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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3년 02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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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일부 기기 사용 불가) /PC(Mac) |
파일/용량 | EPUB(DRM) | 35.92MB 파일/용량 안내 |
ISBN13 | 9791169251464 |
2024년 03월 21일 ~ 2024년 12월 31일
2023년 02월 09일 ~ 2024년 12월 31일
상시
13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이 책은 특히 영국에서 인기가 높다. 서구의 근대화 물결과 맞물려 엄청난 찬사를 받았고, 성서 다음으로 많이 팔렸으며, 교과서에도 수록이 되어 있다고 한다. 이 소설이 영국에서, 그리고 서구 사회에서 그토록 반향을 일으킨 이유가 뭘까?
‘영국인(서구인)이 미개인을 문명화시킨다.’ 는 설정은, 제국주의자들의 입맛에 딱 맞아떨어졌다. 자신들의 세력 확장 야욕을 근사하게 포장하는, 그럴싸한 근거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한마디로 로빈슨은 제국주의의 야심을 육화한 인물인 것이다. ( 이러한 까닭에, 이 책을 평가할 때는 외재적 관점의 비중이 더 커져야 마땅하며, 읽는 이들도 이 점에 좀 더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예술은 내재적,외재적 관점에서 살필 수 있는데, 이 책에 대한 평가와 반응은, 문학이 그저 상상의 산물일 수 없는 이유를 잘 보여 주기 때문이다. )
서구 근대 문명으로 포장한 제국주의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다. 제국주의는 무너졌고, 로빈슨은 타격을 받았다. 로빈슨 크루소는 제국주의를 등에 업은 소설이었다. 로빈슨은 나침반이요, 진리요, 등불이요, 스승이요, 미개인 소년 프라이데이는 로빈슨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에 불과했다. (자신의 미모가 더 빛나 보이도록 코러스를 뚱뚱한 여자들로 배치하는 머라이어 캐리의 전략과 다를 바 없다.) 로빈슨은 아름답고 선진적인 문명을 전파하여 미개한 이들에게 등불이 된, 자랑스러운 ‘근대 서구’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러나 제국주의의 검은 속이 폐허의 모습으로 드러나자, 로빈슨의 신화도 빛을 잃고 깨지기 시작한다. 로빈슨은 '계몽'과 '문명화'라는 명분 아래 침략을 일삼던 제국주의의 또다른 얼굴이었다. ‘명작’이라고 추앙하던 소설이 실은 서구 근대 문명의 오만함에 입힌 당의(糖衣) 임을 알았을 때, 그 배신감과 놀라움은 실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제국주의의 넉다운과 더불어 이 책이 재평가, 재조명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프랑스의 한 청년은 이 소설의 양면성과 그 속내를 알고는 충격을 받아, 훗날 로빈슨의 의도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로빈슨 스스로 깨닫게 하는 소설을 쓰게 된다. 18세기 영국 작가가 쓴 소설에서는 신의 섭리가 보편적 진리였던 데 반해, 20세기 프랑스의 작가는 점괘가 로빈슨의 운명을 예고하도록 설정한다. 그리하여 로빈슨은 약은 문명의 껍질을 벗고 자연과 예술을 만끽할 수 있는, 창의적 인간으로 거듭나며, 프라이데이에게 감화된다. 프라이데이는 이 과정에서 로빈슨을 자연인, 창조적인 인간이 되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비중이 커지고, 지위도 격상된 것이다.
그 프랑스 작가는 미셀 투르니에이며, 책의 제목은 <방드르디 혹은 태평양의 끝>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한국과 일본처럼 경쟁심이 높은 나라로, 이 점은 매우 흥미롭다. 투르니에는 격조 높고 세련된 화술과 구성으로 영국의 잔인함과 자만심을 비판함으로써 새로운 상징과 신화를 만들어 냈다(프랑스도 영국과 다름없는 제국주의였음에도 불구하고). 문명이 원시성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원시성이 문명의 폐해를 극복할 대안이라는 점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상당히 크다.
