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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의 탄생

필립 아리에스 저 / 문지영 역 | 새물결 | 2003년 09월 16일 리뷰 총점9.2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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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3년 09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703쪽 | 1,124g | 153*224*40mm
ISBN13 9788955591217
ISBN10 89555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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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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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저자 : 필립 아리에스 Philippe Aries
아동의 역사와 죽음 앞에서의 인간의 다양한 태도 등 서구 역사학의 미지의 영역을 선구적으로 탐사한 '일요일의 역사가'. 소르본 대학에서 역사학과 지리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은 후 국립도서관, 열대농업 연구소, 플롱 출판사 등 아카데미즘 밖의 직업에 종사하면서 '일요일의 역사가'로 활동했다. 오랫동안 정통 학계에서는 '바나나 장수'로 외면당했으나, 그의 연구 주제의 혁신성과 논거 자료의 다양성은 프랑스 역사학계의 연...
역자 : 문지영
숙명여자대학교 사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에 있는 사회과학고등연구원(Ecole des Hautes Etudes en Sociences Sociales : EHESS)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숙명여대 사학과 교수(서양 현대사 전공)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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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549
---pp. 8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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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주간우수작 가족의 탄생
평점10점 | YES마니아 : 골드 a*****e | 2009-01-18 | 신고

 

어깨가 축 처진 중년의 남성이 터벅터벅 집으로 들어간다. 길 가는 동안 온갖 상념이 그를 사로잡는다. 직장 상사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며 거래처와의 계약, 연일 이어지는 회식 등 온통 짜증나는 일들뿐이다. 날씨도 추워져서 어서 바삐 집으로 들어가고 싶은 맘으로 간절하다. 물론 집에 온다고 해서 일상이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 아파트 융자 갚을 걱정하랴, 얘들 교육비 걱정하랴, 마누라의 한숨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해서 애 낳고 보니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도 하나 둘씩 떠나간다. 집에 가서 할 일이라곤 소파에 누워 잘 때까지 TV를 보는 것이 고작이다. 그래도 박부장(혹은 김과장일 수도)은 오늘도 집으로 들어간다. 이 험난한 사회에서 회사 동료보다 의지가 되고 직장에서보다 속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은 ‘그나마’ 그의 가정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이윽고 우리의 주인공은 대문을 연다. 그러자 초등학생인 두 아이들이 잠옷차림으로 나와 율동과 덧붙여 노래를 부른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두 아이의 노랫소리에 박부장(혹은 김과장일수도)의 마음속에는 만감이 교차한다. 거지같은 이 세상 ‘그나마’ 내 새끼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다며. 어느덧 낮 동안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들과 대출금 이자 걱정 따위는 눈 녹듯이 사르르 사라진다. 이 귀여운 천사들 앞에서 어떠한 근심걱정이 생길 수 있으랴. 너희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던지 할 수 있다는 다짐이 다시 한 번 그의 마음속에 새겨진다. 얼마 전 동네 사진관에서 찍은 액자 속 가족사진이 박부장(혹은 김과장일 수도)의 가족들을 따스하게 바라보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한 우리의 아이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 오늘날의 아이들은 행복한 가정을 지탱해 주는 필수불가결한 감성장치가 되었다. 이쯤 되면 “보는 사람만 없다면 (가족을) 버리고 싶다.”던 영화 『하나비』의 감독 기타노 다케시(北野武)의 절규는 공염불에 그치고 만다. 

