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시야가 동아리를 그만 둔다'를 보았다.

사실 이영화는 처음에는 그렇게 끌리지 않았다. 일단 제목부터 너무 독립영화 필이 났다.

하지만 몇몇 평을 통해 호기심에 보게 된 이 영화는 무척 인상깊고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영화에서 '키리시마'라는 소위 잘 나가는 학생이 있다. 그는 공부도 잘하고 (이점은 확실치 않다), 학교 배구부 에이스이며, 학교에서 제일 예쁜 여자 친구를 두고 있기도 하다. 소위 인기짱이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가 사라지며 동아리를 그만둔다는 소문이 돈다. 그로 인해 그 주변의 관계들이 급속히 붕괴되며 학교에 일파만파 영향을 끼친다.

키리시마는 왜 동아리를 그만두었을까. 또 키리시마는 누구인가.

영화는 끝까지 키리시마가 누구이며, 그가 왜 동아리를 그만두었는지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장님들이 코끼리 부분부분을 만지어 전체 모습을 추정해 나가듯이, 우리는 키리시마의 수많은 관계 가운데 그가 어떤 사람이고, 왜 동아리를 그만두었는지 추정해 나갈 수 있다.

감독이 묘사한 고등학교는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뉘어져있다.

첫째는 동아리 그룹. 스포츠 (배구, 배드민턴, 야구), 기악부, 그리고 영화 동아리부가 크게 3가지로 보인다. 동아리 멤버들은 대체로 성실하고 모범적이다. 스포츠 부는 가장 남성적이며 인기가 있다. 기악부는 우승하는등 학교 이름을 높이나,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높지는 않다.

둘째는 '날라리 그룹'이다. 이들은 대체로 신상부터 훤칠하며 잘 생기었다. 여자들은 요즘 아이돌처럼 꾸미고 다닌다. 이들은 모범적인 생활을 지양하며, 방과뒤에 이성교제나 놀러다닐 궁리를 하고 다닌다. 이들은 모범적이고 성실한 동아리 활동하는 애들을 은근히 조롱한다. 한 날라리는 '동아리 활동을 하며 동정을 유지하는게 나은가, 아니면 동아리를 그만두고 섹스를 하는게 나은가' 얘기한다. 이는 은근히 모범적인 생활을 지향하는 동아리부 학생들을 비웃는 듯한 말인 것 같다.

셋째는 비주류 집단으로, 영화 동아리 학생들이다.이들은 '동아리'라는 속성으로는 첫째 집단과는 묶이나, 비주류라는 면에서 그들과 달리한다.주류를 벗어나서 운동도 못하고 다소 매니아적인 취향만 돋보이는 이들은 학생들의 무시와 조롱을 받는다.

영화에서 보이는 학교의 계층구조를 나누자면, 이렇다.

‘ 최상위 - (운동부 <-> 날라리) - 기악부 - 영화 동아리 (비주류)’

날라리와 운동부는 거의 대등한 것으로 보인다.

최상위는 운동부에 속했으며, 날라리 그룹에서 인정받았던 바로 '키리시마'이다.

<영화 속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

감독은 또 크게 두개의 캐릭터를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첫재는 '히로키'로 날라리 그룹에 속했으며, 운동도 잘하고 여자들한테 인기있는 대표적인 '주류파'이다. 그는 운동을 잘해 한때 야구부였으나, 지금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잘 나가지 않는다. 그가 나가지 않는 이유는 야구부 주장과의 관계에서 간접적으로 보여진다.

야구부 주장은 야구에 헌신되며 다른 모든 것을 야구를 위해 희생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는 이러한 희생과 헌신이 싫은 것이다. 아니면 두려운 것인 것이다. 소위 이러한 헌신과 열정은 '날라리' 그룹이 지향하는 적당주의, 재미와는 위배되는 것이다. 야구에 헌신함으로서 친구들 사이의 인기나 이성교제, 재미 등을 잃어버릴까 두려운 것이다. 실제로 야구부를 하면서 거기에만 시간을 투자함으로 그러한 세상적인 '재미'를 잃어버린 경험을 하였고, 그래서 나왔을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야구를 사랑하기에, 주장의 헌신된 모습을 보며 도전을 받기도 하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갈등하는 역할로 그려진다. 영화 마지막 장면은 히로키가 밤늦게까지 야구연습을 하는 야구부를 보며 키리시야에게 전화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것은 그의 갈등하는 내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인 듯 하다.

