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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9년 07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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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32쪽 | 358g | 135*200*20mm |
ISBN13 | 9791196509446 |
ISBN10 | 11965094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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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있으니 아들이 물었다. " 엄마가 가슴에 품고 사는 시는 뭐에요? " 기억에 남는 시는 있지만, 일상 속으로 들어와 마음을 들썩이게 하는 시를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어서 찾아보려고 읽는 중이라고 답했다. 저자의 마음을 알아주었던 시, 그래서 가슴에 품고 있는 시 101편은 어떤 시들일까? 그 중에서 내 맘에도 들어오는 시가 있을까? 그런 시 한 편만 만날 수 있어도 뿌듯할 것 같았다.
저자가 말했듯 누구에게나 힘든 순간이 있다. 그런 시기를 견뎌나가는데 힘이 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참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녀에게는 그런 순간마다 가까이 있었던 시가 큰 역할을 했었다고 하는데, 전부를 이해하지는 못해도, 읽는 순간 나에게 전해져 오는 느낌만으로도 충분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시가 아닐까싶다.
시는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어설픈 욕망들을 이해해 주었고, 괜찮은 척 했지만 괜찮지 않았던 나의 모멸감을 달래 주었다. 그리고 뜻대로 풀리지 않은 일에 화가 날때 나를 다독여 주었고, 인정받기 위해 기를 쓰는 나에게 너무 애쓰지 말라 위로해 주었다. 거기서 내가 얻은 에너지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받아들임' 이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그럼으로써 앞으로 만들어가고 싶은 나를 조금씩, 천천히 채워 갈 수 있었다. - p 9
101편의 시를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올랐던 단어가 공감이었다. 위의 글에서도 내 마음을 들킨 것같은 생각이 들정도였는데, 그만큼 내 마음을 건드리는 시들도 많았다. 시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 상태일때 읽느냐에 따라서 울림의 강도는 너무나도 다른듯한데, 지금의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 내가 가야할 방향을 가르쳐주는 듯한 시들은 조용히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저자는 101편의 시에 대해서는 어떤 코멘트도 달지 않았다. 독자로 하여금 오롯이 날것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조용한 일
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내 옆에 가만히 놓여있는 낙엽 하나가 고마울 정도라면 너무나도 외로운 것 아닐까? 누군가에게 뭔가 얘기하고 싶지만, 이리 저리 재다보니 말할 수는 없고, 한껏 외로움이 밀려올때 내 옆에 있는 한 장의 낙엽이라도 큰 위로가 되는 순간. 그런 순간 나도 있었을 것이다. 한없이 고마운 마음이 드는 순간 눈물 한 방울 구를지도 모르겠다. 낙엽 구르는 것만 봐도 웃음이 나온다는 여고시절을 지나, 옆에 떨어진 낙엽 하나에 위로 받고,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이 이해되는 나이가 되었다.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마음 속의 풀리지 않는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져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구하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얻을 수는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 보는 것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 테니
당장 답을 구하고 싶지만, 시간이 해결해주는 문제도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모든 것을 살아보라고,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고 말했다. 그럼 해답을 찾을 수 있을거라고. 힘들고 지치면 내팽개쳐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조바심도 내지말고,포기도 하지말고, 끝까지 살아내보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 내 마음 속의 조급함이 생길때 부적처럼 꺼내보고 싶은 시였다.
반성 16
김영승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 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대학시절 남자친구랑 술 한 잔 하는 중에 수첩을 꺼내서 글을 썼다. " 나 술 안 취했다" 라고 썼다. 너무 오래전 기억이라 글을 쓴 기억은 나지만 다음 날 확인을 했는지 어땠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분명 다시 읽으면서 비뚤어진 글씨를 보면서 웃었을지도 모르는데 ······술에 취해 쓴 글씨는 술에 취해야지만 알아볼 수 있는 걸까 궁금해졌지만, 확인을 해보자니 다음 날이 걱정되어서 쉽게 시도는 못하겠다. 오래 전 추억 한자락을 꺼내어 슬며시 웃게 만드는 시였다.
벚꽃 그늘에 앉아 보렴
이기철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 놓아 보렴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 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 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 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 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 놓고
구름처럼 하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 보렴
그러면 늘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 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벚꽃 그늘 아래 한 며칠
두근거리는 생애를 벗어 놓아 보렴
그리움도 서러움도 벗어 놓고
사랑도 미움도 벗어 놓고
바람처럼 잘 씻긴 알몸으로 앉아 보렴
더 길어야 닿는 집도
더 부서져야 완성되는 하루도
동전처럼 초조한 생각도
늘 가볍기만 한 적금통장도 벗어놓고
벚꽃 그늘처럼 청정하게 앉아보렴
그러면 용서할 것도 용서 받을 것도 없는
우리 삶
벌떼 잉잉거리는 벚꽃처럼
넉넉하고 싱싱해짐을 알 것이다
그대, 흐린 삶이 노래처럼 즐거워지길
원하거든
이미 벚꽃 스친 바람이 노래가 된
벚꽃 그늘로 오렴
하루 하루 내가 해야할 일들이 쌓여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 그리고,머릿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고민들. 가끔은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생각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고싶을 때가 있다. 내 삶이니 맘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그 틀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이것도 따져보고 저것도 따지다보면 선택지는 줄어있기 마련이었다. 그래서일까? 시를 읽는 동안 마음이 가벼워졌다. 시가 주는 위로가 이런거였구나.
총 8개의 챕터로 나눠서 시를 소개하고 있는데, 매 챕터를 시작할때 저자의 글을 만날 수 있었다. 무심히 지나쳤더 이웃의 아픈 사람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던 것은 아들이 아프고 나서였다 했다. 어떤 조각들이 특정한 시기와 사건과 만나면서 다시 살아나는 경험을 통해, 한 인간으로 겸손해지고 그럼으로써 성숙해진다고 하는 그 말이 기억에 남았다. 저자의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말이 가진 힘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는데, 누군가의 말에 조용히 귀 기울일 줄 아는 태도 또한 소중한 삶의 지혜라는 말도 기억해두고 싶었다. 글을 읽다 보니 저자는 겸손한 사람이며, 글과 말을 사랑하고, 정말 시를 아끼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의 경험을 나눠 갖고, 좋은 시들을 듬뿍 만날 수 있어서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장마가 끝나고나니 공기가 달라지고 수은주가 드디어 30도 위로 올라갔다. 대야에 얼음 띄우고 발 담궈야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시에 대한 마음을 연 김에, 시인을 대접하고 시를 읽는 마음을 귀하게 여기는 세상을 꿈꾼다는 저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마음으로 선물 받았던 시집을 한 권 읽어봐야겠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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