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은 일단 시원하다. 군더더기가 없고 직설적이면서 인간의 심리를 잘 파헤쳐 놓는다. '걸'이란 작품은 여자들의 이야기다. 다섯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모두 공통적으로 30대의 다양한 여자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며,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다.
 
 '띠동갑'은 고사카 요코라는 34살 노처녀의 회사에 신입사원이 왔는데, 12살이나 적은 모두의 시선을 잡아끄는 미남 신타로였다. 첫날부터 마음을 뺏기고 약혼녀라는 상상까지 하게되는 그녀는 그 또래의 여사원을 경계하게 된다. 특히 가호리라는 여직원이 페로몬 살포작전으로 대시하는 걸 가장 못마땅해 하지만, 매력적인 여자는 입을 가리고 웃고 자신은 이미 박수를 치고 발을 굴리며 웃는다는 걸 인정한다. 할 수 없이 자신 또래와 미팅을 가지는데, 때마침 미팅을 마친 장소로 신타로와 가호리가 들어가는 것을 본다. 파장을 놓으려고 덮치지만 그냥 단순한 신입사원들의 단합회 자리였고, 고사카는 노처녀임이 싫어서 어린 남자를 짝사랑하며 시간을 잊어버리려는 모라토리엄에 빠진 것을 깨닫고 돌아선다.

 '히로'에서는 다케다 세이코는 35세의 나이에 여자임에도 빠르게 과장으로 승진된다. 남편 히로키와는 자녀가 없이 서로 잘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다. 세이코 팀에 세살이 많지만 부하직원으로 이마이 계장이 들어온다. 회식자리에서 이마이는 자신이 계산을 다하려고 하고, 뭐든지 독단적으로 행동하려고 하며, 심지어 세이코 까지 된통 훈계를 놓는, 수평적인 인간관계를 모르는 히로키와 정반대의 인물이다. 남성들의 파벌주의와 빽, 남성사회의 폐단을 그대로 가진 히로키는 체면이라는 것에 목숨을 건다. 또 한번 세이코를 회의에서 무시하려 들자 세이코는 동전을 던져 누가 사표를 내든지 내기를 하자고 윽박질러 그의 기를 꺾어 버리고 이마이의 사과를 받아 낸다.

 '걸'은 20대 중반 정도까지의 미혼여성을 일컫는다. 32살의 다키가와 유키코는 나이트를 좋아하고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옷을 택한 인기 광고대리점에 다니는 눈 높은 노처녀다. 반대로 이벤트 관계로 만나게 되는 거래처 백화점행사담당인 동갑의 히로코는 평범한 옷차림으로 사사건건 유키코와 의견대립을 가지고 온다. 유키코는 서클모임의 행사에 참석해 나이트에서 젊은 남자들과 신나게 놀지만, 아줌마 니 젊은 척 한다느니 그런 말에 충격을 받고 기가 죽어 수수하게 차려 입게 되고 히로코는 반기게 된다. 백화점 이벤트 날 모델이 갑자기 한 명이 비게 되어 얌전한 히로코가 대타를 어쩔 수 없게 하게 된다. 완전한 메이커업을 하게 되자 그녀는 '걸'이 된다. 자신의 모습에 마음을 열고 즐길 줄 알게 된다.

 '아파트'에서는 이시하라 유카리 라는 34살의 보험회사 홍보과 노처녀가 주인공이다. 무사안일과 전례, 답습이라는 것을 싫어하는 나홀로 강경파로 불리는 여자다. 그런 그녀가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해 모델하우스를 돌아다녀 보니 마음에 너무 드는 아파트가 예산초과라는 것이다. 아파트 구입자금 때문에 안정된 직위와 수입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으로 바뀌고, 그 동안 무사안일이라고 놀린 자신이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앙숙인 20대 후반의 호시노라는 비서실 직원에게도 휘둘리게 된다. 그러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깨닫고 상사에게 다시 큰소리를 치는 강경파로 돌아간다. 다시 예산에 맞는 아파트를 찾으면 되니까. 

 '워킹맘'은 36살의 이혼녀인 히라이 다카코가 초등1학년 짜리를 홀로 키우면서 자동차제조업체 영업부에서 회사생활을 하는 스토리다. 멋진 프로젝트를 세워 주도하려 했으나, 판매부에서 그 프로젝트를 뺏어 가려 한다. 그런데다가 아이는 체육을 싫어한다. 다카코는 아이에게 철봉을 가르치기 위해 회사직원에게서 도움을 받아 철봉을 연습한다. 그리고 아이가 야구를 하고 싶어해서 야구를 회사에서 배운다. 다카코의 과장은 그녀가 일이 많아질까 봐 걱정을 해주고 주위에서도 애엄마라는 것에 대해 모두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그걸 불식시키기 위해 술자리 회식에 노래방까지 가서 늦게 들어가니 아이가 아파 누워 있다. 아이도 엄마생각에 아프다고 알리지 마라고 도우미에게 사정했다고 한다. 육아를 하는 엄마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결국 프로젝트는 넘어갔다. 그러나 아이는 엄마가 열심히 산다는 것을 알았고 자기도 열심히 살겠다고 한다.

 30대 직장여성들의 대변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소설책이 아닐까 보여진다. 일과 자유와 연애, 그 중 하나라도 잃기 싫어서 결혼시기를 놓치고 젊은 부하 남자 직원을 보며 짝사랑을 통해 현실도피를 하는 여자. 직장상사로서 부하직원을 다뤄야 하고 가정에서는 맞벌이 부부로서 아이를 갖는냐 마느냐의 딜레마에 빠진 여자. 나이가 들었지만, 젊은 시절로 살아가고 싶어 그렇게 꾸미고 사는 여자와 지레 체념하고 그 나이에 맞게 길들여져 살아가는 여자.  직장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 당위성을 내집마련이라는 것에서 알게 되는 철(?)없는 여자. 아이가 있는 주부의 직장생활도 어려운데 이혼녀가 아이를 홀로 키우면서 힘든 직장생활을 하는 멋진 여자.
 이들은 '남의 보호를 당연시하는 주부'들에게 꿋꿋이 홀로서는 모습을 보이는, 최고의 여자들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분신인 이라부 이치로의 정신치료가 담겨있는 듯한 이야기이다. 주인공들은 인생에 굴복하지 않는 타협하지 않는 자세로 자신만의 의지로 살아가는, 바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보여 준다. 쉽고 단순한 이야기 속에 함축된 의미가, 마치 소풍가서 선생님이 숨겨 놓은 보물찾기 게임에서 찾고 보니 작은 종이에 꼬깃꼬깃 숨어 있는 선물처럼 재치만점의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