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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국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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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국제사

윌리엄 스툭 저 / 김형인 등저 | 푸른역사 | 2001년 09월 30일 | 원제 : The Korean war: an international history by William Stueck 리뷰 총점7.0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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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국제사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864쪽 | 1,346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7787367
ISBN10 8987787362

관련분류

목차

저자 소개

역자 : 김남균
노스 텍사스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평택대학교 미국학 교수로 있다.
역자 : 김형인
뉴멕시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 외국학종합연구센터 북미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있다.
역자 : 조성규
오하이오 주 마이애미 대학교에서 명예 인문학 박사를 수여받았으며, 연세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역자 : 김재민
텍사스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국제한국어교육학회장, 한국아메리카학회장, 한국 마크트웨인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자 : 윌리엄 스툭(William Stueck)
한국전쟁을 전형적인 내전으로 파악하려던 근래의 주도적인 해석을 극복하고 세계 외교의 각축장 속에서 파악한 이 책으로 스툭은 “국제사 연구의 전형적인 모델을 보여주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스툭은 스프링필드 대학 졸업 후 퀸스 대학에서 석사학위와 브라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조지아 대학교에서 미국외교사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0년 8월 석좌 교수로 임명되었다. 풀브라이트 교환교수로 한국에 체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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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과 중국의 무력충돌은 불가피했나

스툭은 한국전쟁에서 미국과 중국의 무력충돌은 불가피했던 것이 아니라고 본다. 미국이 38선을 넘어 북진했기 때문에 중국이 개입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렇다면 미국이 38선을 넘은 이유는 무엇인가? 스툭은 두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 한반도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한 응징을 현상회복 정도로만 끝낸다면 같은 도발이 거듭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둘째,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생긴 북진통일에 대한 환상 때문이었다. 상륙작전이 예상 이상의 성공을 거두고 북한 군대가 궤멸 상태에 빠지자, 미국은 북한 점령을 손쉬운 과제로 판단했다. 38선을 넘어 북진할 경우 개입하겠다는 중국의 경고가 있었지만 미국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도취하여 중국의 경고를 제대로 평가할 여유가 없었다. 만약 소련이 강력하게 경고했었다면 미국의 태도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38선 이북에 대한 미국의 군사행동에 대하여 소련은 왜 강력한 경고를 보내지 않았을까? 소련은 핵 보유력이 월등한 미국과 전면전을 할 경우 승리할 자신이 없었다. 소련은 한국전쟁 기간 동안 미국과 직접 대결하는 것은 피하려고 노력했다. 스툭은 스탈린이 미국과의 직접대결을 피하고 중국을 이용하여 미국을 격퇴하려는 전략에는 두 가지 측면을 고려했을 것으로 본다. 먼저 중국이 미국과 대결하게 됨으로써 미·소의 군사 대결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이 미국과 충돌하게 되면 중국은 서구세계와 더욱 고립될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소련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중국과 미국의 무력충돌을 통하여 소련이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면 중국은 왜 한국전쟁에 개입했을까? 중국은 바로 이웃 공산국가가 자본주의 국가들의 공격에 소멸하는 것을 방관할 수 없었다. 이것은 국가적 위신문제였다. 또한 북한이 중국내전을 지원해준 사실도 무시할 수 없었는데, 이것 역시 국가 신뢰도가 걸린 문제였다. 그리고 자본주의 국가들은 팽창 일변도이기 때문에 미국의 팽창을 한반도에서 저지하지 않으면 중국 자체도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반도 개입은 궁극적으로 중국 자체를 위한 방어전의 성격을 띄고 있었다.
한국전쟁에 개입한 중국의 기본 목표는 북한의 붕괴를 방지하고 완충지역을 설정해 전쟁을 종결짓는 것이었다. 38선이 경계선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중국은 38선에서 멈추지 않고 남진했다. 왜 그랬을까? 스툭은 미국이 38선을 넘었던 것과 비슷한 이유로 설명한다. 미국과의 접전 초에 압승을 거둔 중국에게 38선에서 멈추기에는 한반도를 통일할 수 있다는 유혹이 너무 컸다.

