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로 나는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사실 제목만 보면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한 치 앞을 가늠치 못할 정도로 아리송하다. 그러나 내가 뒷표지를 훑고 난 직후에는 당장 책 빌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우리 학교의 독서시간, 나는 일 분이 채 되기도 전에 이미 이 책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야기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내 머릿속에서 병풍처럼 펼쳐졌다. 옛 여성들의 삶이 내 가슴에 와 닿았다.

 

책에는 여성을 주요 인물로 삼은 두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각각 다산 정약용과 김려 선생께서 쓰셨는데, 정말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우리 고전을 많이 읽어왔지만 이렇게 여성이, 그것도 평민이나 천민 여성이 주인공인 책은 아직 보지 못했다. 심지어 나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고전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이 책을 읽어 기억에 더 오래 간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강고가부사가 원작인 첫 번째 이야기 <팔려간 신부>. 어떤 예쁜 18살 여인의 아버지는 그만 중매쟁이의 말에 속아 딸을 한 포악한 장님에게 ‘판’다. 중매쟁이는 그 남자(장님)에 대한 온갖 칭찬을 늘어놓았고 여인의 아버지는 좋아라 하며 당장 결혼을 시키자고 한다. 집에 와서는 중매쟁이가 한 말 그대로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흥에 겨워서 주절주절 딸과 아내가 듣든 말든 장님의 좋은 말만 한다.


 

 

그렇게 결혼준비는 시작되었고 드디어 결혼식 날, 여자와 가족들은 차마 보지 못할 광경을 보았다. 중매쟁이는 여인의 아버지에게 풍채가 당당하고, 나이가 갓 서른을 넘겼다고 말했지만 모든 것은 정반대였다. 그냥 봐도 완전 할아버지 수준인데다가 풍채가 당당하기는 무슨 얼굴은 시꺼멓고 구부정한 자세로 초례청에 들어왔다. 나중에 알고보니 결혼을 전에 두 번이나 한 사람이며, 자식도 셋이나 있었다.

 

장님의 아이들은 모든 거짓말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수도 없이 하니, 어떻게 여인이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었을까. 참다못한 그녀는 절로 두 번이나 도망치지만 계속해서 관아에 끌려간다.

 

신랑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하고 결혼하는 것도 참 안됐지만 이렇게 시집을 가서 고생을 하는 사람은 정말 불쌍할 지경이다. 책을 읽는 나도 슬픈데, 당사자는 또 얼마나 억울했을까. 비록 아직도 좀 부족하지만 그래도 남녀차별이 많이 사라진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이 너무나도 감사하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난 다음에 나는 주인공에게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사실 그보다는 여인의 아버지에 대한 실망감이 훨씬 크다. 나는 여인이 이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 잘 알아보지도 않고 술에 취해 그 자리에서 결혼을 승낙한 아버지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여인 아버지가 “35p. 이미 이렇게 된 일을 어쩌겠나. 그만 울음을 그치고 신랑을 맞아야지. 어쨌거나 식이라도 마쳐서 체면은 세워야 하지 않겠나. 내가 뭐,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승낙한 것도 아니고, 나도 중매쟁이 말에 속아 이렇게 되었으니 나를 너무 원망하지 말게.” 라고 한 말도 답답했다. 물론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자기가 엎질렀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예 말을 하지 말지. 옛 여성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에 잠기니 그들의 아픔이 느껴졌다.

 

두 번째는 천민중의 천민, 백정의 딸로 태어난 방주의 이야기이다. 그래도 이 이야기는 그리 슬프지 않아 다행이었다.^^ 우리나라의 백정은 인도의 카스트 계급 중 가장 신분이 낮은 수드라(불가촉천민)과 같은 셈이다. 그러나 방주는 팔방미인이다. 첫 번째 이야기의 여인처럼 예쁘고, 마음씨도 착하고, 아버지를 닮아 그런지 일을 하는 솜씨도 좋은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방주는 냇가에서 장 파총을 만난다. 장 파총은 신분은 낮지만 양반집 여성들 못지않은 방주에게 감탄한다. 장 파총은 방주의 집으로 가서 그녀의 아버지에게 방주와 자신의 아들을 정혼 시키자고 한다. 글을 쓰신 선생님 말씀으로는 <방주의 노래>가 미완성으로 남았다고 한다. 이야기가 완성되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렇게 미완성으로나마 우리가 책으로 접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방주 이야기를 쓰신 김려 선생님께 감사하다.

 

양반 중에서도 평민보다 못한 사람들이 참 많았었는데, 방주는 천민인데도 불구하고 양반보다 더 멋있게 살고 있는 것을 보니 나도 방주를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 파총도 옛날에는 신분차별도 있고, 둘째 번 부인의 자식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등 (서자)여러 규정들이 있었을 텐데 그에 얽매이지 않고 방주와 자신의 아들을 결혼시킬 생각을 했다는 것이 존경스러웠다.

