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0년 전인 1997년 8월 31, 전세계에 타전된 긴급소식이 있었다. 한때 영국 왕실의 황태자비였던 다이애나가 차량 전복사고로 사망했다는 것. 그 사건이 있기 1년 전에 다이애나와 찰스 황태자의 이혼 소식이 세계의 외신들을 바쁘게 한 적이 있었다.
사실 다이애나 황태자비는 1981년 7월 29일 찰스 황태자와 결혼하면서부터 잠시도 매스컴의 시선을 벗어난 적이 없다. 그건 영국 왕실의 황태자비이기 때문이 아니다. 대중에게 존경 받으면서도 대중과 가장 가까이 다가가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HIV 바이러스 양성 환자들과 손을 잡으며 기존 선입견을 무너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거나, 아프리카 앙골라에 뿌려진 수많은 지뢰 때문에 목숨을 잃고 신체를 잃은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지뢰가 묻힌 그 땅을 직접 걷는 모습이라든가, 청각 장애자와 수화를 나누는 장면, 또는 인도네시아 나병 환자들을 찾아가 그들과 거리낌없이 손잡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하는 모습,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는 조작된 이미지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진심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이애나는 발레, 클래식, 뮤지컬, 팝 뮤직 등 문화적인 관심도 대단했고 많은 단체를 후원한 바 있다.
그런 그녀가 왕실에서 벗어난 지 일년 만에 사망했다는 소식은 그녀를 바라보던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믿기 어려운 소식이었을 것이다. 사망 10주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가 사망한 이유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물론 그들의 의견마다 나름대로 어떤 확신이 있긴 하겠지만, 굳이 그 사실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마도 외계인 문제처럼 다이애나 전 황태자비의 사망에 대한 진실은 끝내 밝혀지지 않을 테니까.<.br>
그리고, 지금 이야기할 것은 그녀의 사망 원인이 아니라, 살아있었다면 다이애나 프린세스의 46번째 생일이 될 2007년 7월 1일의 생일 파티다. 윌리엄과 해리 왕자, 그들이 어머니의 사망 10주기를 맞이해 숙연한 모습으로 슬픔에 잠겨 있는 것이 아니라, 46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어머니의 생일 축하 파티를 거대한 축제로 기획하게 된 것이다. 이미 그녀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뜻을 담은 두 장짜리 트리뷰트 앨범 [Diana Princess Of Wales Tribute](1997)가 발표되었고, 엘튼 존은 그 무렵 자신의 오래된 노래 'Candle In The Wind'를 다이애나 추모 곡으로 발표해 영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차트 1위에 올랐고, 2007년 현재까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싱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가 이 공연의 첫 무대에 올라 다섯 시간이 넘는 긴 생일 파티를 열어 제친 건 당연하면서도 의미 깊은 일이다.
맞다. [Concert For Diana]는 140여 개국으로 생중계된 그 긴 생일 축하파티를 DVD로 담은 기록이다.
이날 공연은 모두 6만 5천명이 참여했는데, 초대손님들을 뺀 나머지 22,500장의 표는 2006년 12월에 예매를 개시해 17분만에 매진되었다.
고백하면, 리뷰를 위해 처음 이 공연 DVD를 받아 들었을 때 공연의 하이라이트만 담은 두 시간 정도의 편집본 정도일 것이라 생각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공연을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첫 번째 디스크를 재생시키는 중 해가 기울었고, 어느새 밤이 되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첫 번째 디스크는 무려 세 시간이 넘는 분량을 담고 있었고, 두 번째 디스크 역시 두 시간이 넘었다. 영국 웸블리 구장에서 치러진 이 공연은 오후 네 시에 시작해 밤 10시 15분에 끝났다. 우연하게도 비슷한 시간대에 재생을 시작하면서 더 이 공연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흥미로운 것은 난 편히 앉아서 이 공연을 지켜봤는데, 이날 웸블리 경기장에 참여한 관객들은 그 긴 시간 동안 지치지도 않고 공연을 즐겼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수퍼스타가 출연할 때마다 즐겁게 그들의 음악 속으로 빠져든 관객들이 얼마나 다이애나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무엇보다 돋보인 것은 이날 공연이 단지 유명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노래만 부르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 생전 다이애나 황태자비와 만났던 일반인들의 인터뷰를 공연 중간중간에 삽입해 그녀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다이애나에 대한 기억이 없다고 하더라도 인터뷰를 통해 드러나는 다이애나의 모습만으로도 우리는 진정 위대하고 인간적인 영국 황태자비를 만나는 간접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인터뷰들은 'Diana & Me'라는 별도의 부가영상으로 따로 접할 수도 있다.)
