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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발행일 | 2005년 05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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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630쪽 | 926g | 153*224*35mm |
ISBN13 | 9788975274794 |
ISBN10 | 89752747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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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01일 ~ 2024년 06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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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린 드 메디치'라. 어딘지 익숙한 듯도 한데, 누구인지 모르겠는 걸 보면 들어본 이름도 아닌 것 같다-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맨 처음 든 생각이었다. 그럴 수밖에. 카트린은 프랑스식 발음이고, 메디치는 이탈리아식 발음이니까. 보통은 프랑스식으로 카트린 드 메디시스라고 적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탈리아식 발음인 카타리나 데 메디치보다도 이 쪽이 훨씬 더 익숙할 것아고, 나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메디치 가문. 이탈리아 르네상스 최고의 후원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가문이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프랑스 왕비가 된 여인, 어린 나이에 즉위한 아들의 섭정을 맡아 나라를 다스린 태후. 그리고-종교갈등으로 극심한 내전을 겪던 당시 프랑스의 혼란을 부추겼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것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지만, 글쎄-정말로 그런 인물이었던 것일까?
마리 앙투아네트 이후로, 나는 '외국인 왕비'에 대한 비방이라면 일단 걸러 듣는 버릇이 생겼다. 사람들은 단순한 것을 좋아한다. 어딘가에 분개하고 싶은데, 정확히 어떻게 무엇을 분개해야 하는지 모를 때는 더욱 그렇다. 종국에는 '이게 다 ~~~ 때문이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악녀도, 마녀도 아니었다. 잘한 일은 없지만 잘못한 일은 없으며, 적어도 잘해야 한다는 의식은 지니고 있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치스러운 생활을 해서 국고가 바닥났다고? 소박한 면직 옷을 즐겨 입은 것 때문에, 귀족들로부터 오히려 왕비로서의 위신을 실추시킨다는 비난을 받은 인물이건만. 프랑스 국고는 베르사유 궁을 지을 때 이미 바닥나 있었고, 무리하게 전쟁을 지원하다가 그나마 남은 예산마저 말 그대로 날려버렸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그런 복잡하고 역사적인 연원은 와닿지 않는다. 그들은 그럴 여유도 없고, 사실을 알고자 하는 마음도 없다. 말 그대로 끓어오르는 찰나에 분노를 퍼부을 대상을 찾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왕을 신성한 존재로 여기던 시대에 왕을 비난할 수는 없다-그렇다면 만만한 쪽은 왕비. 피가 섞이지 않은 외국인, 거기에다 여자라는 점은 여성을 비하하던 시대에 더없이 좋은 비난거리였으리라.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외국인 왕비이니 포악할 것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억지스러운 고집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고국 아닌 다른 나라라지만, 장차 자기 아들이 다스릴 나라를 미워할 여인이 도대체 어디 있겠느냐는 말이다.
이 책의 감상을 단 한 마디로 압축한다면 이 문장이 될 것이다. 카트린 드 메디시스에 대한 통념도 마리 앙투아네트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해야겠다.
이 책은 카트린 드 메디시스를 총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태어났을 때부터 자라는 동안, 그리고 왕자비, 왕세자비, 왕비의 자리를 차례로 밟아나가는 모습까지. 본격적인 이야기는 마리 드 메디시스가 태후가 되면서부터 벌어진다. 정확히 말하면 첫째 아들이 죽고, 둘째 아들이 왕이 되면서부터.
....왜냐하면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말 그대로 주욱 숨죽이며 지내고 있었으니까.
시작부터 축복받지 못한 것이나 매한가지인 결혼이었다. 키트린을 맞아들이면 수많은 이득이 있을 거라고 착각한 프랑스 왕은 거의 엉겁결에 결혼을 결정했고, 결혼식을 치른 직후부터 후회했다. 그런 점을 잘 아는 카트린은 극도로 조심하며 처신했고, 똑똑하며 영리한데다가 본분을 잘 지키는 카트린은 점차 사람들의 호의를 얻게 되었다. 상냥한 품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택한 것이라고 해야겠지. 사람들이 가진 호의조차 없다면, 별다른 지지기반도 재산도 영향력도 없고 국민들로부터 환영받지도 못하는 카트린의 지위는 위태롭기 짝이 없었을 테니까. 그 지위라는 것이, 시집온 날부터 30여 년동안 빈껍데기에 불과했다고 해도.