 

사실 전근대사회의 아이들에 대한 약간의 회고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전에는 ‘어린이’라는 관념이 없었다. 사람들은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해 보호해 줘야할 의무가 있어서 아이를 대하였다 긴 보단, 아이들의 장난스러움과 순진함 그리고 멍청함을 즐기곤 했다. 어른들은 기분전환을 위해 아이 같은 유치함을 즐기곤 한 것이다. “사람들은 아이를 하나의 동물, 버르장머리 없는 원숭이 같은 애완동물처럼 대했다. 그러다가 아이가 죽으면 (당시에는 그러한 일이 흔했다) 일부 사람들은 그래도 가슴아파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다른 자식을 갖게 되면서 쉽게 잊곤 했다. 아이는 일종의 익명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아동의 탄생』”
오늘날에도 먹고살기 힘들다고 하지만, 중세시대의 힘듦은 지금으로선 상상을 초월했다. 말 그대로 입하나 느는 것이 무서웠다. 그럴 때면 부모들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그저 아이를 뒤집어 눕히는 것. 본인들이 굶어죽기보다는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에 갓 나온 핏덩이 하나를 처치하는 것이 쉬웠으리라. 근근이 살아가느니 어릴 적 죽는 것이 더 속편한 것이라고 도덕적 자위도 했을 것이다.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영아살해는 일반적으로 사고의 형태로 위장되어 비밀리에 행해졌다. 아이들은 부모의 침대에서 자연사인 것처럼 질식사 당했으며, 사람들은 아이들을 보호하거나 구하기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트리엔트 공의회(1545년)에서는 주교들이 처음 ‘공식적’으로 침대에서의 질식사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나선다. 그럼에도 이 ‘관행’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다가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점차 사리지고 만다. “그것은 교회 윤리나 국가 윤리에 의해 비난받았지만 의지, 망각, 실수라는 한도 내에서 반(半)의식적으로 비밀리에 행해졌던,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일에 속(Ibid)”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배고프고 못 배운 농노뿐 아니라,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사람들에게도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보여 진다. 당시 최고의 지성 몽테뉴는 “나는 아직 젖먹이였던 아이 두세 명을 잃었지. 회한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크게 슬프지는 않아.『수상록Ⅱ』”라고 말하고, 몰리에르는 「상상병 환자」의 극중 인물 루이종의 입을 빌려 “어린 계집애들은 중요하지 않아.”라고 말한다. 17세기 소원심사관(訴願審査官)의 부인이 아이를 사산하자 그를 곁에서 지켜본 이웃의 또 다른 부인은 이렇게 위로(?)한다. “그 아이들이 당신을 성가시게 하기 전에 당신은 그 중의 반 혹은 전부를 잃어버릴 수도 있을 거예요.” 아마도 중세의 영·유아의 생명은, 아무렇지도 않고 임신중절수술을 하곤 하는 오늘날 철부지들이 태아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못한 듯하다. 오늘날 사귀던 여자 친구가 임신했을 때 대부분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중세인 들에게 있어 어린아이의 죽음은 인생에 있어서 아주 사소한 일이자 그저 운이 나쁜 일인 셈이다.
갓난아이를 홀대하는 이 모든 시련 가운데서도 목숨을 부지했다 하더라도, 아이에게는 더 큰 시련이 하나 남아있다. 유모양육이 그것이다. 당시에는 힘들게 낳은 자기 자식을 직접 키우는 것이 매우 드문 일이었는데, 따라서 아이는 세례를 받은 후 최소한 2년 정도를 유모에게 맡겨서 길러졌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부모처럼 집에서 유모를 두고 애를 기를 수 있는 사람은 최상층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실제로 이들은 도시의 요직을 맡고 있으며 대저택에 거주한다). 부유한 사람들은 그나마 가까운데 사는 유모를 구하지만, 못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싼 가격의 유모를 찾는다. 직업적인 유모가 20명에 이르는 아이들을 짐수레에 싣고 옮기는 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었으며, 심지어는 유모를 하는 사람이 아이를 하나라도 더 맡기 위해 더 싼 값의 유모를 찾아 자신의 아이를 맡기는 일도 있었다. 먹고살기 힘들어 얼굴이 누렇게 뜬 사람이, 얼굴도 가물가물한 언제 낳았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은 핏덩이를 찾아 먼 길을 떠나는 일은 쉽사리 상상되지 않는다. 그만큼 아이들은 부모들에게 무관심한 존재였다. 용케 별 탈 없이 유모양육으로부터 벗어난다 해도 아이들은 7-8세만 되면 남의 집에 보내져 도제 살이를 살아야만 했다. 중세의 아이들이 부모와 보낼 수 있던 시간은 태어나서 세례 전까지의 길어야 몇 개월이 전부인 셈이다.