이 공연에는 영국과 미국의 팝, 록, 힙합, R&B, 소울 등 장르를 초월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 사실 이 공연에 참석할 것을 부탁한 아티스트 가운데 몇몇은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 중에는 프라하 공연중인 1997년 다이애나의 사망 소식을 듣고 쇼크를 받았던 마이클 잭슨도 있었다. 마돈나와 레드 핫 칠리 페퍼스, 킨을 비롯한 여러 아티스트도 참여할 예정이었지만 2007년 7월 7일 열릴 예정인 'Live Earth' 콘서트와 겹치는 바람에 무대에 서지 못했다. 평소 다이애나가 좋아했다는 퀸의 'Under Pressure'는 조스 스톤과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가 함께 할 예정이었지만, 편곡이 오리지널과 다르다는 이유로 브라이언 메이가 참석을 거부한 특별한 경우도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아티스트들은 모두 개런티를 받지 않고 출연했다. 이 공연의 처음을 여는 아티스트는 엘튼 존. 'Candle In The Wind'의 기억이 있다면 그가 이 즐거운 파티의 마무리를 담당하는 것이 가장 멋지겠지만 다이애나의 거대한 초상을 배경으로 그는 까만 피아노 한 대를 연주하며 'Your Song'을 부르며 이날 공연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엘튼 존과 다이애나의 기억은 워낙 각별했고, 그가 단지 오프닝으로 한 곡 부르고 사라진다는 건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공연의 마지막에 다시 등장해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과 'Tiny Dancer', 그리고 'Are You Ready For Love?'를 부르며 대미를 장식했다.)
그의 뒤를 이어 등장한 아티스트를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출연 아티스트의 리스트로 대신한다. 물론 이것 역시 DVD의 뒷면에 가지런하게 인쇄 되었을 테지만.
Sir Elton John, Duran Duran, James Morrison, Lily Allen, Fergie, The Feeling, N.E.R.D. featuring Pharrell William, Nelly Furtado, English National Ballet - , Rod Stewart, Kanye West, P. Diddy, Take That , Ricky Gervais, Sir Elton John
다섯 시간이 넘는 이 공연은 그야말로 하나의 거대한 파티였다. 공연자들은 다이애나의 추억을 이야기하면서도 이날 공연이 추모식이 아니라 생일 파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곡 선택이나 편곡 등은 충분히 밝고 경쾌하게 준비되었다. 사실 전세계로 생중계된 공연 장면 가운데 윌리엄 패럴과 N.E.R.D.의 'Drop It Like It's Hot'과 'She Wants To Move', 넬리 퍼타도의 'Maneater', 카니예 웨스트의 공연장면에서 조금 과한 곡의 선택이나 배경화면이 걸리긴 하지만 공연의 의미를 살리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대부분 이날 공연의 의미를 충분히 감안한 선곡을 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공연으로 만들어나갔다.
사실 다이애나에 대한 애정이 그들만큼 강렬하진 않겠지만, 이 공연 DVD를 보는 동안 그녀가 남긴 일들이 단지 이벤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이 공연 DVD는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는 거대한 파티와 동시에, 다이애나의 인간적인 모습을 확인하는 자리이다. 취향과 맞지 않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발레 공연, 무대장치 없는 뮤지컬 레퍼토리까지도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꾸며진 것은 제작진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 낯선 공연과 팝 수퍼스타의 공연이 참 잘 어울리는 이유는 생전의 다이애나의 모습을 회상하는 인터뷰를 통해 충분히 공감을 얻게 된다.
[Concert For Diana]는 의미와 재미를 잘 살린 영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즐겁게 공연을 벌이는 아티스트와 그 공연을 즐기는 65,000명의 관객의 밝은 표정에서 누구나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윌리엄 왕자와 해리 왕자 사이에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있었어도 아마 그렇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2007년 12월 한경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