<클래식에 대하여>
명작 소설(클래식)에 끼여 있던 이 책, 로빈슨 크루소.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아주 어릴 때 이 책을 읽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 있는 그림자는 볼 수 없었고, 보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경우에서, 나는 클래식(명작)이라고 하는 것들을 어렸을 때 읽으면 두 번 다시 읽게 되지 않는 경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용(줄거리)를 다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위험한 발상이다. 실제로 우리가 읽은 클래식(로빈슨을 포함한)은, 축약판이거나 출판사 혹은 그 당시 실정에 맞게 짜깁기 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책 내용만 알아도, 정말 그 책에 대해 아는 것일까? 행간과 글이 씌어진 배경, 작가의 성장과정, 책의 평가 등 모든 히스토리에 대해 풍부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책에 더 집중하고, 다시 한번 더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영화도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배우, 감독, 작가에 대한 이해와 정보는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유명 바이얼리니스트 죠슈아 벨의 70억짜리 길거리 연주, 아무도 몰랐다>는 기사는, 아무리 양질의 작품이라도 알아보(듣)지 못하면 소용이 없고, 그저 '선율, 혹은 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정보는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책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다면, 책은 그저 '이야기'일 뿐이다. 이 책이 제국주의의 일 잘하는 하수인, 훌륭한 정치적 도구로 쓰였음을 알기까지 2백 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스스로 발견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니 스스로 발견할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끝내 발견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은 자명하다. 모르고 죽어도 문제될 건 없다. 심지어 이 작품을 아예 읽지 않아도 사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하지만 이왕 읽는 책, 더 재미있게, 의미롭게 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점에서 책 초입에 나온 출판사의 설명이나 옮긴이의 말은 적절하다고 본다. 앞서 리뷰를 하신 분의, 옮긴이의 글에 대한 의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고전 읽기에 몰입한다고 해서 시대착오적 사고를 전승받는다고 한 지적과 '작품 이해에 대한 매뉴얼까지 안내해주는 넘겨짚기는 간곡히 사양하고 싶다'는 말은 심한 '오버'라는 생각이다. 어느 부분이 넘겨짚기였는지 궁금하다. 내가 보기에는 그런 표현도 없었으며, 그런 '불순하고' '김칫국 끼얹는' 뉘앙스 또한 없었다.(옮긴이 김영선 씨의 번역은 <웨이싸이드 학교 별난 아이들>라는 책을 통해 인상 깊게 봤던 기억이 있다.) 또한 옮긴이의 글도 전문이 '제대로' 실려 있는 게 아니라, 글 쓰신 분이 임의로, 본인의 취향대로 짜깁기하신 터라, 문장 자체도 어눌하고, 옮긴이의 의도 또한 상당히 왜곡되어 버렸다. 이런 태도, 오해의 소지를 일으킬 수 있는 편집은 신문이든 방송이든 참으로 위험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옮긴이의 그 글이 이 책의 '해설'이고 '매뉴얼'이라는 해석에 반대한다. 그 짧은 몇 줄 글로 어떻게 이 책을 해설하고, 그 글이 로빈슨의 매뉴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기껏해야 독자 스스로 항로를 찾도록 던져 주는 '실마리' 정도인 데다, 옮긴이의 주관적이고 일방적인 해석이 들어간 판단도 아닐진대(로빈슨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 수준인데), 그걸 마치 옮긴이 자신의 해석인 양, 과잉 정보인 듯, 독자에게 옮긴이의 선입견을 심어준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모두가 인정하는 로빈슨에 대한 평가를 옮긴이 자신의 '넘겨짚기'라고 하는 것을,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알면 좋은 내용들도 많은데, 파란 글씨로 읽어도 안 읽어도 그만일 옮긴이의 글을 굳이 강조한 것도 이해가 안 된다. 그것이 책을 읽고 싶은 독자들의 의욕을 떨어지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된다.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옮긴이의 글에 괜한 주의를 뺏기거나, 선입견을 가질 수 있는 발언보다는, 본문에 나온 의미 있는 문장을 찾아,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호기심을 일으키는 것이 모두에게 더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싶다.
앞으로 더 많은 클래식이 나올 것을 기대하며, 우리나라 독자들이 클래식의 깊이와 품격을 느낄 수 있도록 충실한 번역을 바라마지 않는다. 다른 책들은 번역본들이 많았지만, 로빈슨 크루소의 경우 제대로 된 완역본이 이번에 처음 나와서, 클래식에 열광하는 독자로서, 무척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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