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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딜, 세 편의 드라마

미국의 뉴딜 · 무솔리니의 파시즘 · 독일의 나치즘

볼프강 쉬벨부시 저/차문석 | 지식의풍경 | 2009년 04월 27일 | 원제 : THREE NEW DEALS : Reflections on Roosevelt's America 리뷰 총점8.7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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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4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287쪽 | 444g | 153*224*20mm
ISBN13 9788989047353
ISBN10 8989047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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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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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2명)

“문화사의 거장”이라 불리는 볼프강 쉬벨부시는 1941년에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쉬벨부시는 프랑크푸르트와 베를린에서 문학, 철학, 사회학을 공부하였으며 1973년부터는 뉴욕에서 자유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브레히트 이후의 사회 드라마』(1974), 『철도 여행의 역사』(1978), 『기호품의 역사』(1980), 『지식인의 황혼』(1982), 『섬광』(1983), 『빌헬름 시대의 한 오페라』(... “문화사의 거장”이라 불리는 볼프강 쉬벨부시는 1941년에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쉬벨부시는 프랑크푸르트와 베를린에서 문학, 철학, 사회학을 공부하였으며 1973년부터는 뉴욕에서 자유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브레히트 이후의 사회 드라마』(1974), 『철도 여행의 역사』(1978), 『기호품의 역사』(1980), 『지식인의 황혼』(1982), 『섬광』(1983), 『빌헬름 시대의 한 오페라』(1985), 『뢰벤의 도서관』(1988), 『패배의 문화』(2003) 등이 있다.
1965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다.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에 급진적 민주주의 운동을 하였고, 1994년에 대학원(성균관대 정치학과)에 들어간 후 '대중 운동'과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해 연구하여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근에는 '북한의 국가와 사회'와 '노동의 역사'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성균관대, 동국대 등에서 연구원 및 연구 교수로 근무했다. 현재는 통일교육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 1965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다.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에 급진적 민주주의 운동을 하였고, 1994년에 대학원(성균관대 정치학과)에 들어간 후 '대중 운동'과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해 연구하여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근에는 '북한의 국가와 사회'와 '노동의 역사'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성균관대, 동국대 등에서 연구원 및 연구 교수로 근무했다.

현재는 통일교육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반노동의 유토피아』, 『대중독재의 영웅 만들기』(공저), 『노동의 세기』(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전쟁이 만든 나라, 북한의 군사공업화』(공역), 『악의 축의 발명』(공역), 『현대사상의 파노라마』(공역)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20세기 사회주의에서 화폐와 수령」, 「북한의 시장과 시장 경제」, 「신의주 공장 연구」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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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p.235

줄거리

칼 폴라니는 파시즘과 뉴딜과 사회주의를 연구하면서 시장 경계와 사회에 대해 분석했다. 그러나 폴라니에게 파시즘, 사회주의, 뉴딜은 모두 시장과 시장 경제에 대한 안티테제의 의미를 갖고 있지만, 이들 상호 간의 관계는 본격적으로 조명되지 않았다. 이러한 역할을 자청하고 있는 것이 쉬벨부시의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1930년대에 파탄의 직면에 처한 국가를 구할 유일한 권위로서 작동한 뉴딜, 파시즘, 나치즘은 전체주의로 나아갔다. 이들 각각은 어떠했고 이들의 관계는 어떠했나? 쉬벨부시는 여기에 주목한다. 세계사 상식에서는 미국의 뉴딜은 ‘좋은’ 것이며 그 반대편 극단에 전체주의 국가들의 ‘극악함’이 자리해 있는데, 쉬벨부시는 이들을 비교하고 수렴시키기 위해서 아예 이들을 섞어 버린다. 그리고 이들을 비교하기 위해 먼저 이들이 1930년대에 공유했던 공통적인 기반에 주목한다. 그것은 일단 건축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었다.

