한 아시아 여자애)로 불리는 여자아이 '릴리'가 주인공이다. 갑작스럽게 할머니와 살기 위해 이사하는 차 안에서 이야기는 시작하는데, 릴리는 길 위의 거대한 호랑이를 발견한다. 엄마와 언니는 보지 못하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호랑이'.
우리의 옛이야기에는 늘 호랑이가 등장했다. 호랑이가 등장하는 이야기도, 호랑이가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도 "옛날 옛날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로 시작하곤 했다.
길가에서 '호랑이'를 만난 '릴리'도 어린 시절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살았다.
옛날 옛날에 호랑이가 사람처럼 걷던 시절에..
'언니야'와 '애기'가 나오는 '해님 달님' 이야기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책을 읽다 보니 작가가 궁금해졌다.
저자 : 태 켈러(Tae Keller)
한국계 여성 작가. 데뷔작 '깨지기 쉬운 것들의 과학'이 있고 한국인 할머니가 해 주신 이야기를 쓴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으로 뉴베리상을 탔다. 1998년 아메리카 북어워드 수상작 '종군위안부'의 작가 '노라 옥자 켈러'의 딸. '태(Tae)라는 이름은 외할머니의 이름 '태임'에서 첫 글자를 따 지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주인공과 같이 할머니 집에서 도서관에서 호랑이를 보고, 할머니가 숨긴 이야기를 궁금해했다. 도대체 그것은 무엇이었으며, 과연 호랑이는 약속대로 할머니를 낫게 해 줄 것인가 아니면 그저 '해님 달님'이야기 속 호랑이처럼 속임수였을까.
신비로움을 가득 품고 있는 할머니는 과연 어떤 것을 숨겨놓고 있는 것일까.
워싱턴주의 '선빔'에서 다른 사람이 보기에 '마녀의 집'같아 보이기도 하는 할머니의 집과, '길일'을 따지는 행동과 떡을 만들고 영혼들을 위해 고사를 지내는 행동 들은 한국 문화에 있는 나에게는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이 이야기 속 배경은 꼭 어릴 적 이야기책을 읽을 때 숲속 요정이나 착한 마녀가 사는 장소 같다는 기분도 들었다.
배경지식 없이 그저 이야기만을 읽었을 때, 처음에는 실제로 '호랑이를 보는' 주인공인가 싶기도 했다. 흥미진진한 판타지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주인공이 새로 만나는 이웃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따라가며 읽다 보니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한 데 엮이고, 숨겨진 이야기가 드러나고, 갈등이 해결되는 과정이 반짝거리면서 따뜻하게 느껴지는 책.
나는 할머니 집을 올려다본다. 한눈에 봐도 마법에 둘러싸인 집 같다. 19p
할머니 침실, 화장실, 그리고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곳이다. 그 지하실 계단의 문 앞에 마치 바리케이드처럼 뭔가 잔뜩 쌓여있다. 무늬가 조각된 전통 한국식 수납장과 판지 상자들이다. 27p
우리 같은 아시아계 여자애들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고정관념을 뜻하는 말. 언니는 그 고정관념에 들어맞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모른다. 32p
화장실 안에 그림자로 된 짐승이 있다. 까만 비늘로 뒤덮인 그것이 몸을 숙인 채 들썩거린다. 마치 뼈가 모조리 부서진 것처럼 울고 움직인다. 내 심장이 완전히 얼어붙는다. 하지만 그때 그 짐승의 그림자가 빠져나가고.. 짐승이 아니다. 우리 할머니다. 그리고 무언가가 잘못되어있다. 56p
"나는 조그만 마을 사는 조그만 여자애여도 꾀 많았어. 호랑이 동굴 밖에 몰래 숨어서 호랑이 잠들 때까지 기다렸어. .. 그리고 내가 그 별들, 그 나쁜 이야기들을 주먹으로 쥐어서 유리 단지 안에 넣었어. ... 숲속에서 바위를 하나씩 가지고 와서 동굴 입구에 쌓았어. 호랑이들이 그 벽 안에 갇혔어."63p
하지만 나는 화가 난다. 가끔 엄마가 생각하는 나는 완전히 다른 아이이기 때문이다. 진짜 내가 아닌, 나와 비슷한 아이를 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71p
"나 아주 어릴 때, 우리 엄마가 떠나기 전에 중요한 얘기 해줬어. 사람 전부 속에 좋은 면, 나쁜 면 있어. 그런데 가끔 인생의 슬픈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에만 집중해서 좋은 면 잊어. 그런 사람한테 나쁘다고 이야기하지 마." 107p
부엌에서 그림자들이 움직이고 늘어나 모양을 이루기 시작한다. 그 모양들이 모여서 한 덩어리가 된다. 그 거대한 그림자가 걸음을 내디뎌 별빛 속으로 들어서자 호랑이가 된다. 자동차처럼 커다란 그 호랑이가 집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다. 114p
