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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라 부르지 마라

북종화가 김태신 자전소설

[ 양장 ]
김태신 | 삼화 | 2009년 05월 29일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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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라 부르지 마라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5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520쪽 | 153*224*35mm
ISBN13 9788992490375
ISBN10 8992490372

관련분류

책소개

목차

저자 소개

저자 : 김태신
여류시인이자 당대 최고의 비구니스님으로 칭송받고 있는 일엽(一葉)스님을 어머니로, 일본의 최고 명문가 오다 도켄의 후손인 오다 세이조(太田淸藏)를 아버지로 두었던 일당 스님은 부모들의 비극적 만남 이상으로 고독한 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김태신은 타는 듯한 모정에 대한 갈증을 그림으로 승화시켜 석채화의 대가, 일본 화단의 거목으로 자리 잡기까지, 동경제국미술학교를 졸업한 외에도 이당 김은호(以堂 金殷鎬) 화백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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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자전소설을 내며 - 저자의 변

금년으로 나는 88세가 되어 전통적으로 미수(米壽)라고 불리는 나이가 되었다. 미수란 또 적지 않은 나이인지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내가 지내 온 화가(畵家)로서 살아온 삶을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지난 3월에 서울 세종문화회관 화랑에서 그동안의 작품을 선별하여 전시회를 가졌고, 화집도 발간하였다. 내 인생의 모습을 묶어 본 셈이다.
그러나 그림으로 다 표현하지 못한 것이 더 많다. 내가 살아온 지난 88년간의 인생을 잠시 뒤돌아보니, 나는 참으로 기구한 인생을 살아온 셈인데 우선 아버지는 일본인이고, 어머니는 일본 식민지시대였던 조선의 신여성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출생의 배경만 가지고도 나는 인생이 고단한 변경인(邊境人)일 수밖에 없는데 비록 태생적으로 변경인이었지만, 아버지는 집안의 반대로 어머니와의 결혼을 할 수 없게 되자 집을 뛰쳐나왔고, 그 어떤 누구와도 다시는 결혼을 꿈꾸지 않았으며, 어머니는 속세를 떠나서 불가(佛家)에 귀의하여 수도(修道)의 길을 걸었다. 그래서 나는 태생적 변경인임에도 불구하고, 내 부모가 이렇듯 순정(純情)을 지키셨다는 점을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두 분은 나름대로의 인생철학을 가지고 살아가셨지만 나는 보통 사람들이 누리는 따뜻한 부모의 손길을 늘 그리워하였다. 비록 아버지가 보이지 않게 나를 보호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돌보도록 안배하였지만, 나는 늘 외로웠고, 부모가 그리웠고, 특히 모정(母情)이 그리웠다. 중학생이 된 다음에 겨우 어머니가 수덕사에 있다는 비밀을 알고 찾아 갔을 때, 어머니 스님은 나에게 ‘어머니라 부르지마라. 나는 세속의 인연을 끊고 산에 온 스님이다.’라는 냉랭하게 들리는 말 한마디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림에 몰두하는 것 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욱더 열심히 그림을 그렸고, 그림을 그리면서 항상 어머니를 떠 올렸다. 어머니는 산에 살고 계셨기에 산수(山水)를 그리면서 어머니를 생각하곤 하였는데 산에는 어머니가 계시고, 그 어머니는 관세음보살님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지금 미수(米壽)의 나이에도 나는 산수를 그리면서 그 속에 살아 계실 어머니를 그린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어머니라 부르지 말라고 하는 목소리가 아직도 내 귓가에 맴돌고 있다.
이러한 내 마음과 상관없이 속세(俗世)에서는 나를 계속 변경인으로 대했으니, 일본에 가면 한국인이고, 한국에서는 일본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역사적 비극관계에 있는 두 나라 사이에서 마치 외줄타기를 하듯 90 가까이 살아왔다. 그러나 나 같은 변경인은 또 나름대로의 역할도 충분히 있었다. 한일간의 가교를 맡기에는 가장 적합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수 상황에서 살았기에 보통과 다른 경험을 해야 했고 보통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는 겉으로 드러나는 재미를 넘어 그 이상의 인생의 진실한 모습을 더 쉽게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매일 쉬지 않고 일기를 쓰는데 이 일기가 내 이야기의 기초가 되었고, 벌써 몇 번 책으로 묶어서 세상에 내 놓았다. 이 책들의 영향을 받아서 일본에서는 내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뮤지컬로 준비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책으로 번역 ? 출간되었고, 프랑어로도 번역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것은 내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내가 겪은 변경인으로서의 특수한 경험 때문이라 생각한다.
다시 이 책을 묶는 것은 올해가 미수의 해여서 어느 정도 내가 겪은 일을 간추려 보고 싶은 마음과 그동안 출간된 책에 미처 적어 넣지 못한 출가(出家)한 이후 20여 년간의 이야기까지 정리하는 것이 그동안 나에게 관심을 가져준 많은 분들에 대한 나의 의무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미수를 맞은 나의 자화상(自畵像)이다. 자랑할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고, 외로워할 것도 그리워할 것도 없다. 인생이란 타고난 운명에 따라가지만 그러나 끊임없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노를 저어 갈 뿐이다. 한때는 괴로워했고, 고생스러워했던 경험들이 지금 생각하면 모두 나를 완성시켜 나가는 교육이었고, 내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2009년 5월
일당 김태신 합장
출간을 기리며
구도(求道)의 길, 북종화(北宗畵)의 부활


