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책상 정리를 하다가 오래된 편지며 일기장들을 발견했던 때가 있었다..도대체 일기를 써본지가 언제였는지조차 모를 그렇게 시간이 흘러버렸던 때..버려야겠다고 마음 먹고 가슴에 안고 마당 한 구석에 자리잡은 작은 소각장으로 갔다..그럴 때 누구나(?) 꼭 나오는 버릇이 있다..그냥 태워비리면 될 것을 일기장 한장한장을 읽어보며 한장씩 뜯어낸다..그리고 편지 역시 봉투채로 그냥 넣어버리면 될 것을 하나하나 꺼내서 읽어보고 불 속에 던진다..그래서 그 추억들을 버리는 시간은 배가 된다..
그래, 아마도 그건 지나간 나의 흔적일 것이며, 어느 곳에 잠깐 묻어두었던 추억들이었을 것이다..우연한 기회로 다시 꺼내보고 읽어보면서 혼자 웃고 울고 할 시간을 다시 만들어주는 추억...
지나고보면 참 유치하기 짝이 없다..세상 고민 다 끌어안은 척, 지금 나에게는 친구가 세상의 전부라는 척(물론 친구는 어른이 되어서도 소중한 존재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거울 한번 더 보고 티비 음악프로그램을 더 좋아하던 시절(지금은 가수 이름도 제대로 몰라서 티비 속 저 아이가 누군가 싶다)...그래도 그때는 그게 전부였다..친구들과의 수다가 행복했으며, 분식집 떡볶이가 모든 음식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고, 세상에서 시험이 사라져야한다는 둥 졸업만 하면 시험은 이제 땡이라는 둥(그게 아니었지만 ㅠㅠ).....
머저리클럽의 여섯 악동들 역시나 그런 추억을 지금 꺼내보고 있었을 것이다..우연히 마주친 여학생을 따라가서 집을 알아내고, 한마디도 하지 못할 전화를 걸고, 시를 쓰고, 까까머리에 어떻게 멋을 낼까 궁리를 하고..이성에게 잘보이려고 칠칠맞던 교복을 깨끗하고 단정하게 입고,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일들에 콩닥콩닥 가슴이 뛰었던 기억마저..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도 변함없는 입시지옥의 그 시간들을...
여기, 다섯명의 악동들이 있었다..영구, 동혁, 동순, 문수, 철수..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되서 영민이라는 아이가 전학을 온다..다섯 악동은 기선제압을 위해 영민이를 손봐주기로 한다..물론 힘으로 따지자면 다섯 악동들이 이겼던 것은 맞다..근데 기싸움에서는 영민이가 이겼다..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손봐주려했던 비겁자들에게 결국 진짜로 이긴건 영민이였다..침 한번 퉤 뱉어주고 인연 끝냈을 것 같았는데..이제 영민이까지 악동들은 여섯명이 된다..드디어 머저리클럽 탄생이다..
그리고 이 녀석들은 고등학교 3년을 지내면서 어른이 되어간다..
여학생과 빵집에서 데이트도 하고, 옆학교 여학생들과 같이 클럽도 만들고, 시도 쓰고, 가출도 해보고..세상 다 끝날 것 같은 고민도 해보고..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도 하고..
하나의 계절이 가고 한해의 시간이 갈때마다 머저리클럽은 점점 어른이 되어간다..그들 자신들도 알고 있었을까? 그들이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그 모습을 느끼고 있었을까....
이 책 <머저리 클럽>은 지나간 우리들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추억에 빠지게 한다..