"네 할머니가 가둬 둔 이야기를 릴리 네가 풀어 주면 할머니는 나아질 거야. 그 별들이 계속 갇혀 있으면 할머니가 아프고 말이야 ... 거래를 제안하는거야. 넌 내가 그 이야기들을 되찾게 도와줘. 그러면 나는 그 별들을 제자리인 하늘에 돌려놓을 거고, 넌 두 번 다시 그 이야기 걱정을 안 해도 돼." 117p
엄마가 운다면 할머니의 병이 아주 심각한 것이 분명하다. 이제 난 아래층에서 난 소리가 정말로 호랑이 소리였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게 그 어떤 호랑이보다도 무서우니까. 121p
내가 병 속 먼지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은 별들처럼 보인다. 어느 은하의 축소판이 통째로 유리 속에 갇힌 것 같다. 나는 '조아여'인 것이, 겁이 나서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이 지긋지긋하다. 이제는 영웅이 되어 보고 싶다. 174p
"이제 보니 너도 속에 호랑이가 있는 모양이야." ... 잠시, 그 말이 거의 사실처럼 느껴진다. 나 자신이 맹렬하고 강한 것 같다. 천하무적 같다. 내 이빨이 칼날이 되고 내 손톱이 호랑이 발톱으로 변할 수 있는 것처럼. 246p
엄마의 판단이 그리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말해 주고 싶다. 엄마가 아는 이야기에서 언니는 늘 함부로 행동하는 아이, 나는 늘 투명 인간이다. 하지만 온 세상 화를 언니만 낼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다. 252p
"엄마는 할머니가 엄마라서 부끄러웠던 적 있어?" 내 입에서 빠르게 흘러나온 질문이다. 거의 호랑이와 대화할 때만큼이나 세게 심장이 뛴다. 질문을 하는 것이 야수를 마주하는 것만큼이나 무서운 일 같다. 255p
나는 초록색 유리 단지를 집어 던지고, 벽에 부딪힌 그 병은 폭발한다. ... 그런데 말이다, 그 단지를 깨트리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냥, 도저히 다 견딜 수가 없다. 그 모든 희망과 두려움과 강인함과 힘. 그 모든 이야기와 대가와 불확실함. 내 안에 넣고 꽉 닫아 두기에는 너무 많다. 284p
나는 천둥이고 번개다. 통제가 되지 않는다. 남은 것은 작고 파란 단지뿐이다. 마지막 것. 아직 마지막 이야기로 채워져 있는 단지. ... 나는 마지막 별 단지를 던진다. 285p
조용하고 엄마 말씀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내면에 잠들어 있던 본연의 존재 '호랑이 소녀'를 자각하는 이야기로 발전한다. 이야기 속 '호랑이 소녀'는 낮에는 인간이고 밤에는 호랑이로 변한다. 거칠고 통제할 수 없고 진실을 말하고 언제나 더 원하는 호랑이와, 더 원하면 안 되고 남을 도와야 하며 조용해야 하는 '인간 여자아이'의 '두 갈래 삶' 속에서 고통받는다.
"4분의 1만 한국인"이라고 나는 대답했다. 하자마자 잘못된 대답이라 느꼈다. 한국인이냐는 질문에는 언제나, 퍽 단순하게도, 그렇다고 하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내 피를 부분 부분으로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329p. 저자의 말.)
서로 다른 내면에 갈등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한국계 소녀'로 자랐던 저자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식민지 지배와 전쟁과 가난 속에서 용감하게 삶을 헤쳐 나간 한국 여성들과 그 딸들을 나타내기도 하는 것 같다.
이 스토리는 '강인한 한국 여성들 5대의 연대기'이기도 하지만, 과연 그것뿐일까.
어떤 이야기는 '고통'이다. 호랑이는 그 '고통'과 마주하라고 요구한다. 암울한 시대적 배경의 한국 여성들 말고도 많은 이들에게 호랑이가 요구하는 그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고통'을 '유리병에 갇힌 이야기'로 풀어낸 스토리도 놀랍지만, 그것을 깨고 나오는 주인공과 할머니의 모습에 억압되어 있던 무언가에서 해방된 느낌도 들고 놀라우면서 감동스럽다.
괜찮아. 완벽하지 않아도 맛있을 수 있어.
322p
한국 전래동화와 단군신화, 판타지가 모두 다 들어있는 많은 것을 품고 있는 굉장한 이야기이다.
아이들을 위한 아동 소설이지만, 덕분에 오랜만에 정말 멋진 소설을 읽었다.
추가.
나는 샘플북을 받았다. 처음엔 중간중간 매끄럽지 않은 문장들이 있어서 교열이 다 안 되어서 그런 건가 싶었는데, 엄마를 찾아 미국으로 떠나온 뒤 영어가 서툰 할머니의 표현이 그대로 담긴 것이었나 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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