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 프라임
패권이 변할 때마다 요동치는 한반도!!
한반도는 또다시 강대국들의 각축장으로 전락할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초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힘이 부딪히기 시작했으며, 일본과 러시아의 시선 역시 한반도를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벌어진 지정학적 위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5,000년 동안 강대국들 사이에서 무수한 위기를 겪어야만 했고, 그 역사는 우리에게 교훈을 남겼다. 다시 찾아온 냉혹한 패권투쟁의 시대, 한반도의 역사를 통해 찾아낸 패권교체기의 생존전략을 살펴본다.
1. 신라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약소국이 강대국을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기 642년 7월, 신라는 백제의 침입을 받았고 압도적인 병력 차이와 내부의 반란으로 낙동강 서부지역의 중심인 대야성이 함락당했다. 거듭되는 패전으로 백제군과 서라벌의 사이는 한나절 거리밖에 되지 않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교적 고립은 존망의 갈림길에 직면케 했다. 하지만 신라는 멸망위기를 극복하고, 거세게 몰아붙이던 백제와 동북아시아의 최강국이었던 고구려를 물리치며 삼국통일을 달성했다. 그렇다면 신라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으며, 백제와 고구려는 왜 그토록 허망하게 무너진 것일까? 전쟁을 벌이면서도 외교적 해결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냉철함을 보여준 신라의 지도자들과 신라의 통일 과정을 통해 약소국이 강대국을 활용하는 가장 좋은 사례를 살펴본다.
2. 거란전쟁, 동북아 균형자의 조건
외교와 안보의 성공 조건은 무엇인가?!
서기 993년, 소손녕이 이끄는 거란군의 기습적인 침공으로 고려 조정은 전의를 상실하고 옛 고구려 땅인 황해도 이북을 떼어주기로 한다. 그러나 거란군의 움직임에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 서희는 항복을 반대하며 소손녕을 만났고, 이 회담을 통해 압록강 이남의 강동육주는 고려의 영토로 인정되었다. 한편, 1018년 군주 현종은 개경 인근까지 쳐들어온 거란군에 맞서 싸워 이겼다. 패한 거란의 대군은 귀주성에서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에게 덜미를 잡혔고, 이 전투는 거란과 고려 사이의 30년 전쟁을 끝낸 마지막 전투가 되었다. 그렇다면 당시 강대국이었던 거란의 침입을 고려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 외교관 서희와 군주 현종의 이야기를 통해 외교와 안보의 성공 조건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3. 몽골제국과의 이상한 전쟁
정권의 정당성과 국가안보는 상관관계가 있는가?!
1231년 8월, 권력의 정점에 왕이 아니라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최이가 있었던 시대에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었던 몽골군이 압록강을 건넜고, 의주성이 당일로 함락됐다. 이어서 철산성, 자주성, 구주성 전투 등이 벌어졌으나 중앙으로부터의 지원군은 오지 않았고 결국 고려군은 참패 후 항복했다. 최이는 몽골군의 2차 침입을 대비해 수도를 강화도로 옮겼고, 왕과 귀족들은 천혜의 요새 안에서 호의호식했으나 몽골군의 침략에 그대로 노출된 백성들은 살기 위해 몽골군과 싸워야만 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전쟁을 지원하지 않았으며, 그런데도 전쟁을 이어나갔던 이유는 무엇일까? 몽골 침입기, 고려 무신정권의 이야기를 통해 정권의 정당성이 국가안보에 얼마나 중요한지 살펴본다.
4. 병자호란, 궁지에 빠진 중립외교
약소국의 중립외교는 가능한 것인가?!
1632년 4월, 인조반정이 일어났고 광해군의 중립외교와 반대 노선인 숭명배금정책을 천명함으로써 병자호란을 불렀다는 것이 일종의 역사적 상식으로 통한다. 그런데 당시 외교정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실제로 조선은 후금에 대해 강경외교를 실시한 적이 없다. 숭명배금은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슬로건에 불과했으며, 명과 청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의 불꽃은 조선을 비껴가지 않았고 병자호란은 결국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오욕의 역사로 마무리됐다. 그렇다면 조선은 어떻게 해서 원하지도 않았던 전쟁의 불구덩이 속으로 끌려들어 가게 되었을까? 병자호란이라는 굴욕의 역사를 통해 교묘한 외교력과 강력한 자기방어력을 갖추지 않은 중립외교의 최후가 어떠한지 살펴본다.
5. 고종, 열강의 덫에 빠지다
외세는 위기의 구원자가 될 수 있는가?!
1894년 1월, 가혹한 수탈을 이기지 못한 농민들이 봉기했고 고종은 이전의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처럼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런데 청군이 조선에 들어오자 난데없이 일본군 역시 조선 땅에 들어왔다. 갑오변란, 을미사변, 아관파천, 러일전쟁까지 고종은 청나라와 일본, 미국과 러시아 사이를 오가며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조선은 망했고, 고종은 망국의 군주라는 오욕의 주인공이 됐다. 그렇다면 왜 똑같이 외세를 이용하는 전략을 구상했는데 신라의 김춘추는 성공하고, 조선의 고종은 실패한 것일까? 외세를 이용하고자 했던 고종을 통해 이웃 나라가 과연 위기의 구원자가 될 수 있는지, 독자적인 힘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는 외교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살펴본다.
6. 패권교체기의 생존전략
한국은 과연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21세기, 한반도는 또다시 강대국들의 각축장으로 전락할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세계적인 기준에서 보면 경제 대국이자 무역 국가인 한국은 매우 강한 국가임이 분명하지만, 러시아·중국·일본·미국의 지리적 이해관계 혹은 지리적 압력의 교차점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약소국의 전략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5,000년의 역사를 통해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아볼 수 있으며, 벨기에나 스위스가 이미 겪었던 중립외교전략의 실패와 성공 사례는 한반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현명한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국제관계 및 동양사 석학들의 인터뷰를 통해 대한민국의 현실과 미래를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