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읽는 내내 선생님의 깊은 이해를 한 구절이라도 놓칠 새라 줄을 긋고 다시 읽고,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도록 머리와 마음속에 새겨 놓으려고 애썼었다. 벌써 희미해져가는 기억력이 원망스럽지만 담론이란 책을 통해 늦게나마 선생님을 알았다는 사실 하나로도 지금까지도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담론 이후 고전에 대한 다른 책들을 몇 권 읽었지만 그만한 감동은 없었고 자연스레 신영복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만 키웠다. 지식인들이 들려주는 고전 독해에 귀 기울일 뿐, 감히 고전을 스스로 독해하고 체득할 엄두는 내지 않는다.

이번에는 하버드대학교의 중국 철학 수업을 참관해 본다.

가장 인상적인 철학가는 순자였다.
심각한 환경오염, 기상이변, 자원고갈, 인간성 상실, 인공지능의 위협과 같은 여러 문제들에 대한 해법으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그저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는 단순한 의미는 분명 아닐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많은 이들이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옛날이 좋았다고 푸념처럼 말하며 한숨짓는 요즘, 저자가 말하는 순자의 해법은 나에게 너무나 신선하고 희망적이었다!!
인간에게서 희망을 찾아야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결자해지를 넘어서는 인간에 대한 믿음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혁신적인 생각!!

저자는 불행하고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고, 위기가 점점 커지는 것을 목도하면서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 채 대안이 없다고 느끼는 현실 안주의 시대로 규정될 위기에 처한 21세기에 중국 철학에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다.

진정한 자유는 내면의 핵심에 있는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데 있고, 발전의 폐해에서 회복하기 위해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현실 안주의 시대"에 사는 많은 사람들을 가두는 덫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저자의 중국 철학식 대안을 들어 보자.

# 관계에 대하여(공자 - 가상의식)
맥락을 초월하고 삶의 복잡성을 초월하는 윤리적 틀 따위는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정신없는 세상뿐이며, 그 안에서 노력하고 발전해야 한다. 일상적인 가상의식은 새로운 현실을 상상하고 서서히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수단이다. 우리 삶은 그런 일상에서 시작하고 그런 일상에 머물러 있다. 오직 일상에서 진정 위대한 세상으로 바꾸는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원대하고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사소한 순간 순간 가상의식을 실천해 인, 즉 어진 감정, 선한 감정을 발전시키고 선한 행동을 체화하자.

# 결정에 대하여(맹자 - 변덕스러운 세상)
자아도 복잡하고, 세상도 복잡하고, 상황의 추이도 복잡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상황, 상황의 복잡함을 완벽히 인지하도록 훈련하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행동이 어떻게 상황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지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런 잠재력, 바로 선, 즉 인을 실천할 잠재력을 타고 났다.
변덕스러운 세상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것은 세계가 정말로 끊임없이 분열되고 예측 불가능하다면 노력에 따라 세상이 더 나아질 수도 있다는 것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각 상황에 최선을 다해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무언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결과야 어떻든 주변 사람에게 더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분명한 지침이 있고 세상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버리면, 남는 것은 우리를 인도하는 마음이다.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마음먹기에 따라 사물이나 상황을 올바로 감지하고 성장의 토대를 마련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바탕으로 열심히 노력한다. 그러는 사이에 내가 생각한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내가 몰랐던 내 모습도 발견한다. 그리고 마침내 한 때 고정불변이라고 생각했던 세계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세계로 보이기 시작한다.

# 영향력에 대하여(노자 - 우리가 만드는 세상)
어떤 상황에서든 도를 재창조하려면 일상생활에 스며 있는 구분과 경계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아야 한다. 어떤 종류든 구분을 하는 것은 도에 어긋난다. 구분은 도덕적이고 옳게 보여도 위험하다.

약함이 강함을 이기고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
현인이라면 가족이든, 친구든, 동료든 누군가를 마주칠 때마다 부드러움과 융통성으로 내 주위를 하나의 세계로 만든다. 내가 만든 작은 세계 안에서, 타인이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 진정한 영향력은 눈에 띄는 힘이나 의지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무척 자연스럽게 느껴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세계를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는 누구나 노자나 현인이 될 잠재력 뿐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잠재력도 가지고 있다.

