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기생 寄生 PARASITE
진화에 대한 호기심에서 생명의 신비에 대한 이해까지!
아주 오래전 한 생물이 다른 생물의 몸속으로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그 생물은 자유를 버리는 대신 안전하고 풍요로운 신세계를 얻었다. 그리고 세상은 이용하려는 기생충과 막으려는 숙주의 소리 없는 전쟁터가 되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서로 자기 삶을 이어가기 위해 이 세상 모든 숙주의 몸 안에서는 기생생물과의 끝없는 대결이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기생충이 진화의 열쇠라는 말이 있다. 남의 몸에 붙어서 사는 작고 별 볼 일 없는 기생충이 정말로 이렇게 중요한 존재였을까? 단순하고도 과학적인 호기심에서 시작된 여정을 통해 우리가 결코 알 수 없었던 놀라운 기생생물의 신비를 살펴보고, 기생충과 숙주의 대결이 생물의 진화를 이끌어온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되었음을 알아본다.
1. 보이지 않는 손
숙주를 조종하는 기생충!
한 숙주의 몸에서 평생을 사는 기생충도 있지만, 숙주를 옮겨가며 삶을 이어가는 기생충도 많다. 전혀 다른 세상으로 삶의 무대를 옮기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며, 목숨을 건 모험이다. 그래서 기생충들은 새로운 삶의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혹은 살아남아 계속 존재하기 위해 기가 막힌 숙주 조종의 기술을 개발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숲 속의 질서를 지배한다. 어쩌면 외부의 변화에 대한 걱정이나 사냥, 짝짓기의 수고가 없는 기생충의 삶이 진화상으로는 앞서나간 삶일지도 모를 일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마저 조종하는 메디나충, 숲 속 곤충계에서 먹이사슬의 정점을 차지하는 사마귀가 물로 투신자살을 하도록 조종해 물속으로 돌아가는 연가시, 자신의 새로운 삶을 위해 숙주를 천적에게 갖다 바쳐 다음 숙주에게로 옮겨가는 리베이로이아 온다트레와 머메코네마 네오트로피쿰 그리고 구두충, 숙주의 성과 번식까지 완벽하게 조종하는 기생 따개비를 통해 숙주를 조종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효과적이고 풍요롭게 만드는 최고의 전략가 기생충을 만나본다.
2. 끝없는 대결
기생충에 맞서는 숙주들의 끝없는 반격!
기생충은 가장 성공적인 생물의 형태일 뿐만 아니라 수적으로도 이 세상 생물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렇다면, 대부분 기생충과 얼마 안 되는 숙주들의 관계는 너무 일방적인 것이 아닐까? 애벌레, 나비, 얼룩말, 잎꾼개미 등을 살펴보면 이들 숙주는 기생충을 몰아내기 위해 겉모양이나 생활형태, 사회구조마저 바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진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유전자를 새로 조합해 기생충에 강한 개체를 만들어내는 성은 기생충과의 투쟁과정에서 얻어낸 전리품이며, 면역력 특히 선천면역물질 중 하나인 눈물은 기생생물을 막아내기 위해 우리 몸이 만들어낸 가장 효과적이면서 강력한 무기이다. 그리고 겸상적혈구빈혈증 발생 지역과 말라리아 발생 지역이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은 숙주의 마지막 무기인 유전적 선택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렇듯 천적에 대항하기 위해 모든 생명체는 나름의 방식으로 대비했고, 가장 효과적인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다양한 사례와 연구결과 및 실험을 통해 때로는 공격적으로 때로는 타협적으로 기생충의 위협에 맞서 진화경쟁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 숙주들을 만나본다.
3. 대결에서 공존으로
기생충을 대하는 우리의 새로운 자세!
유럽인이 낯선 무기와 종교, 그리고 기생충을 가득 싣고 신대륙에 첫발을 디딘 지 한 세기 만에 중남아메리카 인구의 90%가 몰살되었고, 찬란했던 잉카문명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신비의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인류가 지구 상에 처음 나타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는 언제나 기생충과 함께였다. 그렇다면 기생충과 인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공존해왔을까? 군비경쟁을 지양하고 평화를 모색하는 것은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만 필요한 일은 아니다. 기생충과의 진화전쟁은 인류의 역사 이래 지금까지 계속됐지만 둘 간의 거리는 언제나 비슷하다. 정답은 바로 화해와 공존이다. 돼지편충을 통한 자가면역질환인 크론병 치료, 콜레마니 진디벌을 통한 친환경적인 방제법, 톡소플라즈마를 이용한 치매 치료 등 기생충은 더이상 인류의 적이 아니라 든든한 진화의 파트너이다. 기생충과 숙주는 생명의 긴 역사를 따라 끝없이 대립하고 경쟁하면서 적응과 발전을 거듭해왔으며, 그것이 바로 진화의 역사이다. 다양한 사례와 연구결과 및 실험을 통해 인류와 기생충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4. 기생, 그리고 사람들
진화의 파트너, 기생충!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기생충이 있을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기생일까? 정말 기생충이 진화의 원동력일까? 과학적인 호기심에서 시작되어 기생충을 찾아 떠난 여행은 미국, 영국, 독일, 페루, 파나마를 거쳐 원시의 자연이 살아있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곳에는 기생충뿐만 아니라 기생충이 두렵고, 고통스럽지만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제작기간 1년 6개월에 아시아, 유럽, 남부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5개 대륙에서 촬영 국가만 10개국이 넘는 여정을 통한 새로운 기생충들과의 만남은 미지의 세상, 우리가 알 수 없던 세상과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기생충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촬영했으나 이 여행이 우리에게 이야기해준 것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였다. 기생충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엄청난 존재였으며,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생과 공존, 진화의 파트너로 기생충을 인정하는 일이다. 기생충과 사람들의 이야기, 그동안 보기 어려웠던 다양한 촬영 장면과 실험, 그리고 힘들었지만 보람 있었던 제작 과정의 에피소드를 만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