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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2년 01월 0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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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
파일/용량 | EPUB(DRM) | 75.15MB 파일/용량 안내 |
ISBN13 | 9791160893915 |
2024년 03월 21일 ~ 2024년 12월 31일
2023년 08월 04일 ~ 2024년 12월 31일
2023년 02월 09일 ~ 2024년 12월 31일
상시
63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미스터리 소설을 읽다 보면 다음과 같은 유형의 작품들을 가끔씩 만나보곤 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반전 및 놀라운 결말 하나만을 위하여 다소 지루한 앞 부분을 견뎌야만 하는 작품들, 그리고 그 책을 읽는 내내 분명히 힘들었음에도 그 부분들 덕분에 나중에 그 책을 기억할 때는 참으로 놀라웠다는 기억이 더 강하게 남아있는 그런 책 말입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은 많은 이들이 말하기를, 이 책을 무어라 정의하는 게 쉽지 않다고들 하던데,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미스터리 소설 애호가인 제 눈에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앞서 언급한 미스터리 소설에서 많이 보던 구성을 그대로 가져온 과학 도서로 보였습니다. 사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어 보기 전에는 이 책을 이미 읽어 본 많은 이들이 해당 도서에 대한 정보가 적으면 적을 수록 좋다는 말을 하는 것이 이해가 잘 가지를 않았는데, 이제는 물고기는 존재하지는 않는다가 그야말로 소설책과 같은 구성을 가진 과학 책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이제는 저 역시 그분들과 같은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스포일러 당하시기 전에 그냥 빨리 읽어버리세요!
이 책을 완독한 직후의 제 첫 감상평은 삶의 의미를 역사적 위인에게서 찾고자 했던 자자가 그 인물의 업적 뒤에 숨겨진 추악한 면모를 발견하게 되고서는 어떻게 해서든 그의 업적을 깎아내림으로써 저자 나름의 정신 승리를 하기 위한 과정을 담은 책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이 책을 다 읽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그 인물과 저자의 약력에 대해 어느 정도 조사를 해보고 나서는 이 책에 대한 평가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뭐랄까.. 만약 누군가를 진심으로, 그리고 제대로 까내려가려면 이 책의 저자인 룰루 밀러처럼, 그리고 이 책의 구성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을 추천하는 것을 권할 정도로 저자가 참으로 영리한 구성을 선보였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말 그대로 물고기는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한 문장의 과학적 사실에 대해 말하기 위하여 꽤나 긴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었음에도 그 앞의 이야기들이 쓸데없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 또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저자인 룰루 밀러가 작가로서의 필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잘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라고 봅니다.
(이후의 내용은 e북토커의 취지에 걸맞게 추가해 본 주저리주저리)
다만 그 내용을 떠나 읽는 재미가 없는 작품인 건 분명한데, (어찌 보면 과학 도서에서, 그것도 분류학을 주제로 삼고 있는 책에서 재미까지 갖추라고 하는 것은 너무 과한 요구일지도?) 이는 룰루 밀러 작가가 물고기는 존재하지는 않는다를 통하여 말하고자 하였던 바를 보다 극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과정에서 따라올 수밖에 없는 일종의 그림자 같은 것으로 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물고기는 존재하지는 않는다가 챕터를 잘게 찢어 놓는 구성을 취하고 있었다 보니, 그 부분이 지루한 초반부를 넘어가는 데 있어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는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9장부터는 앞서 말했던 소설과 같은 면모가 아주 대놓고 드러나기 시작하다 보니 읽는 속도에도 탄력이 붙었던 것 같은데, 만약 이 책을 읽다가 중도에 때려치울까 하는 생각을 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저를 믿고 거기까지는 버텨보시길 바랍니다.
먼저 이 책의 저자가 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저자가 의도한 질서에서의 해방에 다소 어긋나는 감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럼에도 저는 그 역시 기쁘게 생각하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저 역시 믿는 열역학 2법칙을 남몰래 딸에게 일러주었으나 역시나 새 생명을 임신시켜 자신이 설파한 절망의 굴레를 물려주려 했던 저자의 아버지처럼요. 혼돈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때로는 기만이라 부르는 낙관에 기대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처럼요.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냉엄한 과학적 결론이지만 결국 이 책에 등장한 실존인물 모두는 그 사실에 각자 다르게 반응했습니다.
이 책은 실재했던 어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반추하는 전기이자 에세이입니다. 데이비드는 19세기 말에 태어나 어류를 분류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학자입니다. 어릴 때부터 별자리를 가늠하고 자신이 사는 마을부터 시작해 전세계의 지도를 그려냈습니다. 대학에 진학한 이후로는 찾아낼 수 있는 모든 식물의 표본을 수집하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졸업 후 교사로 일하다 페니키스 섬 학습캠프에서 박물학자 루이 아가시를 만난 후 진지하게 어류를 선택해서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루이 아가시는 자연물 속에서 신의 의도와 질서를 파악할 수 있다고 여겼기에 다윈의 진화론을 부정했습니다. 데이비드는 신을 넘어 진화론을 받아들였으나 루이 아가시의 영향을 크게 받아 자연물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정연한 질서를 알아내고자 했습니다. 수백여종의 물고기를 분류하며 스탠퍼드 부부의 관심을 얻고 후원을 받아 스탠퍼드 대학교의 초대총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연의 질서를 드러내어 견고히 하기를 원했으나 혼돈이 지배하는 세상의 풍파는 그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가족이나 친구를 병으로 잃게 하며 벼락이나 지진으로 그가 수십년에 걸쳐 분류한 연구들을 부수고 헤집어 놓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지진으로 박살이 난 물고기 표본들을 하나씩 수거하여 다시 이름표를 붙이고 연구에 매달려 수천개의 표본을 복원했습니다.
