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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7년 01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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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832쪽 | 1,138g | 150*215*40mm |
ISBN13 | 9788934972402 |
ISBN10 | 89349724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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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의 산문집(혹은 이설집) 《영혼의 무기》는 팔백 페이지가 넘는다. 두께와 무게로 치자면 무기로 사용해도 될 법하다. 책 안에서 ‘’요즘 잘 나가는 영화의 액션 장면에서는 종종 두껍고 딱딱한 책을 무기로 쓰더라.“ 라고 말하는 장면도 찾아냈다. 자기 전 드러누워 책을 보는 습관이 있는데, 심지어 이 책도 그 습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금요일부터 연이틀 어깨에 문제가 생겼었다. 어느 한 방향으로 팔을 움직일 수 없었다. 책을 다 읽었고, 이제 어깨도 다 나았다.
책은 모두 일곱 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 챕터인 <보리수 아래서>는 자신의 그득한 상념을 적어내고 있다.
자신의 일상을 간결하게 들여다보고, 그 간결함에 깊은 생각을 보탠다. 넘치는 것 같지도 않고 모자라는 것 같지도 않다. 일종의 깨달음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런 자잘한 깨달음들이 모여서 우리 범인들의 삶은 이루어지는 것이리라. 우리들 일상의 보리수 아래에서도 가능한 것들이다.
“생이 아무리 비극적이고 그 끝이 허무할지라도, 신학자 폴 틸리히의 주장처럼, 인간은 비극이 없이는 제대로 살지 못한다. 비극은
고통스럽지만 우리를 진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비극은 고통스럽지만 우리를 진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고통과 염려는 다른 것이다. 고통은 인간을
강하게 하고, 슬픔을 알게 하고, 사랑하는 법을 숙고하게 하고, 겸손을 가르치고, 스스로 있게 하지만, 염려는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한다. 염려는
오늘을 쑥대밭으로 유기하고 내일에 불을 지른다. 염려는 고통을 괴물로 둔갑시키고 나를 겁먹게 한다. 왜소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성경에는 오늘
고민은 오늘 족하다고 쓰여 있다.” (20014.1) (p.49) - 보리수 아래서 중
두 번째 챕터인 <광장에서>는 일종의 시평時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만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우리 사회를 바라본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이런 저런 적폐를 향하여 아유를 보내는데, 좌와 우를 그리고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물론 나는 작가 이를 좀
구분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회의하는 자유주의자로 자신의 포지션을 정하고 있다는 것은 이해하겠으나, 회의하지 않는 모든 태도를 파쇼적인
것으로 몰아갈 필요는 없어 보인다. 회의라는 태도를 너무 확신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회의주의자의 태도를 벗어난 것이라고 본다.
“소설 《독일어 시간》에서 작가 지그프리트 렌츠는 아주 기발하고도 명쾌한 원인을 내세우며 제3제국의 도래를 분석하고 있는
듯한데, 그것이 바로 독일 민족의 해학성 부재, 곧 유머의 부족이다. 한마디로 일상의 사소한 파격조차 용인하지 못하는 독일인들의 고지식함이
히틀러에게 집권의 기회를 열어주었으며, 그것이 결국엔 전 인류적 페스트인 나찌 파시즘의 창궐로까지 이어졌다는 시각이다... 굳이 예술정신이라
창하지 않더라도, 예컨대 창조적인 사고체계는 파시즘을 향한 가장 효과적인 항체가 될 수 있다. 파시즘은 이성을 바탕으로 한 사상의 수준이 아닌
탓에, 긴장감을 완화하고 윤활해주는 정신의 숨구멍, 즉 생각이 자유롭고 다양한 사람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2001.6)
(pp.99~100) - 광장에서 중
“자동차라고는 한 대도 없는 나라에 운전교본이 들어와 자동차에 대한 공상을 유행시킨 뒤 그것이
실제로 사방에 자동차들이 다니고 있다는 착각으로까지 이어져 온 나라를 가짜로 만들어버리는 셈이 아니고 뭔가. 자동차를 몰아본 자는커녕 자동차를
구경해본 자도, 자동차가 다닐 도로조차도 전혀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나는 우리 학계의 통섭과 융합도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통합과 융합이란 고수들끼리의 통섭과 융합이지 이제 갓 입문한 자들끼리의 통섭과 융합은 아닐 것이다.” (2013.5)
(pp.122~123) - 광장에서 중
“... 보수주의자들은 국가 체계의 골격과 그 기능의 선함을 소중히 여기는 상식주의자들이다. 이
사회가 보수에게 요구하는 진정한 모습은 독선과 오만과 작당과 부패가 아니라 고뇌하는 균형감각과 솔직담백한 소통, 치열한 직업정신과 청정한
위엄이다. 이 나라의 소위 좌파들이 선한 사마라아인과 고독한 지식인 행세로 나르시시즘의 허기를 채우고 있다면, 이 나라의 소위 우파들은 애국자
행세로 속물의 극치를 보여준다... ‘애국’이라는 것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처럼 매우 모호하고 난해한 개념이다. 그래서 애국은
자신을 정말 애국자라고 착각하는 근육주의자들에 의해 아집과 폭력으로 쉽게 변질되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과연 누가 목숨을 던져 국가를 지키는지는
새벽 닭이 두 번 울기 전까지 예수를 세 번 부인하는 베드로처럼 그때 가 봐야 비로소 알게 되는 법이다. 타락한 종교가 죽음을 가지고 사기를
치듯이, 병든 사회주의자 평등과 정의감과 조직으로 사기를 치듯이, 파시스트들은 애국으로 사기를 친다.” (2014.6) (pp.150~151)
- 광장에서 중
세 번째 챕터는 <전장에서>이다. 조금 긴 서평들과 인터뷰를 비롯해 책이나 작품과 관련한 자시의 생각을 드러낸 글들이
실려 있다. 이 챕터에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에 대한 글이 포함되어 있다. 그 문제제기로 인하여 생각한 것 이상으로 상심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 옳은 것을 옳다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이야기하는 일이 쉽지 않은 우리네 세태를 다시 한 번 실감한다. 다음 챕터인 <참호에서의
책읽기> 또한 짧은 리뷰들을 모아 놓았다. 두 챕터의 차이가 살짝 궁금하다.