비단 영·유아 뿐 아니라 좋고 싫은 감정을 말로 표현하고 생각할 수 있는 말 그대로의 어린이들(3세-12세 전후) 또한 그 못지않게 무시당하곤 했다. 중세의 그림들에서 발견되는 옷들은 계급을 표시할 뿐, 연령을 구분하지는 않는다. 이이들은 오직 신체 사이즈로 어른들과 차이를 나타낼 수 있었다. 실제로 젖을 먹을 때에나 입는 배내옷을 벗자마자 이 ‘작은 어른’들은 곧장 어른들의 옷을 줄여 입었다. 게다가 놀이문화에서도 어린이들만의 놀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가령 아이들의 놀이 중에는 도박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돈만 있다면 언제든지 어른들과 함께 한판 칠 수 있는 것이다. 중세의 풍속화에서 아이들은 어른들과 일과 놀이를 함께 했다. 온 거리와 일터가 어른과 아이들의 ‘공동’의 활동무대인 셈이다.
중세시대에는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성(性)과 관련된 것도 상당히 포함되어 있었다. 성에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도 순진무구해야할 오늘날에는 경을 칠 일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한참 사랑을 할 때 그들의 나이는 각각 15세, 14세였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사랑은 우리네 중학생들의 유치한 애들 놀음이 아닌, 할 것 안할 것 가리지 않는 어른들의 사랑 그 자체였다. 이렇듯 14세 소녀의 결혼이 흔했던 만큼 아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거리에서 음담패설을 나누는 경우도 흔했고, 성과 관련된 문화를 경험하는 데 충분히 대담한 행동을 취해도 괜찮았다.
동양이라고 해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효’(孝)를 백가지 행실의 기본으로 삼았기에 아이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더 잘 나타나곤 한다. 한(漢)고조 유방은 항우에게 패해 쫒기다가 수레의 무게를 덜기 위해 아들과 딸을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밀쳐낸다. 그러면서 도리어 자식은 죽으면 또 낳을 수 있지만, 자신이 죽게 되면 천하도, 한나라도, 그의 가족 성원도 모두 끝장이 나기 때문에 그 자신만은 절대로 죽어서는 안 된다고 역정 낸다. 유비도 충신 조자룡이 목숨을 걸고 자신의 아들 유선을 구출하자, 그 유선을 땅에 던지면서 너 때문에 자룡을 잃을 뻔 했다고 말한다. 유(劉)씨네 집안 내력이라면 뭐 할 말은 없지만, 어쨌건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오늘날과는 정 반대이다. 성춘향과 이몽룡의 진한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다음은 『춘향가』중 「사랑가」의 한 대목이다. “두 손을 한데 쥐고 속옷 끈을 끌어 내어 / 두 발로 미적미적 속옷을 벗겨 밀친 후에 / 올라가면 내려가고 내려가면 올라가고 / 벼게 밑으로 속곳 차고 발치 끝으로 이불을 차고 / 알몸으로 둘이 누워 온갖 장난 다한 후에 / 웬 좋은 그 노릇이 몇 번이나 되었는지 / 온갖 희롱 온갖 교태 정이 점점 깊어진다.” 그나마 점잖은 부분을 골라 발췌했음에도 불구하고, 낯 뜨거운 대목이 쏠쏠하다. 포르노에서나 볼 듯 한 온갖 체위나, 성기를 묘사한 부분은 노골적이다 못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이들의 나이가 14세 안팎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성적 순수성은커녕, 오늘날 웬만한 어른보다 더 까졌(?)다.
