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작은 희망을 선물하는 마키아벨리의 생애 마지막 역작
무릇 추천사는 저자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출간되는 책의 내용에 대한 상찬賞讚을 목표로 삼는다. 이 책의 저자는 그 유명한 니콜로 마키아벨리이니, 그에 대한 개괄적 인물평은 번역자인 하인후 선생께 맡기기로 한다. 마키아벨리는 흔히 『군주론』의 저자로 소개되고 있지만, 『피렌체사』는 그가 생애 마지막 역량을 쏟아부은 역작이다. 14년이나 재임했던 피렌체 공직에서 막 쫓겨난 마키아벨리가 가난과 익명의 삶을 푸념하며 쓴 『군주론』이 독기를 품고 있다면, 생애 마지막 통찰력을 쏟아부은 『피렌체사』에는 성숙한 지혜가 넘쳐난다. 달랑 『군주론』을 읽고 마키아벨리를 이해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왕십리까지 와서 서울을 봤다고 자랑하는 시골 양반의 허세와 같다. 그가 생애 마지막에 심혈을 기울여 쓴 책 『피렌체사』를 읽어야만 마키아벨리 사상의 전모가 드러난다. 무릇 한 사람의 생애에 대한 평가는 그의 마지막 장면까지 지켜보고 내려야 한다. 모든 것을 가졌던 사람이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때 깨달음을 얻는다. 그것이 바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이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였다. 마키아벨리도 모든 것을 잃었다. 야심작 『군주론』을 헌정하고 메디치 가문의 재임용을 기다리고 있던 마키아벨리는 그 마지막 기대마저 내려놓아야만 했다. 깨끗이 포기했을 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피렌체의 동량棟梁 들이 모여 로마 시대의 고전을 읽으며 함께 공화정의 미래를 꿈꾸던 ‘루첼라이 정원’ 공부 모임의 교사로 초빙된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후기 대표작인 『로마사 논고』와 해학과 풍자로 가득한 『만드라골라Mandragola』와 같은 희곡들이 바로 이 시기에 집필되었다. 마키아벨리 생애 마지막 작품인 『피렌체사』는 그 점에서 매우 포괄적인 전망을 내포하고 있다. 초기 작품인 『군주론』이 메디치 가문에게 바치는 권력 유지를 위한 비책이라면, 중기 작품 『로마사 논고』는 ‘루첼라이 정원’의 젊은 도반들을 위한 권력 획득의 비책이라고 할 수 있다. 『군주론』이 그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군주제의 속성을 파헤친다면, 『로마사 논고』는 로마 공화정 시대의 영광을 분석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마지막 작품 『피렌체사』에서 군주제와 공화제 사이의 양자택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상적인 정체政體를 설명하거나 강요한 것도 아니다. 포기할 것은 깨끗이 포기하고 삶에 대한 집착마저 버린 리어왕의 경지에 오른 마키아벨리는 그 모든 것이 ‘시간의 지배’ 속에 있음을 『피렌체사』를 통해 설파한다. 마키아벨리의 ‘피렌체 역사’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베키오 다리에서 벌어진 참사1216년 이후부터 메디치 가문의 집권1434년까지가 1부이고, 그 이후 코시모 데 메디치의 통치부터 마키아벨리가 집필하는 시점1520년까지가 2부이다. 1부는 공화정의 이상이 펼쳐지던 시대이고, 2부는 군주정의 권력 집중이 발생했던 시대이다. 그러니까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사』를 통해 자기 생애의 주장을 역으로 배치한 것이다. 자신이 쓴 책은 『군주론』군주제에서 『로마사 논고』공화제로 이어졌지만, 피렌체의 역사는 역으로 전개되었으니, 공화제에서 군주제로 넘어간 것이다. 이것은 마치 로마의 역사를 신화로 풀어냈던 베르길리우스가 아이네아스 일행의 지중해 여정을 먼저 쓴 다음, 정착 과정에서 발생한 치열한 정복 전쟁을 뒤에 배치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로마 시대의 베르길리우스는 그리스 시대의 호메로스를 역으로 배치했다. 트로이 전쟁의 역사를 서사시로 풀어냈던 호메로스는 전쟁을 먼저 배치하고「일리아스」 의 내용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뒤에 배치했었다「오디세이아」 의 내용이다. 마키아벨리도 생애 마지막 책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것을 역으로 배치했다. 그리고 두 가지 정체가 가진 장단점을 동시에 드러내고, 두 정체를 이상적인 정치 형태로 추구하는 양쪽 진영 모두에게 경고의 말을 남긴다. 평민들의 자유를 추구했던 공화정 시대를 향해 자유를 지키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고 난 다음에 자유를 추구하라고 경고했다. 피렌체 군주제의 실체였던 메디치 가문을 향해서는 시대의 변화를 직시하라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공화정이냐, 군주정이냐의 선택을 놓고 마키아벨리를 ‘평가’하거나 ‘절하’하는 것은 그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마키아벨리는 괘념치 않았다. 그가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한마디로 ‘시대의 요청’이었다. 그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잘 성찰하라는 것이다.