■ 한국전쟁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은 것은 유엔의 강력한 압력 때문이었다

미국 관리들에게 있어서 중국의 개입은 한국전 발발 소식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Douglas MacArthur)는 '새로운 전쟁(New War)'이라고 보고했다. 예상 밖의 중국군을 맞아 패퇴하기 시작한 맥아더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전략을 원했다. 만주 지방을 포함한 중국의 보급선을 공격해야 한다고 믿었다. 필요하다면 핵폭탄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워싱턴의 입장은 달랐다. 처음에는 맥아더의 군사작전을 지지하였으나 차츰 전쟁을 한반도에 한정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툭에 따르면, 미국이 이처럼 제한전쟁으로 정책의 가닥을 잡아갈 수 있었던 것은 전쟁확대에 반대하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압력이 작용한 결과였다. 특히 영국이 미국의 전쟁 확대 정책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전쟁 확대 문제와 관련해 스툭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유엔의 역할이다. 서구측 유엔 가입국들은 중국의 유엔가입 보장, 타이완 해협에서 미군 철수, 한반도에서 38선 경계회복 등의 제안을 통하여 중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고 한국전쟁을 종결짓고자 노력했다. 유럽 국가들은 한반도에 미국 국방력이 집중됨으로써 유럽에 대한 지원이 감소될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유엔은 미국이 한국전쟁을 확대하지 못하게 막는 압력단체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유엔은 미국이 자신의 정책을 약소국에 설득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 예로 미국은 유엔 회원국들이 중국을 침략자로 규정하도록 설득하였을 뿐 아니라, 유럽 동맹국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유엔의 의결을 통해 미국은 중국에 대한 무역 금지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 치열한 신경전, 휴전회담의 진행 과정

전쟁이 미국이나 중국 어느 쪽도 결정적인 승리를 거둘 수 없는 지구전 양상으로 변하자, 양측은 모두 협상을 생각하게 되었다. 사상자가 늘어가던 1951년 5월 초 미국 워싱턴 주재 소련 대사였던 말리크(Jacob Malik)와 케넌(George Kennan)의 비공식 접촉을 통해 미·소 모두 휴전을 원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중국과 미국의 군사대결을 원했던 소련은 왜 휴전을 원했을까? 스탈린은 한국전쟁으로 유럽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감소하길 기대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유럽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급증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토(NATO)가 군사동맹체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서독의 재무장이 확실시되었다. 또한 아시아에서는 일본평화협상이 진행 중이었고 타이완이나 남한 어느 곳에서도 공산화의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의 무력충돌이 장기적으로 계속된다면 궁극적으로 소련도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질 형편이었다. 스탈린은 미국과의 군사대결을 원하지 않았다.
공식적인 휴전회담은 1951년 7월 유엔군 사령관 리지웨이(Matthew Ridgeway)의 제의에 공산측이 응함으로 시작되었다. 회담 장소를 개성으로 정했으나, 유엔군측의 제안으로 곧 판문점으로 옮겼다. 유엔군측에서는 해군제독인 조이 (Turner Joy)가 대표로 나왔고, 공산측에서는 남일이 나와 회담 의제를 결정하였다. 결정된 의제 중 처음부터 협상이 어려워 보였던 것은 휴전선 결정과 포로교환 문제였다. 휴전선 문제는 회담 초에 공산측이 38선을 기준으로 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휴전시 전선을 기준으로 정하기로 양측이 큰 어려움 없이 동의했다.
문제는 포로교환이었다. 포로 수는 유엔군측에 약 13만 명(민간인 포로 제외), 공산측에 약 1만 명으로 추산되었다. 회담 초 미국은 1대1 교환과 자의적 송환을 회담의 기본 목표로 정했다. 공산측은 두 가지 원칙에 모두 반대했다. 그들은 포로 전체 대 전체의 교환을 주장했다. 공산측의 입장이 국제법상 규정에 더 가까웠다. 미국이 주장하는 자의적 송환은 공산측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고 회담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없었다.
회담진행이 부진한 상태로 양측은 2년 간이나 더 싸웠다. 포로 송환 문제를 둘러싸고 공전하던 휴전회담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스탈린의 사망이었다. 1952년도 대통령 선거에서 군인 출신인 공화당 후보 아이젠하워(D. Eisenhower)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스탈린은 한국전쟁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강화될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휴전회담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스탈린의 사망이었다고 스툭은 생각한다. 스탈린이 사망함으로써 소련 권력층에게 대외문제보다는 국내정권 투쟁이 더 시급한 문제로 떠올랐다.
그리고 휴전회담의 조기 종결에는 반공포로 석방으로 상징되는 '이승만 요인'도 많이 작용했을 것으로 스툭은 믿는다. 이승만 정부가 반공포로를 석방하자 공산측이나 유엔군 모두 이승만의 휴전 저지 노력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에 신속한 회담 종결을 원했던 것으로 스툭은 판단한다. 휴전반대 정책을 펼치던 이승만 정부는 반공포로 석방을 통해 휴전 협상을 도와준 셈이었다.
주요 내용