이러한 정황들은 중세의 아이들이 작은 어른들과 다름없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아이들에 대한 관심의 부재는 그들을 어른들과 그리 다르지 않는 처지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중세의 어린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고 해서 그들에 대한 애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애정은 우리가 갖고 있는 어린이에 대한 의식과는 그 성격이 분명 달랐으리라.

 

어린이에 대한 관념이 근본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였다. 루소의 말마따나 어린이는 순진 난만한 존재로서 어른들이 만든 세속의 잡다하고 더러운 것들에 물들지 않은 아름답고 깨끗한 존재라는 것이다. 어린이를 천사에 비유하는 것, 아니 반대로 천사에 어린이의 이미지를 부여하는 것 역시 바로 이 시기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물론 이전시대의 사람들이라고 아이의 순수함을 귀여워하지 않았단 보장은 없다. 다만 이때의 귀여움은 세상사에 찌든 어른들에 대비되는 상대적인 순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제 아이들은 순진무구한 존재인 만큼, 쉽사리 타락의 손길에 오염되기 쉬운 연약하고 적극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된다. 중세의 아이들은 외설스러웠을지언정 다양한 인간관계의 활동 속에서 어른 못지않게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바로 이 순수함 때문에 자유를 잃어야만 한다.
좋든 싫든 언젠가 타락한 세상과 접촉하는 순간 아이들은 쉽사리 오염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은, 어떤 유혹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자아를 지킬 수 있는 강력한 훈련과 교육이다. 중세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아이를 집에서 돌보지 않고 남의 가정에 보냈다. 이러한 계급과 빈부를 떠나 교육을 위해 일찍부터 남에 집에 도제 살이를 보내던 관행은 점차 학교를 보내는 것으로 대체되기 시작한다. 어른들의 세계로부터 격리되어 보호받고, 그 타락의 유혹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교육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해진 것이다. 이제 어린이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어린이를 교육하는 것이 의무가 된다. “이 시기에 어른들의 오염된 세계로부터 아이들을 격리시켜 원초적 순수성을 유지하게 하려는 배려와 어른들 세계의 유혹에 잘 견딜 수 있도록 단련시키려는 의도로 교육자들이 새로 엄격한 도덕적 요구를 했던 것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따른 것이었다.『아동의 탄생』”
더불어 아이들의 양육방식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나타난다. 이미 언급한 중세 유모양육의 끔찍한 모습에서는 부모의 사랑을 엿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는 애들을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 키우는 유모들에게서 부모의 사랑을 요구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로 유아사망률이 높던 시기에도 어머니가 직접 양육했을 경우 사망률이 19%인 반면, 유모 양육의 경우 그 비율은 38%에 이른다. 놀라기에는 아직 이르다. 프랑스 루앙 근방의 농촌에서 유아사망률은 90%에 이르기도 하니까. 그러나 18세기 말에 이르면 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모유 육아를 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진다. 루소의 영향이었을까? 아무튼 이 풍습은 점차 중산층으로까지 번져갔다. 즉 유모 대신 직접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 늘어난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아이를 대하는 부모들의 방식이 이전과는 현저히 달라졌음을 눈치 챌 수 있다. 몽테뉴만 해도 “내 아이들은 젖도 떼기 전에 죽었지”라고 덤덤하게 말하며 초연할 수 있었다. 비단 몽테뉴뿐 아니라 당시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아이들, 특히 죽은 아이들에 대해서는 기억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이들을 기른다는 것이 부모들의 삶 자체의 중요한 역할과 목적이 되면서, 부모들의 생활 자체를 바꾸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건강한 양육과 건전한 교육이 가정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된 것이다. 이렇게 변하기까지는 여러 요인들이 있으나 그것들을 다 언급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을 거칠게 한 마디로 축약하자면 자본주의의 확대에 따른 개인주의의 확산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하겠다.