2000년 7월 무더운 여름날 중국 광저우시(廣州市)에서였다. 중국에서 가장 남쪽 지역인 광저우의 여름 날씨는 무덥기 그지없었다. 우리 일행은 중국 불교 선종(禪宗)의 6조(祖) 혜능대사(慧能大師)의 발자취를 좇아가기 위해 광저우역에서 따위링(大庾嶺)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전세버스를 타고 역으로 가는 중이었다.
일당(日堂)스님도 조계종 유적지를 찾아보려 했고, 역사학 관계자 몇 사람도 중국 불교 유적지를 답사하려 했기에 우리 일행은 이른바 ‘중국선종유적답사단(中國禪宗遺蹟踏査團)’으로서 함께 여행을 하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계속된 답사 여행으로 모두들 꽤나 지쳐 있었다. 게다가 광저우의 교통사정이 몹시 혼잡하여 원래의 계획보다 시간이 자꾸 늦어지고 있었다. 기차 출발시간을 놓칠 수는 없었으므로 기차 출발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전세버스를 출발시켰지만 기차역으로 가는 길이 꽉 막혀서 버스가 거의 움직이질 못했다. 기차 출발시간이 15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버스는 거의 움직일 수가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면 10분 정도 걸릴 것이라는 운전기사의 말을 듣고 일행은 각자의 짐을 들고 내려서 역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침 또 여름 소나기가 세차게 쏟아지니 그 비를 맞으며 일행은 각자의 짐을 들고 기차역을 향하여 걷다가 뛰고 뛰다가 걸었다. 이럴 때는 작은 짐도 부담이 되기 마련이어서, 각자의 짐들은 다 비슷했지만 일당 스님은 짐이 하나 더 있었으니 늘 그렇듯 그림도구가 들어 있는 가방이 곁들여 있었기 때문이다.
일행 중 젊은 사람들이 거들어드리려고 했지만 스님은 짐을 부탁하지 않았다. 자기 짐도 무거운데 거기다 남의 짐까지 들면 더 힘들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간신히 기차를 타기는 했지만 일행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일당 스님도 젖은 옷을 그냥 입고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80세에 가까운 스님이지만 힘들거나 괴로운 표정 전혀 없어 미소를 띤 여유로운 표정으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건 실로 존경스럽고, 거룩하기까지 한 모습이었다.
그 몇 년 전 직지사(直指寺) 조실 관응(觀應)스님을 모시고 공자의 고향인 취푸(曲阜)와 타이산(泰山)을 여행할 때도 일당 스님이 함께했었다. 타이산을 오르면서도 무거운 그림도구를 사용하여 계속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기억이 새로운데 따위링으로 가는 비좁은 기차 안에서도 스님은 피로를 이겨내고 계속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그건 아무래도 고행 길에 나선 구도자의 모습이었고 이미 고행에 달관된 구도자의 모습이었다.
어떻게 해서 스님은 그런 모습일 수 있었는가?
우리는 스님의 지나온 세월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스님은 세 살 이후 친아버지의 한국인 친구 송기수(宋基洙)씨를 친아버지로 알고 자랐고, 그렇게 소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다 소학교를 마치면서 자기가 사실은 송씨가 아니요, 송기수씨는 친아버지가 아니며 일본인 친아버지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그때 스님이 받은 충격은 어떠했을까.
