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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8년 10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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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72쪽 | 662g | 152*215*30mm |
ISBN13 | 9791157842872 |
ISBN10 | 11578428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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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5일 근무하는 직장인이었다. 평일 퇴근 후 늦은 시간이나 주말에 도서관을 가보면, 흥미로운 인문학 강좌를 예고하는 포스터가 도서관마다 걸려있었다. 단순히 책만 대여하는 곳이 아닌, 근래엔 종합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그곳에 붙은 게시물을 보며 나는 침만 흘려야 했다. ‘왜 내가 듣고 싶은 강의는 평일 오전이나 이른 오후에 하는 것인가! 퇴근하고도 들을 수 있는 강의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내 마음을 적확하게 표현한다면 퇴근 시간이 일러졌으면 좋겠다!’
그러던 내가 육아휴직을 하게 됐다. 만삭의 몸으로 출산휴가에 들어간 직후, 그제서야 태교란 걸 제대로 해보자며 도서관에 갔을 때, ‘이젠 이 강의를 들을 수 있겠지?’ 생각했었다. 그러나 웬걸, 아기를 낳고서는 직장에 매어 있지 않는다 뿐 그 시간이 온전히 내 시간은 될 수 없었다. 내가 감명 깊게 읽었던 심리학 저서의 저자가 인근 도서관에 강사로 온다는데도 나는 감히 신청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아기띠를 매고 가더라도 울음 소리에 민폐만 끼칠 게 뻔했으니까.
이렇게 육아휴직 중에도 ‘자발적 공부’에 대한 내 욕망은 채워질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발견한 책 <퇴근길 인문학 수업>,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는 제목 아닌가. 육아라는 매일 새롭게 생경하고, 답을 알 수 없는 일이 끝난 하루의 마지막 즉, 아기가 잠든 시간이 되면 나는 소위 ‘육퇴’란 걸 한다. 그 시간에 이 책을 읽으면 이 갈증이 좀 해소될까? 그리고 좀 더 나아간다면 결국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건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답을 찾는 과정일 텐데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지, 내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길이 좀 보일까? 이런 기대감을 안고 이 책을 넘겼다.
7쪽. 교과과정처럼 커리큘럼을 정해 매주 한 가지 주제를 읽고 성찰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인생을 항해할 때 멈춤, 전환, 전진이라는 과정을 거치듯 1권은 ‘멈춤’이라는 테미로 바쁜 걸음을 멈추고 나를 둘러싼 세계를 마주할 수 있는 내용들로 꾸몄다. 2권의 테마는 ‘전환’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선으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주제들이다. 3권은 ‘전진’이다. 다시 일상의 시간으로 돌아가 세상 밖으로 성큼성큼 나아가자는 의미다. -프롤로그 중
나는 1권 ‘멈춤’을 먼저 읽고 만족스러워 이번 3권도 접하게 되었다. 1권 첫 장의 주제 ‘동성애’에서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이 역사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바뀌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깊이 이해해 볼 수 있었다. 대학로에서 가끔씩 연극을 볼 때가 있었는데(육아 중이니 이제 이마저도 사치스러운 일이 되었다.) 연극의 기원에 대한 여러 설도 흥미로웠다. 또한 과학자들의 취업난이 어떻게 금융산업의 발전과 연결되는지 그 과정이 드러난 부분도 눈길을 끈 대목이었다. 가장 매력적이었던 내용은 마지막 장에 ‘고전 비극의 원천’으로 소개된 아트레우스 가문에 대한 이야기였다.
3권 또한 일상의 시간과 세상 밖에 대한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담겨 있고, 한 가지 이야기에 두 가지 이상의 사유를 할 수 있도록 독자에게 풍부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 시리즈는 문학, 역사, 철학, 신화, 음악, 영화, 미술, 경제, 과학, 무기, 심리치유 등 다양한 분야가 포함되어 있기에 사고의 영역을 넓히는 데 충분히 도움이 될 책이다. 다양한 필진이 준비한 이 강의의 성찬들을 내가 어느 문화센터, 어느 도서관에서 맛볼 수 있을까
1장 ‘문학과 문장’부터 나는 흠뻑 빠져들어 읽었다. 1강에서 카프카의 <변신>, 소세키의 <마음>처럼 내가 이미 읽은 책들에 대해선 강의를 듣고 더 깊고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박완서의 <나목>,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헤세의 <데미안>처럼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은 읽기의 길잡이와 독서를 추동하는 역할을 해주었다.
또한, 2강의 프랑켄슈타인, 하이드, 드라큘라 등 문학 속 ‘괴물’에 대한 의미, 우리 안에 내재된 괴물성을 들여다볼 때의 놀라움과 깨달음은 혼자 독서할 땐 미처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79쪽. 괴물은 우리의 무의식을 부정적 거울로 판타지의 세계에 투사해 얻은 이미지다. 우리 안의 야수성이나 광기 같은 비이성적 속성을 프랑켄슈타인(기계 인간), 하이드(악인), 드라큘라(유혹자) 같은 존재에게 투사해 외재화하고 그것을 죽이거나 제거해버리면 우리는 더 이상 비이성적 차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셈이 된다. 이질적 존재를 악마화해서 희생함으로써 온전한 자기동일성을 가진 이성적 주체로 거듭나고, 내면의 불화에서도 벗어나는 셈이다.
3강의 저자는 올해 작고하신 분이었다. 마지막까지 ‘말과 글이 삶을 바꾼다’는 신념을 많은 이들에게 전파하고,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준 저자의 노고를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끼면서 글을 읽어 내려갔다.
이외에도 3장 ‘클래식과 의식’을 읽고서는 클래식과 문학의 만남이 빚어내는 향연에 ‘클알못’인 나조차 유튜브에서 음악을 검색하고, 괴테와 셰익스피어, 위고 등 대가들의 작품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마지막 장의 마지막 강의에서 저자는 2016년 11월 12일 촛불혁명을 이야기한다. 100만명이 모인 그 광장에서 나와 남편도 촛불을 들고 ‘하야가’를 부르며 볼이 벌게져 있었다. 저자는 말했다. 촛불의 거시적 배경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그늘에 드리워진 사회적 부조리와 불평등’이라고. 촛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고 말이다. 한 사람이 한 개씩 가지고 있는 촛불을 든 손이, 그 불빛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모습에 눈 감지 않게 해주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지 않겠냐고 묻는 듯하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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