의식적이었건 무의식적이었건 자본주의가 오늘날과 같이 발달하여 개개인이 뿔뿔이 흩어지기 전까지는 한 개인은 어느 한 공동체에 속하곤 했다. 모든 공동체는 돈이 들어오면 해체된다. 쉽게 생각해 보자, 친구들 사이에서도 돈 얘기가 오가면 분위기가 얼마나 어색해 지던가. 자본주의가 도입 되면서 이전의 공동체는 서서히 해체해간다. “교환은 공동체들 사이에서 시작되며 공동체 내부로 침투해서 공동체에 해체적인 영향을 한다.『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사람들은 더 이상 스스로를 ‘우리’의 틀에서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사람들은 ‘00장인’ 소속의 김 아무개도, ‘ㅁㅁ가문’ 소속의 박 아무개, ‘ㅅㅅ교구’ 소속의 이 아무개도 아니다. 시장 앞에서 개인은 형식적으로 평등한 철저히 혼자가 된다. 맑스의 지적대로 그만큼 ‘무정한 사회’가 된 것이다. 이는 결혼과 가족 나아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까지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전에는 집안의 눈치를 보고 결혼 하고, 자식을 낳아서도 내 자식이 아닌 가문의 상속자로 대해야만 했다. 그러나 공동체가 그 기능을 정지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사람들은 점차 자신만의 사랑을 찾아 결혼하기 위해 헤맨다. . 
18세기말 내지 19세기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사랑에 기반 한 결혼이 보편화되던 시기였다. 그 이전의 결혼은 두 집안의 신뢰에 근거한 일종의 계약이었다. “결혼은 왕후·귀족들 뿐 아니라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젊은 남녀의 사랑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두 가족을 혈연관계로 맺어 혈통이 끊어지지 않게 하려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 농민계층조차 결혼에 즈음하여 먼저 물질적·경제적 조건 및 사회적 지위를 고려했다. 그 때문에 사회의 도덕률도 부부간의 애정유무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고, 부부의 의무를 엄수하는 것만을 요구했다. -Flandrin, 『성의 역사』”
연애결혼(love marriage)란 말이 사전에 처음 등장한 것은 1797년 이후이며, 1835년에 나온 사전에는 이를 ‘지위와 재산이 조화된 결혼’, ‘이익을 위한 결혼’ 등과 대비되는 말로 사용된다. 1770년 이전에 ‘결혼’이란 말과 ‘사랑’이라는 말이 함께 사용된 사례 또한 전무했다. 이전시기까지만 하더라도 부부애, 즉 ‘부부’와 ‘사랑(愛)’을 함께 사용한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쉽지 많은 않았단 뜻이다. 사실 권력이나 재산, 다른 나라와의 동맹을 얻기 위한 결혼에서, 사랑은 조절되고 금지되어야 하는 것이지 결코 권장사항이 아니었다. 애정은 결혼 후에나 생기는 것이지 결코 그 반대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부부관계 속으로 사랑을 통합하려는 태도들은 19세기에 이르면서 가족에 관한 새로운 모델을 가져왔다. 이전만 해도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정부처럼 대하는 것은 수치였으며, 궁중에서는 결혼 한지 6개월이 지났는데도 애인이 없는 사람을 놀리곤 했다. 역설적이게도 지나친 부부애를 경계한 것이다. 조선시대 양반에게서도 비슷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양반이 자신의 정부인과 성관계를 가질 때에 옷을 벗는다는 것은 있을 수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뒷구멍으로 첩들과 질펀하게 놀아난 것과는 분명 대조적이다. 하지만 결혼과 분리되어 있던 성적 관계나 성적 욕망들이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결혼을 통해 가족의 틀로 점차 들어오게 된다. 가족의 경계 밖에서 행해지던 행위들이 가족 안으로 수렴된 것이다.