신고전주의 건축과 뉴딜들 - 서론
쉬벨부시는 당시의 건축학의 사조를 뉴딜들에 관한 설명으로 연결시킨다. 쉬벨부시는 ‘신고전주의’를 눈여겨 주시한다. 신고전주의는 ‘국가가 권력과 권위를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보여 주는 건축 양식’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신고전주의는 대공황 시기에 총체적인 국가 개입으로 절정에 달했다고 평가한다. 국가 개입, 그것은 파시즘, 나치즘, 스탈린주의, 그리고 뉴딜을 하나로 수렴시키는 당대의 조건이자 요인이었다. 이 시기에 유행하고 확산된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은 이데올로기와 체제가 아무리 달랐다 해도 경쟁적으로 치솟아 올랐다.
자본주의의 위기 시기였던 대공황 시기에 대중들은 모더니즘의 가장 심각한 적들, 즉 국가사회주의(나치즘)와 파시즘에 현혹되었다. 왜냐하면 국가사회주의와 파시즘은 대중들에게 그들이 원하고 필요로 했던 것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기념비성이었다. 기념비적 건축을 전체주의적 정권들과 잘못 동일시하는 것은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반영했다. 근대 건축이라고 하면 자유민주주의나 사회 복지 국가를 연상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대립 구조의 가정들에 대해서는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념비적 건축은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제도들의 힘을, 독재 체제에서는 국가의 공격적인 권력을 똑같이 잘 보여 준다”는 프랑코 보르시의 주장이 그랬던 것처럼, 학자들은 신고전주의적인 모뉴멘털리즘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점차 깨닫게 되었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체제의 개혁적 국가들뿐 아니라, 볼셰비즘과 파시즘의 국가들 모두가 건축을 필요로 했다. 그것은 보다 깊은 의미와 공동체에 대한 신뢰, 존경, 그리고 의사 종교적 감정을 자극하는 하나의 사원처럼 국민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국민 위에 우뚝 서게 될 건축이었다.

친족 관계 - 1장
국가사회주의자들은 루스벨트가 취임 후 첫 100일 동안에 단행했던 긴급 구제 조치들을 자신들의 혁명적 프로그램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으로서 환영했다. 유럽의 논평가들도 루스벨트를 무솔리니와 같은 국민 투표제로 뽑힌 독재자로서 묘사했다. 베르나르 페는 “대중들의 애정과 열광적 지지를 받는 진실한 독재자”라고 불렀고, 한 저자는 “미국에서도 역시 자본주의는 코포라티즘적인 국면에 진입했다”라고 썼다. 일거에 파시즘은 갑작스레 그 영향력이 국경들을 초월하는 하나의 전 지구적 세력처럼 보였다.
그래서 당시 루스벨트의 정적들은 루스벨트의 제반 정책들에 대해 “러시아 방향으로 너무 멀리” 나아간 것으로 묘사했으며, 심지어는 민주당 의원조차 루스벨트를 “이 나라의 구석구석에다 히틀러주의를 이식하려” 했다고 비난했다. 허버트 후버는 “뉴딜의 경로를 계속해서 따라가면 우리 정부는 일종의 파시스트 정부가 될 수 있다”라고 하며 루스벨트의 정책들에 대한 공개적인 저항을 부르짖었다.
뉴딜 행정부는 파시즘/나치즘과의 유사성을 숨기지 않았다. 루스벨트 스스로 언젠가 기자들 앞에서 무솔리니와 스탈린을 자신과 “피를 나눈 형제들”이라고 말했고, 루스벨트의 고문단의 렉스퍼드 터그웰은 파시즘을 향해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보아 왔던 것 중에서 가장 깨끗하고, 가장 깔끔하며,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적 기계의 부속품이다. 그것은 나에게 부러움을 자아냈다”고 말했으며, 루스벨트의 내무장관 해럴드 이커스는 “이 나라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러시아에서 해 왔던 것의 일부이며, 심지어 어떤 것들은 히틀러 치하 독일에서 행해진 것들이었다”고 선언했다.
이질적인 것으로 생각되어 왔던 이 체제들을 마치 친족 관계처럼 연결시키는 기제들은 다양하다. 군사 구조들과 군사적 메타포들이 그러했으며,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도 그러했다. 뉴딜의 이념적 고향이라 할 ‘혁신주의’를 신봉하던 미국 관료들의 외침은 ‘자유방임주의는 죽었다. 사회 통제 만세’였다.