# 활력에 대하여(내업 - 마치 신과 같이)
바위와 식물, 그리고 혼의 기는 늘 일정하다. 그러나 인간은 뒤죽박죽 섞인 기가 내부에서 끊임없이 이동하다는 점에서 지구 상의 다른 모든 것들과 다르다.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것들이 기를 다듬는 핵심이다. 몸과 마음을 비롯해 우리의 모든 부분이 기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몸을 단련하면 마음을 단련하는데 좋고, 거꾸로 마음을 단련하면 몸을 단련하는데 좋다. 따라서 어느 한 부분을 단련하는 것은 몸 전체를 더욱 균형 잡히고 안정적으로 만든다.
카리스마 있는 사람은 변신할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게 아니라, 변신할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잠재력을 잘 키우면 자신의 기운을 이용해 다른 사람을 자기 쪽으로 끌어 올 수 있다.

# 즉흥성에 대하여(장자 - 변화의 세계)
장자는 세상 모든 것은 운동성과 연관성이 일정하게 중단없이 춤을 추는 흐름과 변화를 통해 어떤 것으로든 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모든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다른 것의 일부가 된다. 이 변화와 운동의 과정은 매 순간 일어난다.
우리의 의식적인 사고는 "당위성", 즉 옳다고 여겨지는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크고, 무엇이 고결하고, 무엇이 유용한지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의존하는 단어나 가치가 얼마나 자의적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에게 어떤 관점이 있다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 관점이 보편적이라 단정하고 마음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사물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지나치게 고정된 범주와 가치를 만들어 낸다.

우리가 진정으로 모든 것을 무제한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삶의 모든 면을 찬양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을 초월하는 능력은 바로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에서 나온다. 우리가 지구 상의 다른 어떤 생물보다 우주를 더 넓게 포용할 수 있는 이유는 방대한 상상력 덕분이다. 오로지 인간만이 끝없는 가상 세계에 들어가 다른 존재의 시각으로 우주를 볼 수 있다. 그러려면 항상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도에 따라 즉흥적으로 움직이고, 적극적으로 변화의 일부가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 인간성에 대하여(순자 - 세상 다스리기)
한때는 예측 불가능한 자연의 혼돈으로 보이던 갑작스러운 비, 바람, 추위, 더위, 양분, 독 같은 것들이 조화로운 체계로 바뀌었다. 땅에서 자라는 것이 이제는 하늘의 원대한 법칙과 관련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자연 그대로가 아니다. 인간이 세계를 길들인 결과다. 인간이 그렇게 만들었고, 서로 별개였던 현상이 일련의 조화로운 과정이 되었다.

다시 말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인간이다.
세상의 많은 부분이 우리가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이 세계를 우리가 만들었다면, 세계에서 우리가 차지할 적절한 위치를 어떻게 찾을지 자문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그 위치를 잘 다졌는지 자문해야 한다.

순자은 인간문화와 사회의식은 위대한 혁신이 아니라 일상적 기술연마와 작위로부터 생겨난다고 생각했다... 우리 인간은 생물 중 유일무이하게 자신을 바꾸고 자연스러운 상태를 초월하는 세계를 구축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자신을 세상의 다른 존재와 구별하려는 성향은 인간의 자산이며 도덕성, 의식, 혁신을 창조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세상은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생각이 위험한 이유는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 것을 창조할 수 있는지 깨닫지 못하게 하고 주변 세계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순자는 인간의 문명 개입 이야기에서 "자연스러운 것"에 인간의 노력이 쌓여 비할 데 없이 훌륭한 결과가 나온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모든 혁신은 해결책이 필요한 새로운 문제를 낳는다. 그러나 그 해결책은 혁신 이전으로의 회귀가 아니다. 앞선 혁신에서 생긴 문제를 해결하며 한걸음 더 나아가는 식으로 혁신을 축적하는 것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작위를 현명하고 올바르게 사용했느냐고 묻는 질문이다.
자연적인 것과 작위적인 것의 대결로 끌고 가면 토론은 어려워진다. 토론 방향을 잘못 잡으면 진짜 당면한 문제를 다루지 못한다. 자연에 집착하면 세상을 바꾸는 인간의 힘을 포기하게 된다.
우리는 작위적으로 세계를 구성했고 그 세계는 말할 수 없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세계를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키는 인간의 능력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이제까지 해 온 일들을 이해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바꿔야 한다.
이 세상을 구축한 것은 우리다. 따라서 세상을 바꿀 사람도 우리다.

# 가능성의 시대
생각 없음과 현실 안주의 반대는 마음 챙김이 아니다. 참여다.
일상세계와 삶에 뿌리를 두고 수동적인 태도를 버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꿀 최선의 방법을 묻고 또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