이제 사랑은 합법적인 사랑, 즉 가족적인 사랑인 한에서만 인정받는다. 한 사람만을 위한 사랑, 하늘이 내려주신 사랑, 자기 삶 자체를 흔드는 격렬한 사랑을 결혼과 떼어놓고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성애 또한 마찬가지다. 부부 속사정이 어떠하던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그것은 가족의 틀을 벗어나 생각할 수 없는 문제이다. 가족의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불륜이나 매춘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만한 행동이 된다. 정치도, 종교도 다 필 요 없다. 모든 관심사는 가정으로 돌려진다. 아이들이 오늘날과 같이 집안의 보물로 대접받기 시작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부부간의 사랑과 애정, 어린이에 대한 사랑은 이제 의무가 된 셈이다.
가정이 모든 사랑과 정열을 집중해야만 하는 특권적인 장소가 됨으로서, 가정은 외부와는 단절된 배타적인 세계가 된다. 그 누구도 참견해서는 안 되는 안식처이다. 가정생활의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으며, 그것을 위해서는 어떠한 것도 기꺼이 희생하고자 하는 태도, 달콤한 가정생활의 꿈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죄악으로 간주하여 비난하고 파괴하려는 태도. 남이야 어떻게 되거나 말거나, 내 가정만 안전하다면 상관없다는 꼴불견들을 주위에서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아니, 오히려 이 꼴불견들은 가족 사랑으로 칭송되기에 이른다. 가정에서 아이가 제왕이 되는 시기는, 사회에 대해 가정이 완승하는 시대와 일치한다. 아리에스의 말처럼 “승리한 것, 그것은 개인주의가 아니라 가족이다.『아동의 탄생』” 아동의 탄생은 가족의 탄생이다.

 

카프카는 벌레로의 변신을 통해 가족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시도를 통해 너무나 익숙해 알지 못하던 많은 것들을 알고 만다. 주인공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에 자신이 벌레로 변했다는 것을 확인한다. 영업사원으로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을 부양해왔었는데, 하루아침에 오도 가도 못하는 벌레가 된 것이다. 그간의 정 때문일까, 가족들은 생각만 해도 다리 여섯에 등딱지가 딱딱한 징그러운 이 벌레(아마도 바퀴벌레가 아닐까)를 한동안은 보살핀다. 그것도 잠시 가족들은 벌레가 된 오빠를 ‘저것’이라고 부르며 서서히 가족으로부터 배제하려고 한다. 벌레(오빠)를 제외한 가족들은 생각한다. ‘만약 저 벌레가 오빠였다면, 나머지 식구에게 폐를 끼치기 전에 스스로 가족 성원으로부터 탈퇴했을 것이다. 그런데 저것은 식구에게 폐만 끼치고 있다. 따라서 저것은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추방해야만 한다.’ 여동생의 변(辯)이다.
“‘내쫓아버리는 거예요’ 하고 누이동생이 말했다. ‘아버지, 저것이 오빠인 그레고르라고 지금까지 생각하고 계시니까 그러는 거예요.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저것이 그레고르란 말인가요? 만일 저것이 그레고르였다면, 인간이 자기와 같은 짐승과는 함께 살지 못한다는 것쯤은 벌써 알았을 거예요. 그래서 스스로 나가버렸을 거예요. 그렇게만 되었다면 오빠는 없어져도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아서 오빠에 대한 추억을 소중히 간직할 수 있었을 텐데.『변신』” 그렇게 벌레가 된 오빠는 가족으로부터 추방당한다.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까지 가족들끼리 행복했던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사실 말이지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은 그다지 완벽하지 않다. 겨우 홈, 홈, 스위트 홈이라는 막연한 환상이 전부이다. 마치 아파트 광고마냥, 고급 중형아파트와 드레스를 차려입은 주부, 고급 사무직에 종사하는 남편, 그리고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치는 자녀 등등의 모습이 기껏해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족의 모습의 전부이다. 