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씩 집에 못 들어가도 건축을 하는 이유
주위를 둘러보면 참 많은 건물들이 있다. 주택, 아파트, 병원, 교회, 공장, 쇼핑몰, 미술관, 박물관, 운동 경기장, 빌딩…. 건축가들은 바로 이러한 건축물들을 디자인하고 만든다. 그 과정은 이러하다. 일단 수의계약이나 현상공모, 턴키(설계부터 시공까지 일괄 진행하는 입찰 프로젝트) 등을 통해 건축 수주를 딴다. 그런 다음 토목, 건축, 구조, 기계, 전기, 정화조, 조경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설계를 하고 시공을 하고 완공하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
그사이 건축가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조화롭게 일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하며 건축 허가 관련 관청 업무를 비롯해 다양한 일을 해야 한다. 야근을 밥 먹듯 해도 늘 시간에 쫓긴다.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건축 일을 하는 것을 후회하는 건축가가 한 사람도 없다는 거다. 이에 대해 한옥의 혼을 이어 가고 있는 김용미 금성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건축을 전공해서 가장 좋은 점은 '정말 보람 있는 직업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나는 성균관대 건축학과 5학년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 학생들에게 "화장실 하나만 제대로 설계해도 건물 청소부 아줌마의 삶에 행복과 편안함을 더해 줄 수 있다. 여러분들은 행복을 선물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했다."라고 말해 주곤 한다. 건축가가 되려면 심지가 굳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그런 꿈을 가지고 그 꿈을 먹고 사는 직업이라서 그렇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행복해질까를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바로 건축가다. (본문 124쪽 중에서) 화장실 하나만 제대로 설계해도 사람들의 삶에 행복과 편안함을 더해 줄 수 있다니 건축가의 일이란 놀라울 뿐이다.
건축은 사람들의 삶에 다가가는 일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목욕탕 공간이 들어 있는 무주 안성면 면사무소이다. 고 정기용 건축가는 "면사무소는 뭐 하러 짓나. 목욕탕이나 지어 줘!"라는 주민들의 말을 예사로 넘겨듣지 않고 국내 최초, 어쩌면 세계 최초일지도 모르는 이러한 면사무소를 만들었다. 지난해 '호화 청사'란 별칭을 달고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성남시청 청사 건물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청사를 지은 건축가에게 잘못을 물을 수는 없다. 다만 건축이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또 요즘 흔히 건축에서 제기되는 친환경성이나 지속 가능성, 에너지 효율성, 비용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면사무소는 뭐 하러 짓나. 목욕탕이나 지어 줘!"라고 했다. 집에 목욕탕이 없냐고 물으면 새마을운동 때 부엌을 입식으로 만들어서 물 끼얹을 공간도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뼛골이 다 쑤셔. 그래도 씻고는 살아야지. 각자 돈을 추렴해서는 봉고차를 빌려 대전까지 목욕을 하러 간다니까."
답을 달리 구해야 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최초로 목욕탕이 결합된 면사무소가 안성면에 들어서게 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크게 지으면 유지비가 많이 드니 홀숫날은 남탕, 짝숫날은 여탕으로 운영하기로 하고 목욕탕 공간을 설계했다. 여기에 더해 나이 든 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보건소 공간도 그려 넣었다. (본문 45-46쪽 중에서)
박유진 건축가가 '북서울 꿈의숲' 공원을 디자인하면서 건물을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세우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생각을 넘어 그곳을 찾는 시민들이 어디서 어떻게 휴식을 취하고 문화 활동을 할 수 있을지, 그 장소에서 고개를 들면 무엇을 볼 수 있을지, 장애인도 쉽게 이용 가능한지, 안전한지 등등 세세하게 고민하고 배려하는 모습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다.
건축 설계를 하는 많은 건축가들이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 임진우 건축가는 병원을 설계할 때 '치유 환경'에 온 신경을 쏟고 '환자가 주인공인 병원' 상을 그린다. 또 김영옥 건축가는 상업 공간을 디자인하면서 클라이언트의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조병수 건축가와 최삼영 건축가 등은 자신들이 만든 집에서 살 사람들이 항시 행복하기를 염원한다.
좌충우돌 한국 건축가들의 대단한 도전
최근 우리나라 건축가들의 디자인 능력과 건축 기술은 엄청나게 급성장한 것 같다. 강남의 초고층 빌딩들은 말할 것도 없이 광화문에만 나가도 크고 높은 빌딩들에 어지러울 지경이고 그 사이사이로 뻗은 길과 독특하고 예쁜 건물들, 장소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어디 그뿐인가. 해외에서 주목받는 건축물과 건축가들도 늘어 가고 있다. 건축가 조민석이 설계한 서울 강남의 부티크 모나코는 세계 5대 초고층 건축물로 선정됐으며, 한국 디자인팀 ANL이 설계한 인천대교 전망대 오션스코프는 국제적으로 ?인받는 레드 닷 어워드(Red Dot Award)를 수상했다. 또 건축가 안길원은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 우리나라 판교급 신도시 두 곳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그런가 하면 김종훈은 삼성건설 재직 중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말레이시아 KLCC 쌍둥이 빌딩 1개 동을 일본보다 먼저 완공하여 이름을 떨쳤고 조병수 건축가는 미국건축가협회상을 12회나 수상했다.