무릇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은 읽기 어렵다. 역사적 배경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문장의 의미는 오독誤讀되기 일쑤다. 이탈리아 학자들에게도 마키아벨리의 글은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다가 갑자기 상상력을 발휘하는 재기발랄한 마키아벨리의 글을 번역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붉은 백합의 도시, 피렌체』에서 나와 함께 호흡을 맞춘 하인후 선생은 그 점에 큰 노고를 하셨다. 그 책에서 부분적으로 소개되었던 마키아벨리의 전모가 이 번역 완전체를 통해서 잘 드러날 것이라 기대한다. 이 어려운 책을 번역한 하인후 선생께 찬사를 드리면서 동시에 짧은 위로의 말씀도 드려야겠다. 각고의 노력 끝에 번역서를 출간했지만, 기대처럼 그렇게 많은 독자가 이 책을 읽지 않을 것이라는 슬픈 현실에 관한 것이다. 베스트셀러를 원한다면 독자가 원하는 글을 써 주면 된다. 대중이란 원래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대변해 줄 수 있는 글을 찾는다. 가난한 자들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삶에 지친 청년들이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는다. 그래서 고단한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공화정과 군주정의 희망과 횡포 사이에서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마키아벨리가 『피렌체사』에서 제시했던 공화정과 군주정의 조화, 시대의 흐름에 대한 통찰력에 대해 이해한다면 좋으련만, 한국의 독서 대중들은 이 책을 쉽게 손에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고 권력을 잡아보겠다고 날뛰는 사람들이 허다한 이 시대에, 그의 마지막 책 『피렌체사』가 번역되고 출간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에게 작은 희망이 남아 있음을 확신한다. 부디 이 어려운 책이 소수의 현명한 독자에게나마 희망을 선물하게 되기를!
- 김상근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교수)
그 찬란했던 로마제국의 행방에 대한 단서
유럽 역사에서 이탈리아는 하나의 이채異彩다. 로마제국 쇠퇴 이후 1,000년 넘게 작은 도시들로 나뉘었지만, 피렌체 하나로도 어지간한 강국 대접을 받았다. 일찌감치 이탈리아가 통합됐다면, 유럽의 국경은 지금과 달라져도 한참 달라졌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눈여겨본 것은 이제 유럽의 변방 같은 이탈리아, 그리고 피렌체에 관한 관심보다는 바로 그 찬란했던 로마제국의 행방이었다. 게르만족의 남하로 제국이 무너지고, 황제와 기독교 세력의 충돌을 거쳐 19세기 이탈리아로 통일될 때까지의 잃어버린 고리다. 로마가 망해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나름의 생존을 통해 현재까지 올 수 있었다는 단서를 독자 여러분도 『피렌체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당시의 분열상을 이웃집 얘기처럼 정연하게, 지독하리만치 엄중하게 정리했다. 역사 속 이탈리아, 피렌체는 그토록 인문적이고 문화적이면서도, 또 그토록 야만적이고 잔인했다. 세속군주도 교황도 권력과 재물 앞에 존엄을 잃고, 몰락한 제국의 귀족은 당연했을 미덕 없이 탐욕만 넘쳐났다. 귀족을 몰락시킨 평민은 탐욕만을 배워 광기와 포퓰리즘으로 도시를 타락시키고, 상대 파벌에 대한 맹목적인 적의, 심지어 동료에의 질투로 칼자루를 바꿔 잡는 비열함만이 도시에 가득했다. 외부의 적이든 내부 파벌이든 결국 승리한 쪽도 적이 사라지면 그 즉시 분열했다. 과거 로마제국에서 평민이 귀족과 싸우며 미덕을 배웠다면, 피렌체에서는 모두 관용과 군사적 미덕을 잃으며 비루해졌다. 심지어 외부와의 전쟁은 비열한 용병들만 배를 불려, 결국 피렌체는 ‘전쟁에서 패하면 불행해지고, 승리하면 훨씬 더 불행해졌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다른 국가라면 벌써 무너졌을 분열상 속에서도, 유럽 어느 강국에도 밀리지 않는 구조와 세력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야 말로 피렌체의 위대함이라고 역설한다. 만약 통합을 이뤄냈다면 “피렌체보다 더 우월한 공화국은 적어도 내가 아는 한 현재는 말할 것도 없고 과거에도 없었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함께. 페이지를 넘길수록 지금 우리 사회와 겹쳐지고 역사의 반복에 침울해지지만, 그것이 귀감이든 반면교사든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 이문열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