그 후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화백을 양아버지로 하여 그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친어머니 김일엽(金一葉) 스님의 소식을 알게 되었다. 천신만고 끝에 어머니를 찾아갔으나 그 어머니는 냉정하게도 차가운 한마디를 서슴지 않았다.
“나를 어머니라 부르지 말고 스님이라 불러라.”
그 말을 듣고 돌아설 때 스님의 심정은 또한 어떠했을까.
스님은 열 분의 부모를 모시고 자라왔다. 아버지라고 부를 사람도 많았고 어머니라고 부를 사람도 많았다. 사는 데 공부하는 데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늘 구멍이 뚫리고 찬바람이 몰아치는 가슴속의 허전함과 쓸쓸함은 무엇으로도 메울 길이 없었으므로 그래서 그림을 그렸고, 그림을 그리며 가슴속의 그 허전함과 쓸쓸함을 조금씩 메워갔던 것이다.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는 어머니의 다른 모습인 관세음보살을 마주했고, 어머니를 부르고 싶을 때는 관세음보살을 불렀고, 어머니가 그리울 때는 관세음보살을 그렸다.
스님은 결국 그림 인생을 위해서 도쿄제국미술학교에 입학하고 전문적인 화가의 길을 가게 되었다.
스님은 미술학교 이전부터 양아버지인 이당 화백으로부터도 그림을 배웠는데 스님은 당시 이당에게 그림을 배우러 온 여러 사람들 가운데 특히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을 형이라 부르며 유달리 가까이 지냈다. 운보 김기창은 신체적인 열등감을 그림으로 극복하려했고 스님은 어머니 아버지 에 대한 그리움으로 생긴 심리적 열등감을 그림으로 극복하려고 했기에 두 사람의 동병상련이 서로를 가깝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스님의 내면에 숨겨진 세계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으면서 예술의 세계로 승화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이룩한 그림세계는 조선 후기 이후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사멸해 버린 북종화(北宗畵)의 세계였고, 기법적으로는 석채화(石彩畵)의 세계였다.
지금도 한국의 동양화는 남종화(南宗畵)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남종화는 따지고 보면 문인들의 문인 활동의 여기(餘技)로서 출발한 것이다. 따라서 그림 본래의 목표와 기법보다는 문인 마음속의 의취(意趣)와 기상을 중시하는 화풍이어서 절제된 담채와 수묵으로 그리는 것이지만 진정으로 남종화다운 그림을 그리려면 사실은 먼저 문인으로서 상당한 수준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많은 동양화가들, 다시 말하면 남종화의 화가들은 문인의 경지를 익히기는커녕 아예 그 필요도 못 느끼는 듯 담채나 수묵의 기법만을 우선적으로 익히고 있으니, 기능면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진정으로 가치가 발휘되는 남종화는 사실 찾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스님은 우리가 잃어버린 진정한 동양화의 세계인 북종화를 부활시켰으니 남종화만이 동양의 미술인 것처럼 알고 있는 남종화로만 온통 뒤덮인 한국에서 북종화를 그리며 북종화를 부활시키는 일은 황무지 개척보다도 더 어려운 고난의 길이다. 그 고난의 길을 한국 북종화의 부활이라는 소명의식과 함께 구도의 길로 개척해 온 것이다.
스님은 또한 벽화시대 이래 사용해 오던 석채의 현대적인 기법을 스스로 터득 발전시켜, 그의 그림에서 찬연하고도 환상적인 색채의 세계를 구현하였다. 그렇기에 색채의 귀재 또는 마술사라는 별명까지 듣고 있지만, 이는 또한 모르는 사람들이나 알고도 모함하고자 하는 사람들로부터 일본풍이라고 지탄받는 구실도 되고 있다.
