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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주제별로 엮은 세계 문호들의 중/단편 앤솔러지

이반 투르게네프, 기 드 모파상, 프란츠 카프카, 어네스트 밀러 헤밍웨이, 캐서린 맨스필드 저 외 2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에디터 | 2013년 07월 16일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 판매지수 24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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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년 07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344쪽 | 415g | 148*210*30mm
ISBN13 9788967440145
ISBN10 896744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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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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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7명)

저 : 이반 투르게네프 (Ivan Sergeevich Turgenev,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1818년 러시아 중앙에 있는 아룔 현에서 부유한 귀족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포악하고 전제적이었던 어머니 밑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부친은 시골의 돈후안이 되어 많은 귀족 부인의 마음을 사로잡거나 하인 처녀와 불륜관계를 맺기도 했는데, 그의 작품 「첫사랑」(1860)에 이런 복잡한 가정사가 엿보이기도 한다. 1827년에 가족 전체가 모스크...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1818년 러시아 중앙에 있는 아룔 현에서 부유한 귀족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포악하고 전제적이었던 어머니 밑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부친은 시골의 돈후안이 되어 많은 귀족 부인의 마음을 사로잡거나 하인 처녀와 불륜관계를 맺기도 했는데, 그의 작품 「첫사랑」(1860)에 이런 복잡한 가정사가 엿보이기도 한다. 1827년에 가족 전체가 모스크바로 이주한 후 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열여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열아홉 살 때 첫 번째 시집을 출간했으며, 참된 지식의 원천을 찾아 유럽에서 공부하고자 베를린 대학으로 떠났지만, 2년 후 다시 러시아로 돌아와서 모스크바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1833년 모스크바대학 문학부에 입학하고, 다음 해 페테르부르크대학 철학부 언어학과로 옮겼다. 1836년 대학을 졸업한 후 1838년부터 1841년까지 독일 베를린대학에서 철학·고대어·역사를 배우고, 베를린에서 바쿠닌 등 진보적인 러시아 지식인들과 친교를 맺게 되어 그들의 영향을 받는다.

1841년 러시아로 돌아와 서사시 「파라샤」(1843)를 발표하여 비평가 벨린스키에게 극찬을 받으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에 들어섰고, 농노의 비참한 생활을 그린 연작 「사냥꾼의 수기」(1851)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843년 스페인 출신 가수였던 폴리나 가르시아 비아르도와 사랑에 빠졌는데, 그녀와의 관계는 그의 일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투르게네프는 비아르도의 유럽 순회공연을 쫓아다녔고, 꽤 오랫동안 파리에서 지내면서 그녀는 물론 그녀의 남편과 ‘가족의 친구’로 함께 지냈다.

1847년 [동시대인]지 제1호에 농노의 비참한 생활을 그린 연작 「사냥꾼의 수기」 중 제1작이 발표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1861년 파리로 떠난 이후 생애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내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였다. 1856년 이후에는 대부분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유럽에서 큰 명성을 얻은 첫 번째 러시아 작가가 되었다. 파리의 문학 서클에서 그는 유명인사였고, 플로베르와 공쿠르 형제는 그의 친구였으며, 옥스퍼드 대학은 그에게 명예학위를 수여했다.