스툭의 《한국전쟁의 국제사》은 10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내용상으로는 한국분단의 기원부터 휴전까지 한국전쟁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다. 그 동안 한국전쟁사 연구에 있어서 핵심적 논의 대상이 되어왔던 주제를 스툭은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사안별로 살펴보자.

■ 한국전쟁의 역사적 의의

스툭의 《한국전쟁의 국제사》가 한국전쟁사 연구서로서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한국전쟁을 국제전쟁으로 보고 그것의 세계사적 의의를 파악하고자 노력한 점이다. 한국전쟁이 국제전쟁이었다는 주장은 스툭 책의 전제이자 또한 결론이다. 한국전쟁은 내전이 아니라 소련과 북한의 도발에 미국을 주축으로 한 유엔 회원국들이 대응한 국제전쟁이었다. 특히 한국전쟁의 국제전적 성격을 강화시켜준 것은 미국이나 중국 혹은 소련의 역할과 함께 유엔의 역할이었다고 스툭은 지적한다.
이런 시각에서 스툭은 남한정부의 수립 과정부터 한국전쟁 휴전까지 한국과 관련된 유엔의 역할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미국과 소련 그리고 중국이 유엔에서 한국문제를 놓고 힘겨루기를 한 부분은 물론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친미 서방국가들과 또한 인도와 같은 중립국들의 활동도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북한의 남침을 저지한 유엔군의 90퍼센트 이상은 미국과 남한의 병력이었으나, 16개국에 달한 유엔 회원국이 공식적으로 참전함으로써 국제전적 성격을 더했다. 비록 비공시적이었지만 일본의 한국전쟁 참전도 한국전쟁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였음을 스툭은 지적하고 있다.
스툭에 따르면 당시까지 유엔이 집단안보를 위하여 활동한 유일한 예가 한국전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전쟁이 있었기 때문에 유엔이 소련 등 공산권 국가들의 탈퇴로 공동화(空洞化) 되지 않고 국제기구로 남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유엔은 미·소간의 외교 전투장으로 변화하였지만 유엔의 기능이 강화되었다는 것이 스툭의 해석이다. 이 같은 유엔의 실질적인 기능이 강화된 덕택에 한국전쟁의 확대나 미국의 중국 본토 공습 혹은 핵무기 사용이 미국의 뜻대로 시도되지 않았다고 스툭은 분석한다.
또한 한국전쟁은 국제정치의 새로운 판을 짜는 배경이 되었다.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급격히 향상되었고 또한 나토의 군사적 성격이 강화됨에 따라 유럽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정치적 영향력이 강화되었다. 미국과 대결해 많은 사상자를 낸 중국은 여러 면에서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대결하여 한반도의 무력통일을 저지시킴으로써 대외적으로는 국제적 위상을 강화시켰으며, 대내적으로는 통치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후 강대국 대접을 받으려는 중국과 그것을 인정치 않으려는 소련간의 갈등은 중·소분쟁의 원인으로 자라게 된다. 비록 중국이 전쟁 직후 소련의 영향권 아래 놓이게 되었지만, 스툭은 중국을 한국전쟁의 승자라고 평가한다. 스툭은 또한 미국도 한국전쟁의 승자로 평가한다. 미국은 한국전쟁을 통하여 세계적 규모의 군비강화를 달성할 수 있었고, 유럽에서 독일을 재무장시킬 수 있었으며, 또한 나토를 군사기구로 발전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재무장과 일본평화조약의 체결, 타이완과의 방위조약, 그리고 동남 아시아 조약 기구의 탄생이 한국전쟁으로 가능했다.
무엇보다 한국전쟁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세계대전의 예방전이었다는 것이 스툭의 주장이다. 스툭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지 않았으면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하였을 가능성이 높았음을 지적한다. 한가지 예로 한국전쟁 전 유럽에선 유고슬라비아 침공 계획이 소련의 주도로 루마니아와 헝가리 등에 의하여 세워져 있었고, 또한 준비가 진행중이었다. 한국전쟁은 제3차 세계대전의 대리전이었을 뿐 아니라 냉전의 다른 이름인 '장기 평화'의 시작이었다고 스툭은 결론짓고 있다.