남편은 평생의 연인에게 빠져 카트린에게 눈을 돌리지도 않았다. 막상 카트린은 남편을 사랑했건만, 남편에게 사랑받기는 고사하고 대관식에서 남편의 애인과 나란히 선 왕비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하지만 카트린은 꿋꿋이 묵묵하게 견뎌냈다. 자신이 나설 때가 아니라고 판단할 떄에는 감정을 삭였고, 사사로운 감정을 마음에 담아 두지도 않았다. 심지어 장남이 왕이 되었을 때, 모후인 자신이 아니라 장남의 외척이 권세를 잡는 상황도 감내했다. 마침내 그녀에게 빛이 찾아왔을 때, 그녀는 울분을 마음에 담아 둔 복수자가 아니라 한 나라의 지도자로 우뚝 섰다. 휘몰아치는 종교전쟁의 회오리바람 한가운데에 내던져진 프랑스를 말이다
카트린을 음흉한 악녀로 매도하는 이야기가 오해라는 것을 아주 잘 보여 주는 사례가 있다. 바로 남편의 애인 디안에 대해 내린 처우이다. 카트린은 디안이 정말 미웠을 것이다. 사랑하는 남편의 사랑을 모두 가져간 여인.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양육하겠다며, 얼굴도 채 보지 못한 아이를 데려가 기른 사람. 여인으로서도, 어머니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결코 용서할 수 없을 인물이었다. 하지만 카트린은 디안이 편법으로 선물받은 왕실 재산을 반환할 것과 다시는 왕궁에 출입하지 말 것을 명했을 뿐이었다. 디안이 좋아서는 아니었다. 보통 생각하는 식의 복수란 화풀이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그런데 이런 인물이 일부러 많은 국민들을 도탄에 빠뜨렸다고? 그것도 순전히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전체적으로 카트린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는 책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옹호로 점철된 것은 아니다. 따질 것은 따지고 있고, 짚고 넘어갈 것은 짚고 넘어가고 있다. 잘못한 점에 대해 이런저런 사연을 풀어놓기는 하지만,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알고 비판하자는 쪽에 가깝다.
전체적으로 충실한 책이지만, 그 중에서도 방대한 자료를 풍부하게 인용한 점이 단연 눈에 띈다. 당대 역사뿐만 아니라 풍습과 분위기, 의복 등도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다. 미시사 연구 참고서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그렇다고 지식을 과시하듯이 단순히 여러 가지 이야기를 지리하게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하나같이 카트린과 관련된 이야기에 연관되며 톱니바퀴처럼 맞물린다. 많은 자료를 섭렵했지만, 책의 내용에 필요한 것만을 추려냈다는 것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마도 자신이 고생한 결과물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과,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면서 책의 완성도를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노력했겠지.
하지만 중간 부분에 점술사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은 조금 의심스럽다. 나는 점 같은 것에는 어지간히 회의적인 사람이다. 점이 맞았다는 건 아무 애매모호하게 말을 했거나, 후대의 사람들이 윤색하며 끼워맞추기를 했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누더기가 되서 너덜거리기는 하지만, 어쨌든 살아 있는 왕국을 물려주었다.' 이 문장만큼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행적을 잘 표현한 글이 달리 또 있을지 모르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고유명사 표기이다. 전체적으로 고유명사는 제대로 표기되어 있지만, 꿋꿋이 '메디치'라는 표기를 고수한 점은 조금 거슬렸다. 차라리 카타리나 데 메디치라고 완전히 이탈리아식으로 썼으면 또 모르는데 성만 이렇게 읽으니, 마치 쑨원도 아니고 손문도 아니고 쑨문으로 읽은 듯한 느낌을 받지 않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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