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역사에서 기록의 역사까지 넘나들며
44명의 조선 왕비를 만나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조선 왕비에 대해 잘 알지 못할까? 사실 조선의 역대 왕비에 관한 기록 자체가 많지 않다. 게다가 우리는 왕비의 이름도 알 수 없다.『조선왕조실록』이나 왕비의 부모와 시조의 세계世系를 수록한 『열성황후왕비세보列聖皇后王妃世譜』에는 왕비의 이름조차 싣지 않았다. 그저 어느 성씨의 누구누구의 딸이라는 식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이렇듯 정사正史에까지 왕비에 주목하지 않은 이유는 조선 사회가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한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 책에는 순탄하게 왕비의 자리에 오른 인물들은 물론 왕비의 자리에 올랐다가 쫓겨난 왕비들, 그리고 세자빈의 자리에 올랐지만 본인이 요절했거나 배우자인 세자가 요절하여 끝내 왕비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후에 왕비에 추존된 소혜왕후와 신정왕후 등 모두 44명의 왕비들이 소개되어 있다. 조선 27대 왕을 기준으로 하여, 1장 ‘조선 500년 역사의 뿌리가 되다’에는 1대 태조(이성계)에서 7대 세조(이유)까지, 2장 ‘행복과 불행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에는 8대 예종(이황)에서 14대 선조(이연)까지, 3장 ‘역사의 물꼬를 바꾸다’에는 15대 광해군(이혼)에서 21대 영조(이금)까지, 마지막 4장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기 위해……’에는 22대 정조(이산)에서 27대 순종(이척)까지, 왕의 정비와 계비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왕비의 자리에 올랐다가 쫓겨난 왕비를 살펴보면, 숙부의 왕위 찬탈로 쫓겨난 단종(이홍위)의 정비 정순왕후 송씨, 왕의 얼굴에 상처를 입혔다고 쫓겨난 성종(이혈)의 계비 제헌왕후 윤씨, 패륜으로 지목된 남편과 함께 폐위된 연산군(이융)의 정비 거창군부인 신씨, 반정공신들에게 7일 만에 쫓겨난 중종(이역)의 정비 단경왕후 신씨, 남편과 함께 폐위된 광해군의 정비 문성군부인 류씨 그리고 후궁에서 왕비로 올랐으나 끝내 사약을 받아 죽은 희빈 장씨 등 6명이다. 이 가운데 정순왕후 송씨는 200여 년 만에, 단경왕후 신씨는 233년 만에 복위되었다.
세자빈에 올랐으나 요절하여 이후 왕비에 추존된 인물로는 예종의 정비 장순왕후 한씨, 경종(이윤)의 정비 단의왕후 심씨, 조선의 마지막 세자빈이자 최초의 황태자비 순종의 정비 순명효황후 등 3명이다. 이와 약간 상황이 다른 조선을 개국한 태조의 정비 신의왕후 한씨가 있다. 요절한 세자와 함께 추존되어 왕비에 오른 인물로는 세조(이유)의 맏아들 의경세자(이장, 덕종)의 비 소혜왕후 한씨(인수대비), 순조(이공)의 맏아들 효명세자(이영, 익종)의 비 신정왕후 조씨(조대비) 등 2명이다.
이렇게 12명을 제외한 32명의 왕비 가운데 세자빈 재위를 포함하여 가장 재위기간이 긴 왕비는 정조의 정비 효의왕후로 10세에 왕세손비로 간택되어 38년 동안 왕비 자리를 지켰다. 두 번째로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로, 13세에 연잉군과 혼인하여 뒤늦은 30세에 왕세제비로 책봉되어 36년 동안 왕실을 지켰지만 실제로 영조와는 53년이란 세월을 함께 해로했다. 그 뒤를 이어 순조의 비 순원왕후는 32년으로, 영조와 정조·순조 3대에 걸쳐 정비들이 30년을 넘게 왕비 자리를 지켰다.
세자빈이나 왕비에 올랐지만 10대에 요절한 왕후가 있다. 예종의 정비 장순왕후 한씨는 세자빈 시절인 17세, 그리고 성종의 정비 공혜왕후 한씨는 왕비에 오른 지 5년 만인 19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이 두 왕비는 자매 사이로 한명회의 딸들이기도 했다. 또 8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한 헌종의 비로, 헌종보다 한 살 어린 10세에 왕비로 책봉되었고 4년 뒤에 비로소 가례를 올린 효현왕후는 왕비에 오른 지 6년 만인 16세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가장 재위기간이 짧은 왕비는 7일 만에 궁궐에서 쫓겨난 중종의 정비 단경왕후 신씨이다. 폐위된 연산군의 정비는 친정으로 따지면 단경왕후의 고모였고, 중종은 연산군의 이복동생으로 왕실 족보로는 손위 동서였다. 하지만 이들은 거의 같은 시기에 왕실에서 쫓겨나는 비운의 왕비들이었다. 단경왕후는 이후로 71세까지, 거창군부인은 62세까지 모진 목숨을 이어갔다.
