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세계의 만남

제리 벤틀리/김병화

학고재/2006.11.5.

sanbaram

하와이 대학의 역사학 교수로 역사에서 문화 간의 상호 영향관계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저자는, 문화 간 만남은 인간이 처음 존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항상 세계 역사에 있어 온 특징이라고 한다. <고대 세계의 만남>에서 서로 다른 문명 출신의 사람들이 만날 때 일어나는 문화적 효과에 대한 역동적인 모습의 분석을 통해, 상이한 문명과 문화적 전통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장기간 교류 했을 때 일어나게 되는 문화 간 개종, 갈등, 타협의 유형을 파악하고 그것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내용을 “1. 문명들의 조우/ 2. 고대 실크로드의 시대/ 3. 선교사와 순례자들의 세계사/ 4. 유목제국의 시대/ 5. 새로운 세계 질서를 향하여” 등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있다.

“개종은 항상 특정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맥락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새로운 문화나 종교 전통을 채택한 사람들에게 그저 정신적이거나 문화적인 이익만이 아닌, 그 이상의 어떤 것을 가져다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 간 개종 과정 전반을 설명해주는 엄격한 해석 원칙이나 변화에 관한 단일한 이론은 있을 수 없다. 그리하여 더 넓든 사회적 맥락에서 일어나는 문화 간 개종을 분석한 결과 근대 이전에 자주 일어난 개종 과정의 유형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자발적 제휴를 통한 개종,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압력에 의해 유도된 개종, 동화를 통한 개종이 그것이다.(p.20)” 개종의 세 양식은 그것들이 행사한 폭넓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맥락을 반영하며, 특히 문화 간 만남에 개입된 세력들의 상대적인 힘의 크기와 관계가 있다.

사회 전체를 철저하게 개종시키는 데는 무척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정복자들은 보통 그 과정을 촉진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했다. 그들의 전략 가운데는 “조세의 차별, 새로운 문화적 대안과 관련한 제도와 기존 제도에 대한 재정 지원을 차등화 하는 방법, 군인이나 정치 관료를 모집할 때 특정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들을 선호하는 방법, 종교 행사나 제례의 참가를 제한하거나 사찰, 교회, 사당을 폐쇄하고 파괴하는 방법 등이 있다.(p.24)” 이런 방법들은 한 사회의 문화 전통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제도에 특히 집중적인 압력을 가하기 때문에, 대규모의 사회적 변화를 초래하는 데는 개인에 대한 직접적인 강압보다도 아주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600년에서 1000년 사이에 이루어진 장거리 교환의 규모는 고대 실크로드를 따라 행해졌던 교역 규모를 압도한다. 암흑시대라 불리는 이 시기에 불교가 중앙아시아, 중국, 일본에 광범위하게 전파되었다. 또 유가적 가치가 동남아시아에 전파되었고, 이슬람교가 북아프리카, 근동, 중앙아시아에 전해졌을 뿐만 아니라 북유럽이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유라시아의 많은 지역에서 문자해독과 교육 수준이 높아졌다.(p.102)” 불교는 고대 인도의 사회, 경제적 질서가 크게 바뀌는 시기에 발생했다. 인도 상인들은 불교의 도덕과 윤리적 가르침을 전통적인 브라만 사제계급의 비교적인 제례보다 선호했다. 한편 중국에서 불교가 정착하는 데에는 중국식 가족제도와 조상숭배에 대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큰 역할을 했다. “대중 불교에서 가장 큰 행사인 백중제 같은 것은 그 형태부터가 중국식이며 가족과 선조에 대한 숭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중국인들의 강력한 관심사가 반영된 사례였다.(p.117)” 사실 절충주의적 움직임은 11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계속 발전하여, 공자와 노자, 석가에 대한 공동 숭배가 상당한 인기를 얻기도 했다.

유라시아에 대한 몽골의 지배력은 교역 물품과 문화 전통만이 아니라 전염성 질병을 효율적으로 퍼뜨리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14세기에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하며 확산된 선페스트는 유라시아 전역의 경제와 사회, 교역, 통신을 궤멸시켰다. 한동안은 문화 간 만남이 유라시아인들의 삶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안정되면서 상인을 중심으로 동서 간 교류는 계속되었다.

“외국 땅에서 대규모의 추종자를 얻은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성공한 것은 대체로 절충주의 덕분이었다. 즉 이교도 전통에게 기꺼이 세례를 주고 기본적으로 기독교적인 이론 틀 속에 그것을 받아들일 여지를 만든 능력 덕분이었다.(p.147)” 상인들은 독립적으로 거래한 토착 주민들 가운데 일부는 그들의 신앙을 받아들였고, 더 넓고 국제적인 세계에서의 경제 활동에 적합한 가치체계와 윤리 규범을 그 신앙에서 받아 들였다. 소규모이던 이슬람 공동체가 점차 확장되면서 무슬림들 간의 분쟁과 정의를 확립하기 위해 카디가 파견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기독교도가 자신들의 종교를 공개적으로 선전해도 좋다고 허용한 콘스탄티누스의 칙령이 내려진 뒤로 기독교도는 지칠 줄 모르고 이교 숭배를 공격했으며 때로는 폭력적으로 개인들을 강제 개종시키거나 이교도 사원과 조각들을 파괴하는 등, 여러 사건들을 저질렀다.(p.93)” 이런 독선적이고 강압적인 개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발적 제휴를 통한 개종의 가장 좋은 사례는 이슬람교가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 소개되는 과정에서 볼 수 있다. 한편 “엘리트들이 자발적으로 개종했기 때문에 이슬람교가 말라카와 동남아시아 사회의모든 계층에 쉽게 뿌리 내릴 수 있었다. 엘리트 자신들이 기존의 지역 사회와 인도양 전역의 더 넓은 세계를 이어주는 고리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이슬람이 지역사회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통로가 되어준 것이다.(p.253)” 이렇게 강압적인 방법뿐만 아니라 지배계층의 필요에 의한 개종도 흔히 있는 일이다.

문화 간 개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눈 여겨 보아두어야 할 것은 절충주의이다. “어느 문화도 각각의 고유한 요소들을 원래대로 순수하게 유지하면서 교류하기는 힘들다. 거의 모든 경우에, 그리고 문화교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경우에는 더욱 더, 상이한 문화 사이에서 공통분모를 찾고, 그것을 토대로 하여 상호 이해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조금씩 변질되게 마련이다. 중국에 불교가 들어올 때 도가의 용어와 이론 틀을 빌린 것이 그 좋은 예이다.(p.295)” 이 책에서는 전 세계 문화 교류에서 절충주의가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크다고 본다.

근대 이전에 자주 일어난 개종 과정의 유형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자발적 제휴를 통한 개종, 압력에 의해 유도된 개종, 동화를 통한 개종 등이다. 이런 개종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대부분 일방적인 개종이 아니라 상호 절충주의적 개종이 이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