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희(pylades@yes24.com) 2001. 09. 11
안네의 일기, 전쟁과 추억(혹은 사랑?),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파울 첼란, 그리고 이작 카체넬존과 최근에 읽은 한 권의 책까지. 내 기억 속의 쇼아, 혹은 홀로코스트. 사실 쇼아라는 말은 얼마전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국내에 상영되기 전까지는 우리에게 낯선 단어였다. 그냥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표현이 한국인에게는 가장 일반적일 듯. (쇼아 : 프랑스에서 특히 많이 사용되는 이 용어는 히브리어로 '이 지구상에서 존재할 수 있는 재앙 중 가장 큰 재앙'을 뜻한다. 유대인 학살이 갖는 독특한 성격, 다시 말해 '재현 불가능성'을 이 단어가 가장 잘 특징짓고 있다는 점에서 점점 더 빈번히 통용되고 있다. -『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 책세상 문고 우리시대 041』pp. 26-27 )
오늘 얘기하려는 두 권의 책은 『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 책세상 문고. 우리시대 041』와『&pk=225364"유리병 속의 편지 : 뿌리 뽑힌 유대인의 큰노래』이다. 나는 최근에 출간된 『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읽다가 예전에 읽었던 『유리병 속의 편지』(1999, 한마당)를 다시 꺼내 읽게 되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를 시작해 보자.『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는 장단이 분명한 책이다. 그런데 그 장단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즉, 이 책은 쇼아를 다루는 수용소 문학 내지 전쟁 문학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지만, 문고라는 한정된 책의 지면에 너무 많은 내용을 압축적으로 담으려 하다 보니 독자들의 수용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학술지가 아닌 문고판에 이런 내용을 담은 시도는 높이 살 만하지만 매체가 문고이기에 역시 한계를 노정한다. 그리고 또 다른 아쉬움은, 이것 역시 어쩌면 태생적 한계이기에 괜한 트집이 될지 몰라도,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 프랑스의 역사와 문학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인생은 아름다워>와 다큐멘터리 영화 <쇼아>에 대한 분석이 낯선 프랑스 작가들의 이름과 작품명들 속에서 감을 잡기 어려워하던 독자들에게 어느 정도 편안함을 주기는 하지만, 작품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듣는 개론적인 이야기는 감이 멀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아쉬움에 대해 저자는 이미 '들어가는 말'에서 "수용소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깊지 않은 한국의 현실에 비추어 이 책은 필연적으로 문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개론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독자로서 이런 아쉬움들을 표명함으로써 쇼아에 대한 보다 포괄적이고 상세한 책을 접하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한국의 독자가『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읽으면서, 즉 작품을 전혀 모르는 채 수용소 문학에 대한 포괄적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끼게 되는 답답함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 『&pk=225364"유리병 속의 편지 : 뿌리 뽑힌 유대인의 큰노래』이다. 물론 앞의 책에 이 시집은 전혀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지만, 이 시집은 바로 가스실에서 절명한 희생자로서 쇼아를 직접적으로 체험한 유대 시인이 쓴 절절한 '백조의 노래'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살아남은 자는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의 관점에서는 생존자들은 진실되게 증언하지 않는다. 생존자들은 가짜 증인들이다. 역사의 증인들은 가스실에서 사라져간 자들이어야 한다. 숱한 수용소 문제 관련의 서구 예술 작품들에서는 사라진 자에 대한 기억이 현재화된 피해자의 증오 속에서 불안한 형태로 재현되고 있다." - 『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 책세상 문고. 우리시대 041』 p.15
『&pk=225364"유리병 속의 편지』는 위에서 인용한 저자의 말에 더할 나위 없이 적확한 반례가 된다. 시인 이작 카체넬존은 가족의 죽음, 게토 봉기, 배반자들(나치 부역자들), 아우슈비츠 호송 열차, 나치의 잔학 행위,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둘러싼 소문들까지… "뿌리 뽑힌 민족"의 불행을 몸소 체험하고 그 자신도 가스실에서 죽어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진짜' 증인이다. 이 시집 속의 열다섯 편의 노래는 그가 죽기 불과 몇 달 전에 씌어진 것들이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씌어진 이 시들은 이 전대미문의 인류의 불행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의무감에서 아무나 발휘할 수 없는 놀라운 정신력으로 씌어진 것이리라. 이 시집의 발굴 과정도 드라마틱하다. 그는 이 시집의 사본을 여섯 부 만들었는데 그 중 유리병 속에 넣어 수용소 안의 전나무 밑에 파묻은 것과 여행가방의 손잡이 안에 꿰매어 넣은 것, 이렇게 두 부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시집은 쇼아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건드리고 있다. 그것은 '피해자' 유대인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느끼는 절망감, 가족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 학살자들에 대한 분노, 그에 못지 않은 나치 부역자들에 대한 분노, 동족의 무력함과 수동성에 대한 비판,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게토 봉기 때 유대 전사들이 보여준 불굴의 의지와 용기, 쇼아에 관련된 여러 가지 사실들, 비극적인 에피소드들……
"이런 노래들을 한 번이라도 들은 사람은 인간이기를 그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p.144) 역자의 이 한 마디가 이 책의 가치를 잘 말해준다. 극한 상황에서 씌어진 이 시편들이 극적으로 살아 남은 것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기억의 의무'를 일깨우기 위함이 아닌지…
"종전 후 50년이 지난 지금에야 유럽 각국은 이 사건에 대한 죄의식을 떨쳐버리고 아픈 과거를 '역사화'하는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인식론적 차원에서는 '증언의 시기'에서 '기억의 시기' '애도의 시기'를 거쳐 '역사의 시기'에 도달했고, 도덕적 차원에서는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기억의 의무'가 강조되던 시기가 지나간 후 오늘날 오히려 '망각의 의무'가 요구되고 있다." -『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 책세상 문고. 우리시대 041』 p.19
애초에 나의 글은 '기억의 의무'에 대한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기억의 의무'는 쇼아를 매개로 해서 결국 '여기' 한국의 굴곡의 근현대사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 문제는 이 지면 밖의 일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단지 스스로에게 짐 지워둘 뿐. 일정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스스로의 한계를 '기억의 의무'에 어느 정도 동참했다는 자기위안으로 변명하며 이쯤에서 글을 접을까 한다. (솔직히 밝히자면, 이 글의 서두는 상당히 길었으나 시스템이 허용하지 않는 관계로 삭제를 했다. 삭제된 서두는 글쓴이가 쇼아에 대해 갖고 있는 개인적인 기억에 관한 것이었다.)
4
결단코 잊지 마오, 이 잔혹함을, 이 냉혹함을
잊지 말라 결코! 결코 이 끔찍스러움을, 일찍이 지상에 존재했던
가장 혹독한 그것을. 당신 아직 알아? 당신이 결코 잊지 않을 것임을 나는 아는데
모든 영원 속으로 당신은 이 기억을 가져갔다
당신, 한나, 그리고 내 아들들, 우리 민족에게 저질러진
이 살해를 너희는 영원히 기억하겠지. 나는
복수심도 있긴 하지만, 늘 두렵다, 일어난 이 모든 일이 언젠가
나의 기억을 미끄러져 나갈 그 시각이 올까봐 두렵다
-『&pk=225364"유리병 속의 편지 : 뿌리 뽑힌 유대인의 큰노래』 p.84 <열한번째 노래: 당신 기억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