행장류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조선 왕비의 평균 수명은 51세로, 왕의 평균 수명인 45세보다 6년을 더 살았다. 그렇다면 왕비들 가운데 천수를 누린 왕비는 누구일까? 순조의 맏아들 효명세자(익종으로 추존)의 비 신정왕후가 83세, 숙부에게 왕위와 목숨을 빼앗긴 남편(단종)과 사별한 정순왕후가 82세, 이 책에서는 정식으로 다루진 않았지만 정조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이선)의 비인 혜경궁 홍씨가 81세로,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한 이들이었다.
특별하고도 색다른 만남,
조선 역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
조선 초기에는 왕권 강화와 왕실 보전이라는 미명하에 왕비의 친정이 희생양이 되는가 하면, 외척의 세력 분산을 위해 후궁들을 들이기도 했다. 이때 가장 큰 피해자는 태종(이방원)의 정비 원경왕후 민씨로 친정 4형제를 모두 잃었다. 또한 세종(이도)이 즉위하자마자 소헌왕후 심씨의 친정아버지가 역모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고변으로 자결을 명받아 세상을 떠나야 했다. 이 모두 태종의 왕권 확립을 위한 조치였다.
존재감도 없이 일찍 세상을 떠난 왕비들이 있는가 하면, 왕이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어린 왕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하면서 존재감이 더욱 도드라졌던 왕비도 있다. 조선에서는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대비 자리에 올라 수렴청정을 처음 시행했다. 새로운 왕이 즉위하면 전前 왕은 과거가 되고, 새로 즉위한 왕이 현재이자 미래가 되어 단절된 느낌이 들지만, 이처럼 왕비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좀 더 연속된 역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살아 있는 왕비는 왕실의 웃어른으로 군림하면서 죽을 때까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조선의 왕 27명 가운데 적장자가 왕위를 이은 경우는 문종·단종·연산군·인종·현종·숙종·순종 등 7명에 지나지 않지만, 명종 대까지는 모두 정비에게서 태어나 왕실의 적통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명종(이환)의 비 인순왕후가 낳은 순회세자는 13세에 요절했고, 이후 후사를 잇지 못해 적장자 우선의 원칙이 깨지면서 왕위가 방계로 이어지는 시초가 되기도 했다. 또한 현대 사극의 단골로 등장하는 숙종(이순)의 계비 인현왕후와 희빈 장씨를 둘러싼 네 차례의 환국으로 숙종은, 후궁은 절대 정비가 될 수 없게 명문화했다.
44명의 왕비들을 살펴보면 왕의 존재감이 높을수록 왕비의 존재감도 높다는 점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점은 사후의 왕릉 조성에서도 나타난다. 이 책에는 세상을 떠난 왕비의 능 조성 과정과 능의 위치를 알 수 있게 그림으로 능을 표현해 놓았고, 능에 얽힌 이야기도 곁들였다.
능에 얽힌 이야기에서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는 태종의 앙갚음으로 능이 사대문 밖으로 천장되고, 종묘에 신주도 없이 260여 년을 떠돌기도 했다. 또 단종을 낳고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나 안산에 묻힌 문종의 비 현덕왕후는 친정이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되자 사후에 폐출되어 종묘에서 신주가 철거되고 능이 파헤쳐져 허름한 바닷가로 이장된다. 이후 55년 만에 복위되어 남편 문종 맞은편에 안장되고 종묘에 신주가 모셔지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관점에서 서술한 왕비 이야기는 읽는 재미와 함께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도록 이끌어준다. 왕비 단락 말미에 능을 안내하는 그림을 보면, 한 번쯤 그곳에 들러 고인과 대화를 나누고픈 충동에 사로잡힐지도 모른다.
첫 장을 펼치면 17세기의 「한양도」와 함께, 각 표제지 뒷장에 왕과 왕비의 관계도를 곁들여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으며, 책의 말미에는 이 책에 등장하는 역대 왕비들의 간략한 정보를 표로 정리했다. 이 책, 역사의 한 축을 이룬 주체로서 구중궁궐 담장을 넘어 우리에게 다가온 44명 왕비들과의 만남은 특별하고도 색다른 기회이자, 조선 역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