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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7년 05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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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52쪽 | 669g | 140*207*30mm |
ISBN13 | 9791156120933 |
ISBN10 | 1156120934 |
얼리리더를 위한 5월의 책 : 디즈니 캐릭터 PVC 마그넷 증정
2024년 05월 01일 ~ 2024년 05월 31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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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라는 게 워낙 우리 삶 속에 공기처럼 존재하다 보니 너무 당연해서 인생의 시점시점마다 거기에 늘 시험이 있었음을 망각하고 살았었다. 그런데 이 책은 마치 거기에 공기가 있었음을, 그것도 미세 먼지 가득한 나쁜 공기가 둘러싸고 있었음을 일깨워 주는 듯하다. 여태껏 그 공기 때문에 콜록 거리면서도 효과 좋은 약만 생각했지, 애초에 공기 자체에 문제가 있었음을 몰랐다.
책은 한국인의 사회적 DNA에 각인된 이 '시험'이라는 존재에 대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그 역사부터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의미까지 두루두루 다루고 있다. 오늘날 시험은 좋게든, 나쁘게든 더 다면적이고 다층적으로 변모해 가고 있어 '평가'라는 말이 더 익숙해졌다. 책은 과거시험부터 오늘날 입시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사례부터 외국의 사례까지, 어린학생의 일기부터 학술논문까지 시험에 관한 전방위적인 자료를 밑바탕으로 쓰여졌다. 방대한 참고자료는 그 리스트만으로도 책 두께의 10분의 일은 족히 차지한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든 지루하게 읽었든 간에 시험이라는 한 가지 주제를 향한 오랜 세월에 걸친 작가의 노고를 오롯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책에 따르면, 우리는 시험이라는 것에 대해 일종의 신화를 가지고 있었다. 시험의 기회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시험 결과를 처리하는 데 시험평가자의 의견이 개입될 수 없다면, 그리고 일정 정도의 변별력을 갖추어 시험 결과의 서열화가 가능하다면, 그 시험은 정의롭고 공평하다고 믿는다. 시험 응시자가 시험을 선택할 수 있기에 시험에 대한 통제권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작가는 여러가지 근거를 들어 설득력있게 주장한다. 모든 시험은, 시대를 지배하는 권력자의 의지가 반영된다. 시험은 국민을 통제하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며 가장 싸고 가장 뒤탈이 없다. 시험 권력자는 시험의 결과로 부여되는 사회적 보상이라는 당근을 가지고 시험의 빈도와 시험 내용을 구미에 맞게 결정한다.
그런 상황하에서 누구도 그 시험의 '타당성'에 대해 질문하기란 쉽지 않다. 시험의 실패와 성공 여부에 따라 보상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시험의 질문이 정의로운지, 제시된 정답이 진짜 정답인지 따져 묻는 일이란 의식하기 조차 쉽지가 않다. 일제시대에 황국 신민의 소양에 대해 묻던 시험이, 영어 대신 국어 대신 일어능력을 강요하던 시험이 과연 그 시대를 살던 국민들에게 온당한 일이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기회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던 과거시험이 시험 내적, 외적인 문제로 사실상 한양에 사는 양반들에게만 절대적으로 유리했던 것처럼, 점차로 수시 비율을 높여가는 대학입시가 부모의 사회 경제적 문화적 자본과 높은 정적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는 현재도 생각해 봐야 한다. 시험이 그 자체로 공정하고 정의롭기란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이 시험에 대해 타당성이 없다던가, 시험이 요구하는 능력이나 소양이 올바른 것인지 하는 비판의식을 좀처럼 가질 수 없는 이유는 많은 경우에 시험이 능력주의의 탈을 쓰기 때문이다. 얼핏,능력에 따라 평가되고 평가된 결과에 따라 사회가 가진 자원을 차등 배분하는 시스템은 상당히 공정해 보이고 정의로워 보인다. 하지만 그 내면을 조금만 살펴보면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이 아니라 가족이 가진 사회,경제적,문화적 자본에 강력한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시험으로 엘리트계층이 된 사람들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계층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으로 국민을 통제하려는 권력자들에 의해, 시험은 그렇게 모두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온 국민을 줄로 세우는 서열주의를 강화하는 첨병의 역할을 한다.
작가는 서열화된 사회에서 인간은 '왜 사는가' '왜 죽는가' '사랑은 무엇인가'와 같은 큰 질문'을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시험이 시험을 결정하고 출제하는 시험권력자의 통제하에서 움직이는 한, 서열화를 목표로 하는 시험은 채점의 문제 때문에 인간을 성장하게 하는 그런 진짜 질문들을 감당할 수 없다.
하지만 한 인간의 성장이란, 배움이란 꼭 그렇게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때로는 수년 뒤에 '깨달음'이라는 이름으로 오기도 하고 어떤 내면의 변화는 타인에 의해 관찰될 수 없는 형태의 것일 수도 있다. 출제자가 제시하는 작은 질문들에 순종적으로 답을 할 때만이 보상이 주어지는 이 시스템은 분명 문제가 있다. 작가는 결국, 인공지능이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오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어떤 미래사회를 꿈꾸더라도, 현재의 시험은, 서열화를 목표로 하는 평가 시스템이라면 해답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여태 시험이 던지는 문제에 충성스럽게 답을 바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시험준비를 하느라 청춘을 박제하고 가족의 삶을 저당잡으며 사회의 지배층, 권력자가 통제하고자 하는 대로 시험이 원하는 답을 내어주기위해 개인과 사회가 가진 모든 역량과 자원을 총동원하는데 집중해 왔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질문이었다. 시험의 역사와 시험의 사회적, 정치적 함의들을 살펴보며 책속에 언급되었던 시험이 양산한 그 수많은 부조리와 모순들은 모두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듯하다. 우리는 왜 한가지 답만 해야 하는가. 답이 여러개일 수는 없는가. 나아가 답이 아니라 질문을 할 수는 없는 건가. 질문의 권리는 그 시대의 권력자에게 넘겨준 채, 여태 답의 노예로 살아왔다. 이제는 시험 권력자들로부터 질문의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 그리고 질문해야 한다. 대학에, 국가에. 너의 질문은 타당한 것인가. 너의 정답은 진정 정답인가.
책은 시험 없는 사회를 꿈꾼다. 평가당하지 않는 사회, 서로가 서로에게 값어치를 매기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은 모두 불완전한 존재들이며 누구도 완벽하지 않기에 평가의 권리는 소수 몇몇의 문제 출제자가 가질 수 없다. 그보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평가하고 더 배우고 싶은 것을 찾아 질문하고 원하면 누구든지, 언제든지 배울 수 있는 그런 사회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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