리더십 - 2장
오늘날 아돌프 히틀러와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는 거울상체로 비춰진다. 이보다 더 극적인 인물 대비 연구를 상상하기 어렵다. 히틀러는 사악한 독재자나 전체주의의 화신으로 기억된다. 반면에 루스벨트는 귀족적인 신사이자 자유민주주의적 휴머니즘의 구현자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1930년대 당대인들은 상이한 입장을 취했다. 그들에게 히틀러와 루스벨트는 모두 대중을 자신의 영향력으로 사로잡았던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종류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국가사회주의나 뉴딜은 모두 불가능했을 것이다.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은 통상적인 대의제가 더 이상 결과들을 산출하지 못하거나 혹은 공공의 열광을 불어넣지 못하는 그러한 위기 상황에서 등장한다. 사회학적인 용어로 말한다면, 그러한 현상은 위기 상황에서 불신당해 온 의회와 정당 같은 매개 기구들을 우회하는, 대중과 지도자 간의 직접적인 국민 투표식 결합으로 설명될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 말한다면, 구체제에 대한 공동의 반란에서 대중과 카리스마적 개인이 상호 수렴한 것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당대인들은 히틀러와 루스벨트가 인민의 영혼을 감동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들의 연설은 인간적이었으며 친밀감을 주었다. 그들은 각자의 고유한 방식으로 청중들에게, 군중이 아니라 마치 청취자 개개인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루스벨트가 좋아했던 의사소통 수단인 라디오는 지도자에게 가장 친밀한 사회 단위인 가족에 대한 접근을 가능케 했으며, 자신의 메시지를 그 가족 구성원들 각각에게 친히 전달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나치의 주요 집회 무대에서 펼쳐진 인민과 지도자 간의 일체감은 루스벨트가 노변정담들을 통해서 맺어 나갔던 친밀한 연계와는 달랐지만, 양자 모두는 집단적인 경험이었고 최종 결과는 매우 동일했다. “가장 대규모의 행사들에서조차, 개별적인 청중들 모두는 하나같이 총통이 자신에게 직접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한 것이야말로 개인들 하나하나가 이 사람에게 쏟는 거대한 애정과 충성의 원천이다.”

선전 - 3장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루스벨트 행정부와 히틀러 정권이 수행했던 홍보 작업은 이전의 그 어떤 정부와도 달랐다. 당시 미국출판인협회의 대표였던 엘리샤 핸슨은 “신문사와 통신사에 고용되어 뉴스를 작성하는 기자들보다 정부를 위해서 뉴스를 쓰는 신문 기자의 수가 더 많다”고 빈정댔다. 물론 미국의 언론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고 정부의 직접적인 지령을 받지 않았지만, 방송 허가권 등을 통해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언론을 통제했다. 미국이 특이했던 것은, 라디오 방송국들은 말해야 할 것에 대해 지시를 받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대개 그들은 해야 할 말을 이미 말하고 있었다.
어떤 것을 완전히 전유해 내는 능력 면에서 나치당만이 그러한 능력을 독특하게 갖고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이 시기의 “상징 전쟁”에서 보듯 선전에서 상징의 중요성은 분명했다. 선전은 이미 상승하고 있는 어떤 운동에서 가장 잘 작동하며, 선전의 효과가 가장 잘 나타나는 순간은 위기와 혁명의 시기에 온다. 그때는 국민의 의지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을 때인데, 그때야말로 선전 슬로건은 지금까지는 불명료했던 인민의 의지를 명확히 표출하게 된다.
뉴딜은 상징과 강압을 거대한 선전 캠페인 속에 통합해 냈다. 대표적인 것이 블루 이글 캠페인이었다. ‘블루 이글’은 1933년 7월에 대공황에 직면해 끝없이 추락하는 미국 경제를 통제하기 위해 착수한 정책이었다. 루스벨트는 그 캠페인을 “실업에 대항하는 여름 대공세”라고 묘사했으며, 친구와 적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블루 이글 배지는 옷에 달도록 하였고 블루 이글 포스터는 가게나 공장에 걸도록 했다. 블루 이글 상징물이 없을 경우 대공황과 싸우는 국민의 군대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고, 심지어 ‘우리와 함께하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의 적’이라고 공표되었다. 블루 이글을 비방하는 사람들은 ‘얻어맞아도 싸다’는 정치인의 공개적인 발언도 회자되었다. 《데일리 헤럴드》의 한 특파원은 “독일의 스와스티카(나치 갈고리 십자가)보다 블루 이글이 더 많았다”고 했다.
히틀러 정권과 루스벨트 행정부가 행한 선언들은 한도 끝도 없었지만 그런 선언들의 실제 내용은 별로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았다.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던 것은 어떤 특별한 사업과 그것의 성공 기회들이 아니라, 그러한 사업들에서 나타났던 감정적 호소였다. 국가사회주의와 뉴딜은 1930년대에 정치적 성공을 위해 가장 필수적이었던 재능을 갖고 있었다. 즉 혁신적으로, 대담하게, 그리고 파렴치하게 상징을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 그것이었다.