<히로키의 뒷모습.. 마지막 영화 장면>

다른 한편의 대조적인 캐릭터는 영화부의 '료야'역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료야는 기본적으로 비주류적인 캐릭터이며, 운동도 못하고 취향도 좀비물을 좋아하는 등 독특하여 학교에서 왕따 취급을 당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의 생각지 못한 강점을 몇 개 보여주기도 한다. 첫째,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이 확실하며, 그의 열정을 남들에게 나누며 이를 추진해갈 줄 안다. 학교에서 영화부 지도 선생님은 계속 료야에게 청춘물이나 입시 고민 등 또래들이 흔히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라고 주문한다. 그는 이것에 쉽게 응하는 대신에, 자신이 좋아하는 좀비물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이를 동아리 부원들에게 발표한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부원들이 한명씩 이에 동의하여 따르기로 한다. 이는 원치 않는 일을 억지로 하는 대신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기로 한 그의 순수한 열정에 감동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둘째, 그는 리더로서 자신의 동아리를 위해 목소리를 낼줄 안다. 처음에는 영화 찍는 장소의 확보를 위해 주저하며 한발짝 씩 나와서 목소리를 내더니, 나중에는 자신의 영화 판을 망친 배구부 주장에게 대들기까지 한다. 힘이나 학교 계층으로 보자면 그는 운동부 주장에 비해 한없이 약하지만, 그는 그러한 가운데서도 자신과 자신이 대표하는 집단의 목소리를 또박또박 말한다.

왜 료야는 지도부 선생님의 말씀대로 자신 나이에 공감되는 청춘물을 만들지 않고 좀비물에 집착하는 것일까? 이것은 학교에서 그가 하위 그룹, 소외된 왕따 그룹에서 경험한 체험들이 ‘좀비’와 가장 유사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공감되는 영화를 만들라고 했지만, 사실 이러한 ‘좀비’가 그가 학교 생활에서 느껴지는 것과 가장 유사한 것이다. 그가 영화에 넣으려는 대사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지 않으면 안돼’는 이러한 자신의 체험을 가장 잘 대표하는 대사이다.

<마지막 하이라트 좀비물 영화 장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영화부 료야는 감독이 가장 애정을 가지고 만든 캐릭터인 듯하다. (어쩌면 감독 자신을 반영한 캐릭터일 수도 있다) 영화에서 료야는 다른 학교의 캐릭터들보다 더 순수하고, 열정있으며, 책임감 있고, 리더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주변인들에게 그것을 완전히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감독은 더불어 두 개의 러브-라인을 보여준다. (기악부 여자- 히로키 까지 하면 3개지만 이 글에서는 2개만 얘기하기로 한다) 첫째는 히로키와 여자 친구와의 관계이다. 사실 이들이 애인 관계라고 하지만,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라기보다 보여지기 위한 커플로 의심된다. 특히 여자 쪽은 히로키가 잘생기고 운동도 잘하는 인기남이기 때문에, 자신이 돋보이므로 사귀려는 것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어 보인다. 이것은 후반부에 보이는 ‘가짜 키스신’에서 더욱 드러난다.

두 번째는 영화부 료야와 배구부 카스미간의 관계이다. 카스미는 한때 ‘날라리’ 그룹과 잘 어울렸지만 그들의 속물적인 모습에 점차 흥미를 잃어간다. 카스미는 자신의 ‘날라리’ 남자친구와 대비되는 료야의 순수한 열정과 용기에 어느 정도 호감을 보이지만 그 이상을 나아가지는 못한다. 이는 학교 계층에서 비롯된 문제이기도 하다. 료야가 비록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만, 사귀기에는 주변 시선이 의식되는 부분이 너무 많은 것이다.

<영화 속 러브-라인>

종합하자면, 이 영화는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부러울 수 있지만, 그들의 삶을 자세히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시선에서 의식된 속물적인 관계들이 가득한 것이다.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을 그만둔 이유는?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에 지쳐, 지나친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는 운동부에 지쳐, 또 소위 인기남이라는데서 오는 부담감 및 여자친구와의 가식적인 관계에 지쳐 그만두었다는 것을.. 이 영화 곳곳에 힌트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