뭐라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야 말로 가족이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 어느 광고에 나오는 아들은 아버지의 휴대폰에 자신의 이름이 ‘나의 희망’인 것을 보고 감동받는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랴. 그 ‘나의 희망’도 학원이다 뭐다 해서 최근 몇 년 동안 아버지랑 얼굴 맞대고 제대로 몇 마디 나눠 본 적 조차 없다. 딸이 있다면 더했을 것이다. 단언하건데 이들은 기껏해야 지네 아버지를 ‘돈 벌어다 주는 기계’ 정도로 생각했다. 실제로 얼마 전 “자녀가 고민이 생길 경우 가장 먼저 나와 의논한다.”는 설문에서 아버지의 50.8%는 긍정적으로 생각했지만, 자식은 단 4%만 그러리라고 답했다. 대학생의 68%는 아버지보다 TV를 선택했고, 44%는 아버지와 함께 하는 저녁식사가 가시방석이라고 대답한다(EBS,「지식채널e」). 이제는 그다지 충격적이지도 않는 설문이다. 근데 겨우 ‘나의 희망’이란 단어 한마디를 보고 감동받는 덴다. 똑똑한 사람이 다 모여 있다는 국내 굴지의 그룹답지 않는 유치한 상상이다. 그래도 꿋꿋하게 이 광고는 자신들의 유치한 생각을 밀고 나간다. 그래도 가족만한 것이 없다며.
그만큼 가족에 대한 우리의 환상은 심각하다. 현실에서의 가족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있는 것이 아닌,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었을 경우에만 가족일 수 있다. 이론적으로 아프거나 파산했을 때, 우리가 아는 가족이라면 더욱 더 똘똘 뭉쳐 가족의 사랑으로 그 난관을 헤쳐 나갈 것이지만, 반대로 가정은 붕괴된다. 그나마 예전에는 서로 가지려 했던 자녀 양육권을 요즘에는 서로 떠넘기기 급급하다. 카프카의 말마따나 멀쩡하던 오빠가 벌레가 된 것처럼 남들에게 보기 좋을 만한 가족이 아닐 때, 가족은 가차 없이 우리를 내친다. 잘 생각해보자. 남들 다 가는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가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난다고 말했을 때, 이 궤도를 이탈하려는 우리의 자유로운 발걸음에 가장 먼저 반대하고 나서는 것은 바로 가족이다. 거기에는 훌륭한 기만술이 덧붙여진다. ‘이게 다 너를 위한 거야’라는. 
물론 가족을 가지려는 것은 인간의 오래된 원초적인 본능이다. 그러나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번듯한 가족을 꿈꾸는 가족이 오히려 그 본능을 잡아먹는다. 영아 때부터 실시하는 영어유치원(요즘에는 이것도 늦었다고 영어로 태교를 한다)과 고급과외, 조기유학과 수많은 기러기아빠들. 뿐만 아니다. 제대로 된 부모 노릇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아파트 투기, 촌지와 같은 뒷돈 거래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필수! 가족을 찾으려는 헛된 꿈에 얘들은 병들어가고 부모들은 쓰러진다. 가족은 단순히 사랑하는 남녀, 그리고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자식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다. 가족은 자신 안에 속한 인간들을 지배하고 통제함으로서만 자신의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는 말 그대로 거대한 벌레인 셈이다.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고 새로운 삶을 찾아다니는 삶은, 정착과 안정 앞에선 무릎 꿇을 수밖에 없다. 안정된 일터와 편한 쉼터가 우리가 꿈꾸는 최고의 가치가 된 순간, 가정을 중심으로 모든 활동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행해진다. 더 이상 모험은 없다. 오디세우스를 보라. 가족을 떠나 20년간 온갖 모험을 겪고 돌아온 그는 더 이상 이전의 그가 아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그토록 기다리던 남편을 처음 본 순간 그간의 일을 덤덤히 읊조리는 대범한 아내 페넬로페이아가 있었다. 모든 모험은 가족을 넘어서만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모험을 함께 할 때 진짜 가족은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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