지역주의와 ‘땅으로 돌아가자’ 운동 - 4장
대공황의 파국은 국가의 재발견과 구현에 자리를 내주었다. 국가는 좌절의 시대에 유일하게 실재하고 믿을 수 있는 가치의 원천이자 최후의 피난처로 간주되었다. 자유주의 경제의 토대 붕괴는 새로운 “지반”을 찾기 위한 탐색을 촉발시켰다. 이탈리아와 독일 그리고 대공황에 영향을 받은 다른 모든 나라들에서 그러한 탐색은 땅에 대한 신화를 창출했다.
유사한 과정이 정치 심리학에서도 발생했다. 국민들은 보호와 지침을 얻기 위해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에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대신 국민들은 새로운 유형의 권위주의 국가에 신뢰를 두었다. 이런 국가는 이탈리아와 독일에서는 일 두체와 총통으로 제도적으로 인격화되었고, 미국에서는 루스벨트로 상징적으로 인격화되었다. 지도자의 경제적 임무는 국가를 세계 경제로부터 해방시켜서 국내의 토착적인 토양에다 이식시키는 것이었다.
아우타키, 즉 국가의 경제적 자급자족은 1930년대의 표어가 되었지만, 이것은 단순한 경제적 개념 이상의 것을 의미했다. 1930년대에 재발견된 국가는 전 인민의 국가였다. 계급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저 평범한 시민만이 존재했는데, 이들은 계급적 분열을 넘어 하나의 공동체로 통합되었다. 이러한 운동의 일부를 차지했던 것이 바로 “지역”의 부활이었다. 왜냐하면 대지와 향토만이 자신을 안심시키는, 소박하고도 안정적인 그 무언가를 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루스벨트 역시 땅은 자본주의에 의해 황폐화된 세계를 기적적으로 재생시키는 일종의 마술 재료와 같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헨리 포드는 산업과 농업 간의 균형의 필요성을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포드는 “농업에서의 한 걸음과 산업에서의 한 걸음으로, 미국은 안전하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목표는 많은 사람들이 19세기에 파괴되어 버렸다고 믿었던 자연과 경제, 기술과 문화 사이의 균형과 조화를 복원하는 것이었다. 제시된 해결책들은 거대하게 통합된 산업적?농업적 사업들에 의해 비대해져 버리고 파산된 경제를 좀 더 적정한 규모의, 균형 잡힌, 그리고 무엇보다도 위기 방지적인 체계로 어떻게 재조직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그것은 이전 시대의 “유기적” 혼합 생산으로 복귀하는 것, 즉 “재농업화”를 의미했으며, 혹은 거대 규모의 산업을 농업 생산 속에 배태시키거나 아니면 농업 생산과 결합되도록 소규모 단위들로 분화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파시즘, 국가사회주의, 뉴딜 모두는 각종 선전을 통해 대중들을 열광시키면서 전원-정착지를 건설하였다. 그러나 이들 정착지 운동은 정책의 상징이 되었기도 했지만, 민주주의 체제이든 혹은 독재 체제이든 간에 공영 주택은 위신을 위한 사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웅장함이 매우 부족하다. 이는 1936년 이후부터 선전이 왜 다른 종류의 건설 사업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는가에 대한 이유이다. 그들은 수년 전에 소련에서 수행되었던 거대한 공공사업들로 시선을 돌렸다.

