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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발행일 | 2009년 06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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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64쪽 | 420g | 145*213*20mm |
ISBN13 | 9788937482656 |
ISBN10 | 89374826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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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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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진지한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센시티브한 농담을 할 수는 없다. 십 년만에 얻어걸릴 수는 있어도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평가 받기는 힘들다는 얘기이다. 왜냐하면 그건 노력한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재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각에 해당하는 이 재능은 보지도 않고 같은 간격으로 무를 써는 감각과는 다른 것이다. 반면, 본래 센시티브한 유머감각을 타고난 사람은 반대로 진지해질 수 있다. 그러니 그런 감각을 타고난 사람도 일종에 복이라고 봐야 옳다. 그리고 이 작가가 그렇다. 센시티브한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추측컨데, 이 작가는 본인의 의도에 따라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기도, 혹은 그 반대로 만들 수도 있는 재능을 가진 냥반 같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반드시 필요한 작가적 재능을 보유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타고난 유머 감각은 천만 번 고쳐 써서 좋은 문장을 갖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감각을 지닌 작가의 작품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좋은 얘기는 뒤로 미루어야겠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생각하는 몇 가지 부분만 갖추어지면 그 누구보다 재미있고 감동적인 작품을 만드는 게 시간 문제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1. 나는 한국 소설의 부흥을 꿈꾸는 애독자로서 과거에는 이런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아, 제발 쫌 어두침침한 골방에서 나오시라고요. 나약한 인생 고찰이 예술이라고 착각들 좀 하지 마시고요, 였다. 이런 바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듯 대부분의 독자가 한국 소설을 외면했다. 그러니 한국문학에 계신 고참 분들이 독자들을 욕하기 시작하더라. 왜, 외국 소설만 보느냐고 말이지. 참 웃기는 일이었고 그들 때문에 한국 문학이 망하겠구나 그리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아쉬울 것 없는 소비자로서는 꾸준히 영미, 일본 문학은 보면서 한국 소설은 니들끼리 놀던가, 라고 구석으로 밀어놓았다. 그러자 드디어, 이제 목구멍이 포도청이 되자 그 거만하신 분들께서 한국 소설도 이젠 좀 뒷짐지고 젠체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며 느지막이 현실에 눈을 뜨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게 또 문제가 없질 않다. 야무지게 작업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2. 내가 생각하는 최근 한국소설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자잘한 이바구는 있다. 그러나 작품 전체를 쥐고 있는 굵직한 이야기를 가진 소설이 참 드물다. 특히 신인작가에게서 그런 점은 도드라진다. 그러니 아무리 감각적인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라 할지라도 종국에는 말장난만 남아 바닥에 우수수 떨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고 이 작품이 바로 그랬다. 이건 비단 이 작품만이 아니라 최근 불어오는 한국소설 가볍게 하기 열풍을 탄 한국소설의 대부분이 그렇다. 전형적인 휘발성 말장난만 가득한 것이다. 재치있는 말주변으로 사람을 웃기는 것은 어느 정도 선이 있다. 육십 분 개그 드라마가 있는데 육십 분 내내 그런 식으로만 웃기면 결국 그 빛나는 재치마저도 지겹고 잔망스러운 재주로 탈바꿈 될 뿐이다.
그래서 이런 공식이 있지 않은가. 유머와 감동이 공존해야 한다고.
최근 한국 신인작가들은 이제 이 점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 그 유머와 감동이 서사라는 튼튼한 대들보 위에 쌓여야 한다는 것까지는 아직 깨닫지 못한 것 같다. 아니면 깨달았으나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낼 능력이 없다든가 말이다.
3. 대체로 웃기는 문학이라고 하면 일본 소설의 <공중 그네>를 떠올리기 쉽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이 과연 웃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런 사랑을 받았을까? 소위 일본 문학은 가벼워, 라고 주장하는 식자인 체 하는 냥반들은 그의 문학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가볍다고 평한다. 똑똑하지는 못하면서 무게는 잡고 싶은 사람들이 대체로 그런 식이다. 그러나 오쿠다의 작품이 인기가 잇는 것은 유머의 요소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이 유인이라면 그 배경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깔려있다. 일본 문학은 안 읽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처럼 편견의 벽을 쌓고 있지 않은 것이다. 다양한 직업의 다양한 심리를 아주 객관적이고 관조적인 시선으로 그려내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점들이 야야기를 통해서 전달되고 있다는 것이다.