“나는 정원이 있는 남향집에서 자랐다. 삼대가 선행을 쌓아야 남향집을 얻는다는 소리도 그 어린 시절에 들었다. 햇살은 굉장한
기구이자 또 하나의 아름다운 식구였다. 나중에 아버지는 그 남향집을 헐어내고 높은 상가건물을 지었는데, 이제는 남의 소유가 돼버린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우리가 잃은 것들은 남향의 보금자리와 거기를 비추던 햇살 정도가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를 잃어버리고 완전히 각자가 되었다.”
(2001.9) (p.251) - 전장에서 중
나머지 세 개의 챕터는 <토토는 생각한다>와 <시인 함성호 씨> 그리고 <바다 위 밀봉유리병
속에서>이다. <토토는 생각한다>는 작가와 오랜 세월 함께 한 강아지 토토, 그리고 지금은 무지개 다리를 건너 간 강아지 토토에
대한 짧은 글들 모음이다. <시인 함성호 씨>는 작가가 가깝게 지내는 시인 함성호에 대한 글인데, 투덜거림과 야유와 애정이 뒤섞여
있다. <바다 위 밀봉유리병 속에서>는 짧은 일기글이고, 2013년 6월 2일부터 2016년 11월 10일까지의 기록이다. 작가의
민낯을 들여다보게 된다.
“말... 나는 토토가 언젠가 한 번은 내게 말을 할 것만 같다. 이렇게 우리 둘만이 서로를 고요히 보고 있을 때면, 영영
이별하기 전까진 언젠가 단 한 번은 나의 토토가 내게 말을 걸어올 것만 같다.” (p.473) - 토토는 생각한다 중
“대한민국에서
‘의식 있는 작가’가 되는 것은 사실 너무나 쉬운 일이다. ‘어떤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대신 써주면 된다. 그러면서, 그것이 자기의
‘계산’이 아니라고 믿고, 나중에는 그런 생각 자체까지 지워버리면 된다. 그리고 이것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체질이 된다. 대한민국에서 ‘의식
있는 작가’가 되는 것은 ‘의식 있는 국민’이 되는 것보다 사실 너무나 쉬운 일이다. 멋져 보이는 말만 골라서 하면 된다. 그걸 진정한 용기라고
자뻑하면 된다. 고독하고 아픈 척하면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정말 고독하고 아프다고 믿어버리면 된다. 그리고 이것이 반복되면 이 ‘의식 있는
작가’는 많은 ‘어떤 정의로운 독자들’을 창녀로 거느린 유곽 같은 사회의 포주가 된다. 이것은 어려운 길이 아니다. 매우 쉬운 길이다. ‘어떤
정의로운 대중’은 그걸 잘 모른다. (2015.4.12.) (pp.650~651) - 바다 위 밀봉유리병 속에서 중
“타인의 욕망을
이용하는 것까지는 이해한다. 그러나. 타인의 무지를 이용하는 자들은 구원의 도리가 없다.” (2016.9.20.) (pp.752~753) -
바다 위 밀봉유리병 속에서 중
중간중간 드러나는 좌파 지식인 사회(좌파 문학인 사회를 포함하여)에 대한 작가의 억하심정에 자주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글을 읽는 동안 종종 불편하였다. 작가는 위선보다는 악이 낫다고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작가에게 우리 사회에서 좌파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위선적인 그룹으로 분류된다. 우리 사회의 좌파가 가지는 문제점에 대한 작가의 지적이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작가가 생각하는 우리 사회 좌파의 표상이 정말 우리 사회의 좌파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몇몇 챕터 그러니까 시인 함성호 씨, 라는 챕터와 바다 위 밀봉유리병 속에서, 와 같은 챕터는 굳이 산문집에 넣지 않아도
좋았을 것 같다. 작가는 연예인이 아니니 굳이 이런 민낯인 글로 자신의 속살을 드러낼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연예인이 민낯을 드러낼 때 그것이
치장된 자신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래서 무대 위와 그 아래를 구분해야 할 필요성이 이는 것이라면), 사실 작가의 모든 글은 이미 그
자체로 민낯이어여만 하는 것인데 말이다.
이응준 / 영혼의 무기 : 이응준 이설집異說集 / 비체 / 831쪽 / 20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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