공공사업 - 5장
모든 정치 체제는 전시 사업을 추진한다. 전시 사업을 통해서 정권은 세계에 자신을 표출하고 자신들의 정치의 목적, 방법, 이상이 판단되기를 기대한다. 파시즘, 뉴딜, 국가사회주의의 경우 전시 사업들은 각각 늪 지역의 개간, 잊혀진 강 계곡에 댐과 발전소의 건설, 그리고 전국적 고속도로망 건설 등이었다. 이들 사업이 위의 세 정부에게 왜 그다지도 중요했는지를 이해하려면 우선 그들 모두가 무조건적으로 모방하고 경쟁하려고 했던 한 정권, 즉 소련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스탈린의 제1차 5개년 계획은 “공산주의의 꿈의 공장”이라 불렸던 선전 기구에 의해서 시작되고 수행되었다. 선전의 주제는 노동뿐 아니라 프로젝트 그 자체이기도 했다. 시멘트와 강철, 굴착기와 트랙터, 굴뚝과 댐, 송전선과 터빈과 같은 원료와 자재들이 그토록 서사적이고 신화적인 웅장함으로 취급되었던 적은 이전에는 결코 없었다. 1927년에 서구는 자신의 번영을 즐기는 데 너무나 몰입해 있어서 스탈린의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당대인들은 스탈린의 5개년 계획을 통계적 왜곡과 허황된 기술적 낭만주의로 구성된, 머나먼 나라의 이국적인 사건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서구 세계가 광란의 20년대로부터 갑작스럽게 대공황으로 돌입하자 그러한 태도는 일변했다. 신생국 소련의 분주한 움직임과는 대조적으로 산업화 국가들에서의 실업자 행렬과 폐쇄된 공장들을 보여 주는 화보 잡지만큼 두 체제 간의 대조를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은 없었다. 소련의 움직임은 광범위한 공적 관심의 주제가 되었고 모방의 주제가 되었다.
스탈린이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을 정복하려는 거대한 행위, 즉 드네프르 강에 댐을 축조하려는 소비에트 계획을 밝힌 지 3년 뒤인 1930년에, 무솔리니는 자신의 정권을 위해 그와 유사한 위신 사업들 즉 아그로 폰티네 개간에 착수하였다. 1933년 5월 루스벨트는 테네시 강 유역 개발 공사 법안에 서명했다. 독일은 아우토반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경제적 필연성 - 에필로그
전 지구적 활동 무대에서 파시즘적/국가사회주의적 노선에 따른 전체주의적 복지 국가와 루스벨트의 자유주의적 변이 중 어떤 국가주의 시스템이 승리를 거둘 것인지를 결정한 것은 바로 제2차 세계 대전이었다. 전쟁의 결과가 보여 주듯이, 파시즘과 국가사회주의를 통해서 근대화하려는 구유럽의 시도는 실패했다. 승리한 것은 미국이었지만, 미국은 패배한 적들의 문화의 주요한 부분을 자기 것으로 흡수함으로써만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항상 미국에게 군사적 위협이었던 유럽 대륙은 일종의 평화주의의 오아시스로 전환되었다. 다른 한편 미국의 고유한 역할은 안전을 책임지면서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미국은 상인商人에서 전사戰士로 거듭났다. 평화로운 상인들의 공화국이라는 미국의 자기 이미지는 40년의 냉전 동안에 소리 없이 역전되었다. 따라서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1년 전인 1944년에 미국의 고립주의자인 존 플린이 루스벨트 체제를 비판하며 말한 것은 오늘날 더욱더 적절하게 들린다. “우리에게는 적들이 존재해야만 한다. 그 적들은 우리에게 하나의 경제적 필연성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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