이야기의 배경은 1970년대..작가의 나이는 나의 어머니와 한살 차이..그리고 나는 1970년대에 태어났고..어렸을적 엄마의 이야기를 가끔 듣는다..기차를 타고 통학을 했으며, 지금의 버스의 콩나물 시루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책표지에 있는 것 같은 검정색 교복을 입고, 곤색 운동화를 신고(컨버스화 같은 ^^)..어쩌다 한번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하면서 그땐 그랬구나 싶은 이야기는 바로 옆의 엄마의 입에서 그대로 흘러나온 이야기다..흑백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의 엄마에게서..그래서 이 책을 읽었을때도 피식피식 웃음이 나면서 자꾸만 엄마를 떠올리게 된다..'엄마 이렇게 학교 다녔겠구나, 엄마도 문예반 같은 거 들어갔었을까?, 빵집에서 단팥빵 사이에 두고 데이트도 했을까? ^^ "
나는 90년대 초반에 고등학교를 다녔다..잠시 사라진 교복을 다시 입은 첫 세대..그때는 왜 교복을 입어야 하는지 참 불만스러웠다..그러던 어느날 버스를 타고 집에 가고 있는데, 버스 안의 아주머니들이 나와 친구들을 보고 한말씀 하신다.."그때가 좋은거여~ 화장도 안하고 맨얼굴로 그렇게 다닐때가 행복한 줄 알아야 혀~ 얼마나 이뻐 뽀송뽀송~ " 한참 멋부리고 싶은 그때, 교복이라는 통일성을 빼면 여학생들이 차별화를 둘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머리핀이나 선생님께 들키지 않을 정도로 눈썹을 그리고 다니는 정도, 아니면 좀더 이쁘고 세련된 단화를 신는 정도..그 안에서 우리들을 얼마나 답답해했는지 모른다..교복도 싫고, 두발 단속도 싫고(그 당시 우리 학교는 정말 두발 단속을 했다), 학교와 집을 반복해서 다니던 그 시간들이 얼른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때 그 버스 안의 아주머니들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는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알 수 있었다..조금씩 화장을 하면서도 어려보인다는 말에 감사하게 되었으며, 그저 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그때가 좋았다는 것을 너무 빨리 알아버렸다..대학이라는 곳도 그리 대단한 곳도 아니었고, 새로운 사람들과 환경에 적응하는 건 예상보다 힘들었으며, 학교라는 울타리라기 보다는 정말 사회에 툭 던져진 기분이었다..그래서 고등학교때보다 더한 방황과 생각을 했으며, 두려웠던 것 같다..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던 거다..
머저리 클럽의 녀석들 역시 그때는 몰랐을 거다..그리고 지금에서 이 책을 써내려간 작가와 이 책을 읽는 우리들 역시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그때는 왜 몰랐을까...하고...
마지막 졸업식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무슨 일생일대의 행사처럼 여기는 졸업식..내가 겪었던 고등학교 졸업식은 불참자가 참 많았다..대학에 떨어졌다는 이유로, 그냥 가기 싫다는 이유로...막연하게나마 '아, 졸업식은 꼭 안가도 되는거였구나' 싶은 철없는 생각까지 들었었는데..머저리 클럽의 졸업식을 보니 참 경건하다..사회로 나가는 우리들을 뒤에서 지켜보며 다독여줄 것 같았다..졸업을 해도 그 우정은 계속될 것이며, 세상을 향해 한발짝씩 나아가는 학생들에게 든든한 버팀목 같이 그 자리에 그렇게 그 모습 그대로 있을 것 같은..
진짜 추억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은 <머저리 클럽>..
당신의 추억은 어디쯤에 묻어두셨습니까......
이 책이 태어나기 전, 아마 <완득이>와 비교 아닌 비교를 시작하게 된 것 같다..성장소설로써 지금의 시대를 그대로 그려낸 완득이..무식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담임 똥주와 우리들의 꼴통 도완득, 그리고 그 환경 속의 사람들..완득이의 고등학교 이야기를 너무나 유쾌하게 풀어간 <완득이>..
시대는 다르지만 비슷한 시기를 지내고 있는 <머저리 클럽>의 녀석들과 앞으로도 계속 다른 독자들에게도 비교 당할지 모르겠다..하지만 이미 두 권의 책 모두를 읽어본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완득이>나 <머저리 클럽>은 같은 성장소설이고 같은 시행착오를 거친 우리들의 이야기지만, 그 여운과 추억은 다를 것이라고..분명하게 맛의 차이가 느껴져서 가슴이 따뜻해지고 있었다고...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십년이 넘었다..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 나이의 두배 정도를 살아오신 엄마를 떠올리면 이 책을 읽고 있었다..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도 그때의 기억을 까맣게 잊고 살았던 지금, 필요없는 말이지만 한번 바래보고 싶다..
'그때로 다시 한번 돌아가고 싶다'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