조르주 상드, 플로베르, 공쿠르 형제 등 많은 문인을 만나 가깝게 지냈으며, 특히나 돈독한 사이였던 플로베르를 통해 에밀 졸라, 알퐁스 도데, 모파상 등 대표적인 자연주의 작가들도 소개받을 수 있었다. 모파상은 투르게네프를 가리켜 ‘플로베르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고 평하기도 했다. 투르게네프는 러시아에서 가장 서구적 색채가 짙은 작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1840~1870년대의 사회 문제를 주제로 삼고 있다. 특히 서정미 넘치는 섬세한 문체, 아름다운 자연 묘사, 정확한 작품 구성, 줄거리와 인물 배치상의 균형, 높은 양식과 교양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집필한 여섯 권의 소설, 『루딘』(1856), 『귀족의 보금자리』(1859), 『전야』(1960), 『아버지와 아들』(1862), 『연기』(1867), 『처녀지』(1877)는 1830년대부터 1870년대 사이의 러시아인들의 삶을 투영하고 있다. 문학 에세이 및 회고록 이외에도 『시골에서의 한 달』과 같은 희곡, 단편소설, 중편소설 등을 썼다. 그중에서도 중편소설 『사냥꾼의 수기』와 절정기에 쓴 『첫사랑』(1860)은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 1883년 파리 교외 비아르도 부인의 별장에서 척추암으로 사망한 그는 유언에 따라 페테르부르크의 보르코보 묘지에 안장되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자연주의 작가. 1850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미로메닐 출생으로, 12세 때 어머니와 에트르타로 이사하여 자유분방한 유년기를 보냈다. 학창 시절에는 플로베르에게 문학 수업을 받았다. 1869년부터 파리에서 법률 공부를 시작했으나 1870년에 보불전쟁이 일어나자 군에 자원입대했다. 전쟁이 끝난 후 1872년에 해군성 및 문부성에서 근무하며 플로베르에게서 문학 지도를 받았고, 1874년 플로베르의 소... 프랑스의 대표적인 자연주의 작가. 1850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미로메닐 출생으로, 12세 때 어머니와 에트르타로 이사하여 자유분방한 유년기를 보냈다. 학창 시절에는 플로베르에게 문학 수업을 받았다. 1869년부터 파리에서 법률 공부를 시작했으나 1870년에 보불전쟁이 일어나자 군에 자원입대했다. 전쟁이 끝난 후 1872년에 해군성 및 문부성에서 근무하며 플로베르에게서 문학 지도를 받았고, 1874년 플로베르의 소개로 에밀 졸라, 이반 투르게네프와 같은 리얼리즘 작가들과 친교를 나눴다. 그의 작품은 일반적으로 표면적,물질적이어서 깊은 작품으로 무감동한 문체를 통해서 일관한 감수성과 고독감은 인생의 허무와 싸우는 그의 불안한 영혼을 나타내고 있다.

1880년 졸라가 간행한 단편집 『메당 야화(夜話)』에 「비곗덩어리」를 실어 인간성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과 뛰어난 짜임새로 주목을 받았다. 1883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여자의 일생』은 선량한 한 여자가 걸어가는 환멸의 일생을 염세주의적 필치로 그려낸 작품으로,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과 함께 프랑스 리얼리즘 문학이 낳은 걸작으로 평가된다. 그 후 『텔리에 집』을 시작으로 『피피 양』, 『멧도요새 이야기』, 『낮과 밤 이야기』, 『목걸이』, 『오를라의 여행』등 많은 단편집을 출간했다.