책의 저자인 룰루 밀러는 과학자였던 아버지에게서 일찍이 열역학 2법칙과 혼돈으로만 흐른다는 자연의 통보를 받습니다. 세상은 무의미하고 절망적이며 누구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나름대로 도덕률을 세운 아버지에게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는 조언을 듣고 이에 따라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유년기에 남들보다 모자라 보인다고 방황하는 언니를 목격합니다. 자신 역시 남학생들에게 등급을 품평받으며 자해를 합니다. 성인이 된 후로는 남자 애인을 사귀어 7년을 안정적으로 동거했지만 바닷가에서 여자와 바람을 핀 후 이별하게 됩니다. 옛 애인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직업적으로도 불안정한 인생의 암흑기에 룰루는 절망적인 혼돈에 굴하지 않고 질서의 토대를 세우고자 했던 어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서 삶의 확신을 찾고자합니다.
그러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실상은 매우 불쾌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분류학에 몰두한 나머지 우생학에 빠져들어 수많은 사람들을 강제로 불임화시켰습니다. 데이비드가 자연에 질서가 존재한다 믿었고 그것을 수호하고자 했기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자신이 경멸했던 후원자 제인 스탠퍼드의 독살 사건에도 연루되었습니다. 그는 다윈의 진화론을 받아들였으나 결국 옛 은사 루이 아가시의 신념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다윈은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나 계층을 매기는 기존의 방법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나 데이비드는 자신이 매긴 계층구조에 천착하여 실망스러운 일들을 저질렀습니다. 저자는 미국을 비롯하여 전세계에 성행했던 우생학의 역사를 공부하고 그 실제 피해자에게 찾아가 처참한 기분을 느낍니다. 그러나 동시에 가족과 이웃사람을 아끼며 일상을 살아가는 피해자의 모습을 보고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실마리(민들레)를 찾습니다.
데이비드는 그가 저지른 악행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고 어류학계의 거두로 남았습니다. 무신론자로서 그리고 과학을 긍정하는 자로서 절대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정의구현을 믿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러나 한 세기도 채 지나기 전에 저자와 독자들에게 약간의 정의구현적 도취를 느끼게 해줄 사실이 밝혀집니다. “어류(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분기학(분지학)에서 밝혀낸 것으로서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을 어류로 분류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육지에 사는 척추동물이라 해서 인류와 나머지 포유류, 그리고 조류를 함께 묶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육지에서 적응하기 위해 비슷한 일부의 외형을 가졌다고 해서 이들이 결코 유전적으로 가까운 동물이 아닙니다. 그러니 데이비드가 평생을 바친 연구가 무의미한 것이라고는 할 수는 없어도, 그가 그런 식으로 어류를 분류하고 질서와 계층을 매기고자 했던 행위는 진리에서 한참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느끼는지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봅니다. 어떤 학자는 기뻐하고, 어떤 학자는 분노했으며, 어떤 사람은 연민합니다. 생의 무의미함을 일러줬던 저자의 아버지는 이를 거부합니다. ‘아직 내가 해방되지 않은 것으로부터 해방되기에는 너무 늙었어.’ 모자라다고 고통받았던 저자의 언니는 이를 덤덤히 받아들입니다. ‘인간은 원래 곧잘 틀리잖아.’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열역학 2법칙에 따라 세상은 혼돈으로 흘러갑니다. 인간은 어떤 것에도 질서를 부여할 수 없으며 모든 행위는 혼돈을 늘리기만 합니다. 우리가 자고 먹고 만들고 공들이는 모든 행위는 다른 대상을 부수고 자연의 혼돈을 많이 늘려서 우리의 질서를 조금 연명하는 것입니다. 가해적이면서 소모적인 일입니다. 그럼에도 살아가기에 우리는 저자처럼 삶의 무의미함에 괴로워하거나 데이비드처럼 자기기만적 질서를 상정하고 집착합니다.
우리가 물고기라 불러왔던 어떤 동물들은 우리보다 더 다양한 색을 감지하고 음악을 구별하며 도구를 사용하고 고통을 느낍니다. 그래서 생태학자 조너선 밸컴은 물고기를 그만 먹어야 하냐는 질문에 ‘예.’라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살아가는 한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조너선 역시 물고기를 먹는 걸 그만두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인간이 삶을 바쳐 세운 질서조차 이 냉엄한 자연의 혼돈 앞에서 가차없이 파괴됩니다. 그럼에도 하나의 질서가 부서질 때 우리는 실존적 변화를 얻게 됩니다. 어류를 부정하는 것은 그것을 오래 연구했던 학자 캐럴 계숙 윤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었으나 그 너머의 지평을 보게 할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자의적으로 질서를 세우고 그 과정에서 대상들에게 고통을 준다 한들, 결국 세상에 존재하는 대상들을 인간 멋대로 자리매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인간의 질서가 부서지고 또 부서지며 더 넓은 우주를 엿볼 수 있게 될 뿐입니다. 그것이 양성애자인 저자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과 학문을 따라간 후 자기 삶과 정체성을 받아들이며 내린 결론입니다.
혼돈이 증가하는 세상에서 강박적으로 질서를 탐구하는 과학자는 결국 무의미에 대한 공포에 어떠한 위로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애써 세운 질서가 쉽게 부서지는 만큼 그 작은 질서에 자기 자신을 부정당했던 사람들이 조금 더 살아가는 힘을 얻을지도 모릅니다.
한 학자의 일생, 어류학(이제 이렇게 불러서는 안 되겠지만 아주 무의미하지는 않겠지요.)과 과학적/철학적 회의론, 심리학을 넘나들며 실존의 긍정으로 조금 더 발돋움하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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