■ 한국전쟁의 기원, 북한·소련·중국의 각기 다른 판단

스툭은 한국전쟁의 원인은 김일성의 통일 야욕이 근본적 원인이었다고 지적한다. 김일성이 남침을 구체적으로 구상하기 시작한 시기는 소련과 군사동맹을 맺은 1949년 3월부터였다. 김일성이 먼저 스탈린에게 남침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스탈린은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즉시 찬성하지도 않았다. 이런 스탈린의 신중론은 미국의 개입을 염려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애치슨 발언이 나온 1950년 1월 말부터 스탈린은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다시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에서 1950년 3월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남침을 주장하자 스탈린은 마침내 남침을 승인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스툭은 파악한다.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승인하고 지원하게 된 스탈린의 한국전쟁 결정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스툭의 설명에 따르면 스탈린에게 한국전쟁은 소련 정치권의 관심을 해외문제에 돌림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위치를 강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의미했다. 또한 아시아에서의 전쟁은 중국 공산화 이후 약화된 아시아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을 증대시킬 것이다. 소련의 영향권 아래 있던 북한이 소련의 지원으로 한반도를 통일한다면 실추된 소련의 영향력이 향상되는 부수적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전쟁과 관련된 스탈린의 또 한가지 계산은 아시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유럽에 대한 미국의 관심과 원조를 분산시킬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었다.
스탈린과 김일성의 남침 결정에 중국은 어떤 역할을 하였을까? 중국도 김일성의 남침계획에 관여했다. 한국전쟁이 있기 직전인 1950년 5월 김일성은 직접 베이징을 방문해 마오쩌둥과 남침문제를 상의했다. 그러나 중국은 김일성의 남침계획에 마지못해 동의한 정도로 평가된다. 당시 마오에게 있어선 타이완정복이 더 시급한 과제였기 때문이다. 중국 역시 한국에 대한 미국의 개입 가능성은 믿지 않았다. 결국 김일성의 남침은 미국의 개입 의도에 대한 공산측의 오판에 기인했다는 것이 스툭의 설명이다.

■미국의 단호한 대응

한국전쟁은 미국에겐 예상외의 전쟁이었다. 1949년에는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하였고 1950년 초에는 국무장관 애치슨이 한국을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시킬 정도로 미국은 한국을 전략적으로 낮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국지전쟁을 왜 예상하지 못했을? 미국은 북한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세력은 소련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소련이 북한의 실질적 배후 세력으로 있는 한 소련이 북한을 이용한 남침은 시도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했다. 소련의 지배 아래 있는 북한이 친미 정권인 남한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는 것은 곧 미국에 대한 소련의 도전으로 인식될 위험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워싱턴 관리들은 매우 당황해하면서도 북한의 배후에 소련이 있다는 사실만은 의심치 않았다. 남침은 북한의 도발이기보다는 소련이 미국의 대응 의지를 시험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시작 단계에서 단호하게 대처해야 재발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스툭은 한국전쟁에 개입하기로 결정한 것은 공산권에 대한 단호한 미국의 대응 의지의 표현이었지만, 동시에 동맹국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외교 정책적 조치라는 측면이 강했음도 강조한다. 남한은 미국이 주도하여 세운 정권이었다. 만약 이런 정권이 붕괴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다면 미국은 다른 지역의 동맹국들에게도 비슷한 정책을 취할 것이라는 암시가 될 수 있었다. 남한의 붕괴는 미국의 동맹관계를 근본적으로 흔들 수도 있겠으나, 반대로 남한의 보호는 미국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스툭은 미국이 새로운 전략을 실시하기 위한 기회를 잡으려고 의도적으로 한국전쟁 발발을 조장하는 어떤 책략을 썼다는 수정주의적 시각은 인정하지 않는다. 스툭에게 있어 미국의 한국전쟁 개입은 남침을 예측하지 못한 오판의 대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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