독자가 전부 멍청이라서 마냥 웃기기만 한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게 아니다. 무한 도전의 바보짓이나, 1박2일의 멍청이 짓을 보며 웃는 시청자가 모두 바보들이기 때문에 그런 프로가 높은 시청률을 올리는 게 아니라는 얘기이다.
그런 견지에서 이 작품을 좀 보자. 지하철 잡상인을 보고 이야기의 소재를 떠올렸다면 그것을 두고 탄탄한 구성이 돋보이는 이야기의 뿌리와 줄기부터 만들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잘한 비스켓 부스러기 같은 에피소드의 나열은 서사가 아니다. 게다가 그 자잘한 에피소드마저도 중심이 없어서 우리 사회 마이너들중 하나의 이야기인가 싶다가 갑자기 장애우들에 대한 부분으로 초점이 맞추어지는가 싶다가 다시 난데없이 사랑 얘기로 빠지는 것이다. 내가 볼 때 이런 현상은 이야기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설계도 없이 집을 지어서 종국에는 이게 집인지 뭔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고나 할까? 그러니 오로지 작가의 타고난 감각적인 재능만 부스러기처럼 땅바닥에 흩어져 있는 것이다. 이 어찌 안타깝다 하지 않을 쏘냐!
미국의 소설가 존 어빙은 자신은 지식인이 아니라 이야기를 짓는 목수라고 말한다. 그는 퍽이나 이 말을 좋아하는 듯 싶은데 나도 그런 그의 말이 좋고 실제로 그의 작품을 보면 대단한 서사를 가지고 있다. 돌이켜 보아 우리가 명작이라 일컫는 좋은 소설의 대부분도 그렇다. 좋은 서사를 가지지 않았는가. 그야말로 이야기 책인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샤르트르나 까뮈처럼 제대로된 철학적 명성을 쌓아서 지식인으로서의 작품을 만들던가 해야하지 않겠나? 그런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면 작가는 필연적으로 좋은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작가가 대중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야기를 통해서 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니 결론적으로 봤을 때 야, 이 냥반들아 한국소설 무겁다고 징징거려서 가벼운 걸로 내놓았더니 이제와선 가볍다고 뭐라 그러는가? 라고 깃털처럼 가볍게 우지질게 아니라 야무지게 생각들 좀 하시라는 말쌈이다. 무거운 것에 지쳤다니까 단순히 웃기기만 하면 되겠지가 아니라는 얘기이다. 독자가 다 바보냐? 재미있는 이야기. 나는 그걸 원한다 그 말이다. 삶의 고찰, 사회에 대한 고찰, 그를 통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 웃음과 눈물, 그 모든 게 이야기 속에 담겨있어야 하고 이야기를 통해서 전달되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이야기는 없으면서 억지로 무언가를 전달하려고 하는 건, 거북하다.
재능은 탁월하게 돋보이되 기본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작품을 대했을 때 느끼는 그런 감정이라 내가 좀 오버한 면이 없질 않다. 반면 그만큼 기대가 되는 작가라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작가가 이야기도 없는 작품을 내어놓으면 이리 길게 할 말도 사실 없다. 그러나 이 작가는 앞서 말한 그것, 튼실하고 중심이 잡힌 이야기만 갖추면 그가 가진 재능이 그 위에서 불사조처럼 펄럭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러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사회적인 부분에 대한 의견이나, 인간에 대한 의견도 그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서 부담없이 독자에게 다가설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그런 작가의 재능이 놀라워서 즐기면서도 아주 안타까운 감정을 느꼈고 작품 자체는 뒤로 갈수록 지루해졌다. 감칠맛 나는 유머와 재치가 점차 싸구려 멘트로 변질되어 느껴졌던 까닭이 바로 빈약한 서사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그것만 갖추어진다면 으흠, 남들이 가질 수 없는 타고난 재능을 가진 작가가 아닌가. 시작부터 남보다 좋은 무기를 들고 하는 것이니 기대만빵인 것도 사실이다. 차기작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야기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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