한국화단뿐만 아니라 일본화단에서도 스님은 많은 장벽을 극복해야만 했으니 그것은 어머니가 한국사람이기에 겪어야 하는 편견의 장벽이기도 했다. 그러나 스님은 실력으로 그 장벽을 뛰어넘었고 드디어는 대화가로 인정받는 성공을 거두었고, 본의와는 다르게 한국에서보다는 일본에서 활동할 시기와 기회가 더 많았다. 일본에서보다 한국에서 활동할 시기와 기회가 더 많았다면 한국에서도 물론 그만한 성공을 거두었을 것이다. 한국에 정착한 이후로는 오로지 한국에서 아직도 제거되지 않은 많은 난관을 무릅쓰고 구도의 고행처럼 북종화 부활의 길을 걸어왔다.
스님은 애당초 어머니의 나라에서 어머니의 향취 속에서 살고자 했고, 어머니의 나라 사람으로서 어머니의 나라에서 성공하고자 했지만, 그러나 한일 간의 불행한 역사의 틈바구니와 빨갱이라는 누명의 함정에 빠져 한국에서 살고 싶었던 너무 오랜 세월을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다.
스님은 어려서부터 늘 소원했던 ‘어머니의 길’을 환갑을 훨씬 넘긴 늦은 나이가 돼서야 들어서게 되었다. 직지사 조실이자 우리나라 불교계에서 유식학(唯識學)의 선구자인 관응스님을 은사로 출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또 일본과 한국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배척되고 모함 받던 참담한 고난을 이기고 한국에서도 몇 번의 전시회를 열었다. 한국에서는 실로 쉽게 접할 수 없는 북종화, 석채화의 진수를 보여 전시회를 참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의 그림에는 구도적 삶이 녹아 있다. 화폭 앞에 앉아 붓을 들 때는 간절한 기도가 앞선다. 그리고 특히 중생구제를 위해 그리는 스님만의 독특한 그림인 「명당도(明堂圖)」를 그릴 때에는 전통적으로 방위(方位)의 수호신으로 알려진 청룡(靑龍)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를 중생보호의 기원을 담아 밑그림으로 그린다. 이런 그림을 그리는 것은 바로 그림을 통하여 구세(救世)하려는 스님의 염원인 것이다. 실제로 스님의 이런 그림을 가진 많은 사람이 자신들이 겪은 신비한 영험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스님은 한평생 구도하는 자세로 살아왔고, 구도하는 자세로 그림을 그려왔고, 구도하는 자세로 북종화를 살려내고 있다. 그의 내면세계가 그의 그림속에 녹아들어 있으므로.
그의 그림을 보고자 할 때 피상적인 모습으로 보고자 한다면, 그의 그림 또는 그의 내면세계를 제대로 보지 못할 것이다. 『금강경(金剛經)』의 한마디를 우리는 경건하게 되새겨야 할 것이다.

若以色見我만일 현상으로 나를 보거나
以音聲求我소리로 나를 찾으려 한다면
是人行邪道이는 비뚤어진 길을 가는 사람이니
不能見如來여래를 볼 수 없을 것이다.

5조 홍인대사(弘忍大師)로부터 의발(衣鉢)을 받아가지고 광저우로 내려가던 6조 혜능(慧能)스님의 의발을 뺏으려고 쫓아왔던 혜명(惠明)스님이 정작 혜능스님을 만나고 나서 부른 게송(偈頌)이 있다.
“물이 찬지 더운지는 마셔봐야 아는 것.”
진지하게 스님의 구도자적 모습으로 이룩한 정신세계를 보는데 참고할 말일 것 같다.
미수에 즈음하여 그 일생을 종합하는 화집을 내고 기념전시회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었다. 그리고 그림으로 못다한 이야기를 이 자전소설에서 쓰고 있는 지금 일당스님 곁에 덧붙여 기리는 이 글 또한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아니겠는가.

2009년 5월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권중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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