물론 한국 건축과 건축가가 이 같이 성장하기까지는 뼈아픈 성장통도 겪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의 삼풍백화점 붕괴, 2003년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이다. 이를 통해 건축가들은 건축의 안전성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고, 건축 현장 감리를 넘어 건축 전 과정을 통합 관리하는 CM(Construction Management) 방식을 국내에 도입하기도 했다. 짧은 한국 현대 건축사에 비할 때 우리나라 건축가들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정말 열심히 뛰어왔고 이제 그 성장한 모습을 세계에 하나씩 하나씩 알리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한국 건축가들의 삶과 고민과 도전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새내기 건축가들의 좌충우돌 일기와 건축가의 노동 강도, 보수, 전망, 건축가에서 건축사가 되는 과정 등 건축가라는 직업에 대한 실제적 정보도 풍부하게 담고 있어서 건축가를 꿈꾸는 모든 이들의 궁금증을 속 시원히 풀어 주고 있다.
편집자 노트) '건축'이란 그릇에 선한 마음을 담는 사람들
[건축가가 말하는 건축가], '부키 전문직 리포트' 시리즈의 열네 번째 권으로 17명의 건축가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은 오늘의 건축가 생활 보고서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주택이나 공공건물, 상업 공간을 만드는 건축가들은 물론이고 구조 설계, 건축 CM, 도시 설계, 조경 등 다양한 건축 분야의 전문가들이 필자로 참여하여 자신의 일과 생활, 보람과 애환을 시종일관 흥미진진하면서도 진지하게 전하고 있다. 또 이 책에는 한국 현대건축 1세대이자 효시라 할 수 있는 김수근의 건축사무소 '공간'을 잇고 있는 이상림, 제1호 '기적의 도서관'인 순천어린이도서관을 지은 정기용,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말레이시아의 KLCC 쌍둥이 빌딩 1개 동을 일본보다 먼저 완공한 김종훈 등 우리 세대 뛰어난 건축가들의 활약상과 그 현장에 대한 기록도 담겨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에서 나를 감동시킨 것은, "면사무소는 뭐 하러 짓나. 목욕탕이나 지어 줘!"라는 무주 안성면 주민들의 말을 예사로 넘겨듣지 않고 목욕탕 공간을 넣은 면사소를 국내 최초로, 어쩌면 세계 최초로 만든 고 정기용 건축가이다.(안타깝게도 정기용 선생님은 지난 3월에 작고하셨다.) 지난해 '호화 청사'란 별칭을 달고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성남시청 청사 건물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청사를 지은 건축가에게 잘못을 물을 수는 없다. 다만 건축이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또 요즘 흔히 건축에서 제기되는 친환경성이나 지속 가능성, 에너지 효율성, 비용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박유진 건축가가 '북서울 꿈의숲' 공원을 디자인하면서 건물을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세우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생각을 넘어 그곳을 찾는 시민들이 어디서 어떻게 휴식을 취하고 문화 활동을 할 수 있을지, 그 장소에서 고개를 들면 무엇을 볼 수 있을지, 장애인도 쉽게 이용 가능한지, 안전한지 등등 섬세하게 고민하고 배려하는 모습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다.
건축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최근 우리나라 건축가들의 디자인 능력과 건축 기술은 엄청나게 급성장한 것 같다. 광화문 한복판에 서면 크고 높은 빌딩들에 어지러울 지경이고 그 사이사이로 뻗은 길과 독특하고 예쁜 건물들, 장소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우리는 그러한 건물들에 익숙하고 때때로 예쁜 카페를 찾아디니거나 크고 웅장한 전시관을 구경하면서 문화적 사치를 누린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오늘 나는 이 책을 통해 잠시나마 '참으로 사람을 위한 건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개개의 건축물은 우리네 사람과 마찬가지로 높은 것도 있고 낮은 것도 있고,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화려한 것도 있고 소박한 것도 있고, 서구적인 것도 있고 동양적인 것도 있고…, 정말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한 가지 그 바탕을 이루고 있어야 할 근본 마음은 공통돼야 할 것이다. 사람이라는 그릇에 선한 마음을 담는 것이 중요하듯, 건축에도 선한 마음을 담아 그곳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삶을 아름답고 이롭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건물의 화려한 외관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한 가지 개인적인 감상을 덧붙이자면, 그러한 고민을 하는 건축가들을 이 책에서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너무나도 고맙고 복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