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적 역사 중세의 가을

요한 하위징아/이종인

연암서가/2014.4.25.

sanbaram

중세라고 하면 로마 가톨릭 교회가 지배해 온 암흑시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중세는 유럽문화의 여러 제도들이 형성된 시대였다. 대학이 설립되고 도시와 근대 의회 정부가 탄생했다. 근대 예술적 형식이 확립되었고, 상업, 공업, 농업이 현재의 틀을 잡은 시대이다.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은 중세 후기(14세기와 15세기)의 프랑스와 브르고뉴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일곱 살 무렵 흐로닝언에 들어온 카니발 행렬을 보고 매료되어 평생을 의례, 축제, 놀이 연구에 주력하였다. <호모 루텐스>에 나타나듯 문학과 예술에 대한 탁월한 안목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연구 중심을 역사학에서 서구 중세에 두게 되었다. 저서로는 <하를렘의 기원들>, <중세의 가을>, <호모 루벤스>등 다수가 있다.

전반부는 꿈과 현실의 대비를 스케치하면서 중세 후기의 생활을 서술한다. 전반부는 다시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미덕의 생활, 용기와 충성심, 명예와 사랑을 중시하는 세속적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과 성스러움, 신비주의와 종교적 감정에 관련된 정신적 차원이다.

후반부는 양극단의 대비를 바탕으로 하여 인생과 예술, 말과 그림, 형식과 내용의 대비를 다룬다. 특히 반에이크의 예술을 다루면서 반에이크 형제는 중세의 소산이고 그들의 예술 세계는 곧 중세 후기의 세계라고 진단한다.

중세에는 설교자들의 위력이 대단했음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성자의 모습을 갖춘, 도미니크 수도회의 뱅상 페리에가 설교하러 찾아간 모든 도시들에서, 민중, 행정관, 성직자-주교와 고위직 성직자를 포함하여-들은 그를 찬송하는 노래를 부르며 그를 맞으러 나갔다. 그는 다수의 지지자들을 대동하고 여행을 했는데, 지지자들은 일몰 후 저녁마다 채찍질과 노래 속에서 행렬을 이루어 걸어 나갔다. (p.43)” 마을과 도시 전체가 일종의 축제와 같은 열렬한 지지를 보낸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시대에는 특별히 즐길만한 오락거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주민들 위에 군림하던 귀족들이나 고위 행정관들이 처형당하는 것을 보는 것을 즐겼다. 그래서 당국은 그 처형을 연기해서 주민들이 즐길 수 있게 하였다. “사람들은 반역죄로 체포된 고위 행정관들의 고문 받는 광경을 구경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희생자들은 어서 처형해달라고 간원했지만, 당국은 처형을 가능한 한 연기했다. 구경꾼들이 그 희생자가 추가 고문을 당하는 광경을 구경하는 걸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이다. (p.67)” 한편으로는 주민을 엄하게 다스리는 것의 본보기로 삼으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사회질서를 지키고 나아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기사제도가 생겼다. 기사 수여식은 일종의 성인식과 같은 축제로 주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사작위 수여식은 어린 전사에게 무기를 수여하는 일종의 성인식으로서, 윤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아주 정교하게 고안된 것뿐이다. 연출된 싸움 그 자체는 원시에 기원을 둔 것으로, 한때에는 신성한 의미가 가득했다. 기사단은 원시부족의 의례집단과 분리될 수 없는 조직이다. (p.171)”

중세의 귀족이나 성직자들은 죽으면 교회에 안장되었지만 일반인들은 공동묘지를 조성하여 그곳에 안장했다가 육탈이 완성되면 그 뼈를 납골당으로 옮겼다. 중세의 공동묘지는 지금의 공원과 같은 역할도 겸했음을 다음의 기술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15세기 사람들에게 이노상 공동묘지는,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 우울한 팔레 루아얄이 차지했던 것과 비슷한 위치를 차지했다. 지속적인 매장과 파묘가 진행되는 중에서도 산책로와 만남의 장소가 마련되었다. 납골당 근처에 자그마한 가게들이 들어섰고 아케이드 아래에는 몸을 파는 여자들이 있었다. 때때로 탁발수도자가 그 자체로 중세풍의 설교인 공동묘지에서 설교를 했다. 어린아이들의 행렬이 여러 번 거기에 모였다. (p.286)”

사회 질서 유지라는 명목과 국민을 다스리는 방법의 하나로 중세에서 행하던 마녀사냥이 있다. 여러 사람을 유혹하고 잘못된 사상을 전파한다는 구실로 일종의 공포 정치를 한 것이다. “빈데스 하임 사람들의 고요한 경건주의와, 중세 끝자락의 가장 어두운 만행(마녀사냥)이 서로 연결되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마녀 사냥은 그 무렵 열성적인 신학자와 엄혹한 사법 체계의 합작으로 단단한 사법 제도로 정립되었다. 알라누스 드 루페는 그 둘(경건주의와 마녀사냥)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였다. (p.381)”

하위징아는 이 책에서 중세의 모습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 역사학에서 다루지 않는 주민들의 축제와 예술 활동, 그리고 일상의 관습까지 다양하게 중세를 기술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 중세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서양의 중세 역사를 입체적으로 알고 싶은 사람들이 읽으면 많은 도움을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