모파상은 불과 10년간의 짧은 문단 생활에서 단편소설 약 300편, 기행문 3권, 시집 1권, 희곡 5편, 그리고 『벨아미』, 『피에르와 장』 등의 장편소설을 썼다. 그는 현대 단편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며 서머싯 몸, 오 헨리와 같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모파상은 작품으로 명성을 얻으면서도 신경질환 및 갖가지 질병에 시달렸고, 1891년에는 전신 마비 증세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1892년 1월 니스에서 자살을 기도한 그는 파리 교외의 정신 병원에 수용되었고, 이듬해 7월 43세의 나이로 일생을 마쳤다.
188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헤미아(현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나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 사회에서 성장했다. 1901년 프라하 대학에 입학해 독문학과 법학을 공부했으며, 1906년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어릴 때부터 작가를 꿈꿔 1904년 「어느 투쟁의 기록」, 1906년 「시골의 결혼 준비」를 집필했고, 1908년 노동자상해보험공사에 취직한 이후로도 14년 동안 직장생활과 글쓰기 작업을 병행했다. 「선... 188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헤미아(현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나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 사회에서 성장했다. 1901년 프라하 대학에 입학해 독문학과 법학을 공부했으며, 1906년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어릴 때부터 작가를 꿈꿔 1904년 「어느 투쟁의 기록」, 1906년 「시골의 결혼 준비」를 집필했고, 1908년 노동자상해보험공사에 취직한 이후로도 14년 동안 직장생활과 글쓰기 작업을 병행했다. 「선고」 「변신」 「유형지에서」 등의 단편과 『실종자』 『소송』 『성』 등의 미완성 장편, 작품집 『관찰』 『시골 의사』 『단식 광대』 등 많은 작품을 썼고 일기와 편지 등도 방대한 양을 남겼다. 인간 운명의 부조리성과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에 대한 통찰을 그려내, 사르트르와 카뮈에 의해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았다. 1917년 폐결핵 진단을 받아 여러 요양원을 전전한 끝에 병이 악화되어 1924년 빈 근교의 한 요양원에서 사망했다.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현재의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 사이를 두었고, 여섯 남매 중 장남이었다. 평생을 낚시와 사냥, 투우 등에 집착했으며, 다방면에 걸쳐 맹렬한 행동을 추구하고, 행동의 세계를 통해 자아의 확대를 성취하려 했다. 그러한 인생관은 그의 작품 전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고등학생 때 학교 주간지 편집을 맡아 직접 기사와 단편을 썼으며, ...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현재의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 사이를 두었고, 여섯 남매 중 장남이었다. 평생을 낚시와 사냥, 투우 등에 집착했으며, 다방면에 걸쳐 맹렬한 행동을 추구하고, 행동의 세계를 통해 자아의 확대를 성취하려 했다. 그러한 인생관은 그의 작품 전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고등학생 때 학교 주간지 편집을 맡아 직접 기사와 단편을 썼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917년 [캔자스시티 스타]의 수습기자로 일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복무하기도 했으며,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고 귀국했다. 휴전 후 캐나다 [토론토 스타]의 특파원이 되어 유럽 각지를 돌며 그리스-터키 전쟁을 보도하기도 했다. 1921년, 해외 특파원으로 건너간 파리에서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등 유명 작가들과 교유하는 등 근대주의적 작가들과 미술가들과 어울리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23년 『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詩)』를 시작으로 『우리들의 시대에』, 『봄의 분류(奔流)』,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했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소설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그후 1920년대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피츠제럴드’와 ‘포그너’와 함께 3대 작가로 성장하였다.

그의 첫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를 1926년에 발표했는데, 헤밍웨이의 대다수 작품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중반 사이에 발표되었다. 전쟁 중 나누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전쟁문학의 걸작 『무기여 잘 있거라』(1929)는 그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는 데 공헌했으며, 1936년 『킬리만자로의 눈』,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1940)는 출판되자마자 수십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다. 이후 10년 만에 소설 한 편을 발표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52년 인간의 희망과 불굴의 정신을 풀어낸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여 큰 찬사를 받았으며,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통해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인간은 파괴될 수 있지만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그러나 이 해에 두 번의 비행기 사고를 당하는데, 말년에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고, 집필 활동도 막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행동의 규범에 철저한 만큼이나 죽음과 대결하는 삶의 성실성과 숭고함을 작품에 투영하려 노력해왔다. 1959년에는 아이다호 주로 거처를 옮겼고, 1961년 여름, 헤밍웨이는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1961년 케첨의 자택에서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대표작으로는 1929년 『무기여 잘 있거라』,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52년 『노인과 바다』 등이 있다. 그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후 10여 년 넘게 긴 침체기를 겪었지만, 인생의 절망과 희망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신념을 잃지 않으면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1888년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부유한 가문에서 출생하여 1923년 프랑스 퐁텐블로에서 사망했다. 1903년 처음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당대 최고의 여학교 퀸스칼리지에 등록해 그곳에서 음악과 문학, 데카당파, 열정적인 우정에 심취하였다. 런던을 사랑하고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여기기 시작한 시기였다. 맨스필드는 유학차 런던에 온 이후 결국 고국의 웰링턴 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1906년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가서 ... 1888년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부유한 가문에서 출생하여 1923년 프랑스 퐁텐블로에서 사망했다. 1903년 처음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당대 최고의 여학교 퀸스칼리지에 등록해 그곳에서 음악과 문학, 데카당파, 열정적인 우정에 심취하였다. 런던을 사랑하고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여기기 시작한 시기였다. 맨스필드는 유학차 런던에 온 이후 결국 고국의 웰링턴 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1906년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가서 음악가의 길을 선택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끝내 단념하고, 1908년 이후로는 아예 고국을 떠나 유럽에서만 거주했다. 전기학자 클레오 토말린은 유럽은 그녀에게 일시성의 습관을 불러일으켰다고 보았는데, 이방인의 시각으로 관찰하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느낌이 그녀의 제2의 본성이 되었다고 해석했다.

