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인턴을 시작한 건 작년 11월이었다. 들어가기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코로나 시국인 걸 감안해서 온라인으로 진행되긴 했지만, 영어 면접에 영문 이력서 작성을 며칠텀으로 쳐내는 것부터 버거웠다. 학교가 매칭해준 외국의 취업 회사는 우리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영어 면접 동안 내 영어 수준을 파악하더니 원래 가고 싶던 무역 회사는 안 되겠다고 잘랐고, 영문 이력서 피드백을 요구했을 땐 계속 답장을 미루며 제대로 된 피드백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난 운이 좋았다. 영어 실력이 네이티브가 아니었지만, 무역 회사에 가고 싶다는 강렬한 어필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외국의 무역 회사에서 인턴을 시작했다. 인턴답게 단순 업무를 맡았다. 시차 때문에 매일 새벽에 출근하는 게 고역이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그게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 인턴 기간이 끝나갈 때쯤 직원 제의를 받았다. 정규직은 아니고 외주 개념이지만 일을 더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좋았다. 회사 사람들도, 이 회사가 하는 일도 모두 좋았다. 그렇게 인턴과 직원 사이의 애매한 포지션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절망에 빠졌다. 인턴 시절과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 인턴 때는 방대한 양의 업무 하나를 6주에 걸쳐 진행하는 것이라 매일 할 만큼 하고 보고하면 다였다. 하지만 신입이 된 뒤에는 매일 업무가 바뀌고, 문제가 생기면 직접 해결하고, 그러기 위해 처음 보는 회사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내며 부탁해야 했다. 매번이 갈등의 연속이었고, 자괴감이 이어졌다. 나만 일 처리가 느린 것 같고, 나만 너무 당연한 걸 모르는 것 같았다. 일일이 물어보자니 민폐같았고, 안 물어보고 혼자 하자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이게 더 눈밖에 나는 행동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이런 상황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조금 적응하긴 했지만 헤매는 일이 더 많다. 

　서론이 길었다. 내 이야기를 장황하게 푼 것은 이 책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를 말하기 위해서다. 과감히 별점 만점을 준 것도, 한 줄 소감을 고민 없이 적은 것도 마찬가지다. 

시도 때도 없이 메모하기, 어리버리한 느낌을 주지 않기, 보고하기, 문제 의식 갖기 등의 목차만 보더라도 인턴들이 명심해야 할 사항들을 알 수 있다.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느낀 건 보고하는 방식이었다. 특히나 내가 일하는 회사는 해외에 있어서 국내 회사에 비해 사수 관계가 불확실하다. 그래서 이 일과 밀접하지 않은 상사에게 일일이 보고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피로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고민해왔다. 하지만 이 책을 살펴보면 내가 보고할 때마다 기시감을 느낀 건, 그 사람이 내 보고 자체에 부담을 느낀 게 아니라 보고의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학교처럼 선생님이나 교수님이 먼저 질문하시면 거기에 충실히 대답하는 게 최선의 자세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대화문을 읽어보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주위를 피곤하게 해왔는지 깨달았다.

　이 책을 읽은 뒤 이번 주 내내 좋은 사례를 따라했다. 묻기 전에 확실하게, 질문거리가 나오지 않도록 주어와 목적어를 분명하게 해서 보고했다. 상사는 나에게 아무것도 질문하지 않고, 대신 내 말을 읽었다는 표시로 웃음 이모티콘을 눌러주었다. 그간 위로 쌓인 우리의 대화에 비해 훨씬 깔끔하고 좋은 양상이었다. 

(기존 대화)

- 해완 씨, 000 처리하셨나요?

- 네 어제 마무리했습니다.

- 000 처리할 때 ***도 같이 해주셔야 합니다

- 넵 그것도 기억하고 같이 했습니다

- 네 000 다 된 거면 ###도 연동되어 있나요?

- 연동은 아직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못했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다른 분께 여쭤보고 처리하겠습니다.

대략 이런 패턴이었다. 나는 000 업무에 대해 기존에 들은 대로 ***까지 처리했으나, 역량이나 시간이 부족해 ###까진 하지 못했다. 이런 보고 때마다 스스로가 참 무능력해보였다. 무능한 보고 뒤엔 누구한테 물어보고 배워야 하는지도 고민하느라 스트레스가 배로 늘었다. 차마 저 대화 뒤에 '근데 저 이거 어떤 분께 배워야 하나요?'를 할 순 없지 않은가. 하지만 패턴을 바꾸니 훨씬 나아졌다.

(개선한 대화)

- 안녕하세요. 과장님. 어제 말씀하신 000 ***이랑 함께 처리했습니다. 그런데 ### 연동은 아직 한 번도 처리를 안 해봤습니다. 방법을 배워야 하는데 어떤 분께 연락 드리면 될까요?

- A 대리에게 말해보세요. 수고하셨습니다.

- 안녕하세요. 과장님. A 대리님께 말씀드렸더니 오류가 있어서 당장은 ### 연동이 불가능하다고 하시네요. 대리님 팀에서 오류 해결 후 연락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다시 처리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 (별도의 응답없이 확인했다는 이모티콘)

- 안녕하세요. 과장님. 대리님께 연락 받아서 방금 연동 처리까지 완료했습니다. 

- 네 감사합니다.

이렇게 읽어보기만 해도 대화의 피로감이 훨씬 줄었다. 

　업무의 목표와 방향성에 대해 분명히 인지할 것. 이건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마음에 더 새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한 가장 큰 실수가 일을 1차원적으로 처리한 것이다. 엑셀 파일에 들어가서 필요없는 내역을 지워달라고 했는데, 나는 그 일을 단순히 엑셀에서 중복값을 잡고 지우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예외가 있었다. 애초에 업무 맥락을 이해했다면 하지 않았을 실수다. 일을 하는 이유를 잡아두지 않으면 다음에도 이런 실수를 할지 모른다. 꼭 상기시키자고 다짐했다.

　그외에도 이 책은 평범한 사무직 신입에게 필요한 팁을 많이 담고 있다. 단축기만 해도 그렇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나는 이런 장르의 책은 독자의 니즈를 맞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읽는 사람이 어떤 정보를 얻고 싶어서 책장을 펼쳐들었는지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난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후한 평가를 주고 싶다. 위에 소개한 것 말고도 전화 받는 법, 메일 쓰는 법, 상사에게 다가가는 법, 동료와 잘 지내는 법 등 어디에 물어보기는 어렵고 누가 먼저 알려주지도 않는 정보들이 많이 담겨 있다. 주위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친구가 있다면 손에 꼭 쥐어주고 싶다. 그 친구는 나보다 덜 헤맬 수 있도록.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