 

두 편의 좋은 작품들은 남존여비사상을 섬세하고도 생생하게 그려냈고, 그림도 상황마다 다양해서 인상적이었다. 이제 나는 이 책 제목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 날개도 달리지 않았는데 새처럼 우리 역사의 뒤편으로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린 옛 여성들의 삶을 담았다.

-아버지 아이디로 응모-

‘날개도 없이 어디로 날아갔나.’ 이 책의 제목을 본 순간 나는 이 책은 꼭 읽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왠지 특별한 제목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제목이 특별하거나 나의 호기심을 발동하게 하는 제목을 좋아했기 때문에 선생님께서 나누어주신 책 리스트 중에서도 당연히 이 책을 골랐다. 왠지 슬픈 것 같으면서도 책의 내용을 궁금하게 하는 것이 나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이 오자마자 읽기 시작하였다. 책의 내용이 짧아서 여러 번 읽고 읽었는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재미있어 졌다. 역시 우리나라의 고전이야기는 정말로 재미있는 것 같았다. 이 책에는 두 가지의 이야기가 나와 있다. 하나의 내용은 ‘팔려간 신부’ 이고, 또 하나의 내용은 ‘방주의 노래’였다. 나는 그 두 개의 내용 중에서도 가장 인상이 깊었던 내용은 첫 번째 내용이었다.
한 여인이 관청의 심부름을 하는 사나운 심부름꾼에게 붙들린 채 갈림길에 서서 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여인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여인은 비구니(여자 스님)가 흔히 쓰는 모자인 송낙을 쓰고, 스님들이 입는 옷인 가사를 입고, 목에는 율무로 만든 백팔염주를 걸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인은 매우 예뻤다. 그런데 가슴이 아파왔다. 그 여인은 자꾸 울먹이면서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왜 여인이 우는지 너무 궁금하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저렇게 슬프게 우는 것인지 말이다. 사령 둘이 여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녀석들이 무서운 표정을 하고는 손에 든 기다란 매로 여인을 을러대며 관아로 마구 몰아가는 판이었다. 끌려가는 여인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며 눈물 흘리고 한숨을 쉴 뿐이었다. 여인에게 무슨 일인지 자꾸 물어보았지만 여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옆에서 같이 울고 있던 여인의 어머니가 말을 해주었다.
“이 아이는 원래 강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죽 그곳에서 살았지요. 지금 나이가 겨우 열여덟 살인데 팔자가 정말 말로는 다 할 수 없을 만큼 기구하답니다.”
여인의 어머니는 울먹이느라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못하면서도 사연을 알려주었다.
그 어머니가 알려주었던 사연은 이러했다. 그 여인은 나이가 어렸다. 하지만 점을 쳐서 먹고사는 장님한테 갔다. 그 장님의 성질은 어찌나 고약하던지 참다못한 여인이 집을 뛰쳐나와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다. 하지만 어디 세상이 우리 같은 여자들의 사정을 알아주기나 하나. 관아와 관계가 있던 사위가 정식으로 관아에 고발하자, 사령들이 바람보다 빨리 쫓아와 여인을 이렇게 잡아가고 있다. 여인의 아버지가 술을 많이 먹는 주정뱅이였다. 그 날도 어김없이 술을 잔뜩 마시고 있는데 중매쟁이가 찾아와 딸에게 아주 좋은 신랑감이 있다고 말을 걸어왔다. 그 말을 듣고 자신의 딸을 좋은 신랑감에게 시집을 보내고 싶었던 욕심을 가지고 있었던 아버지는 중매쟁이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두 번씩이나 결혼한 것은 아니냐고 말이다. 중매쟁이는 두 번 결혼을 한 것이지만 돈을 받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두 번 결혼을 한 것이 아니라 처음 결혼을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나이도 어리고 젊은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러면 당장 시집을 보내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결국 그 여인은 그런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 날이 지난 후, 여인이 시집을 가는 날이 되었다. 여인과 어머니는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잔뜩 기대를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버지와 동네 사람들 또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예쁜 여인이 누구랑 결혼을 하는지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랐다. 절대 아버지께서 말하신 내용과 일치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늙어서는 딱 봐도 두 번쯤은 결혼을 한 것 같았다. 여인은 결혼은 하였지만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래서 결혼을 한 후, 집을 뛰쳐나와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이 있다. 그 것은 바로 여자도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관아에서 있었던 관청의 심부름꾼들도 그 당시의 정신과 같이 여자를 하찮게 여겨서 무조건 여자가 잘못했다고 하면서 여자에게만 잘못을 돌렸다. 또한 남편이 싫어서 뛰쳐나올 수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남자를 중요시 여겨서 남자의 뜻대로 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자도 사람일뿐더러 여자도 선택할 권리가 있고 여자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요즈음에는 그런 정신이 많이 사라져서 다행이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는 그 정신이 아직도 남아있는 곳도 있다. 여자를 하찮게 여기지 말고, 중요시 여기자. 여자도 사람이다. 여자를 하찮게 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