어린 시절의 원고를 제외하고 [뉴에이지]에 처음으로 글을 발표한 이래로 정기적으로 이 잡지에 기고했으며, 1911년 ‘캐서린 맨스필드’라는 필명으로 첫 단편집 『독일 하숙에서』를 출간했다. 1912년부터는 후에 자신의 남편이 된 존 미들턴 머리가 편집자로 있던 [리듬]지에 글을 게재하기 시작했다. 1916년 「전주곡」에서는 단편소설 작가로서의 독특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나 1917년 결핵에 걸린 이후 여러 휴양지를 전전하며 치료에 몰두하는 한편, 『전주곡』, 『축복』 등 주옥같은 단편집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한다.

1921년 두 번째 소설집 『행복』을 발표하고 그로부터 1년 후 1922년에는 세 번째 소설집이자 생애 마지막 책인 『가든파티』를 출간하며 평단의 극찬을 받고, ‘의식의 흐름’, ‘다중 시점’ 등 실험적인 서사 기법을 선보임으로써 ‘모더니즘 문학’에 한 획을 긋는다. 이 책은 맨스필드가 연상과 상호 언급이라는 방식을 빌려 책 안의 여러 이야기들을 공조하여 새로운 연관성을 만들어내 완성한 소설집으로, 에피소드적이고 모더니즘적이며 개방적이다. 1923년 프랑스에서 요양하던 중 객혈을 시작하고, 결국 34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다. “나는 비를 좋아해. 내 얼굴로 비를 느끼고 싶어.”라는 유언을 남겼다. 사후에 소설집 두 권과 『서간집』, 『일기』가 발간되었다.

맨스필드는 자의식이 강한 모더니즘 작가로서 창작 활동과 인생 모두에서 실험적인 면모를 드러냈으며, 런던에서 버지니아 울프, D. H. 로렌스 등 동시대 작가들과 교류하며 그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고, 문필가로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전 생애를 글쓰기에 투자한 작가로서 “내가 쓰는 모든 것은 나의 존재”라고 피력하였다. 버지니아 울프는 캐서린 맨스필드에 대해 “그녀는 내가 찬미하고 필요로 하는 특성을 갖추었다. 내가 추구하던 예리함과 현실성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라고 평했다. 삶과 창작 모두에서 실험적이고 독창적이었으며, 그녀가 존경했던 체호프의 작품과 비견되는 그녀의 소설은 단편이라는 장르의 발전과 모더니즘에 이바지했다는 평을 받는다.
저 : 루쉰 (魯迅,본명 : 저우수런(周樹人), 자 : 위차이(豫才))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02년 졸업 후 일본에 유학,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의학을 단념, 국민정신의 개조를 위하여 문예 활동에 힘썼다.

1905~1907년 혁명당원의 활동에 참가하고, ‘마라시력설’, ‘문화편지론’ 등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무렵 유럽의 피압박민족 및 슬라브계 작품에 공감하여 1909년 동생 저우쭤런(周作人)과 ‘역외소설집’을 공역하는 한편, 망명중인 장빙린(章炳麟)에게 사사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남경임시정부와 북경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면서 틈틈이 금석 탁본의 수집, 고서 연구 등에 심취하였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처음으로 ‘루쉰(魯迅)’이라는 필명을 사용, 중국현대문학사상 첫번째의 백화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신문학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5·4운동 전후 ‘신청년’ 잡지의 일에 참가하여 ‘5·4’ 신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1918년에서 1926년에 이르는 동안 창작을 계속하여 소설집 ‘눌함’, ‘방황’, 논문집 ‘분(墳)’, 산문시집 ‘야초’, 산문집 ‘조화석습’, 잡문집 ‘열풍’, ‘화개집(華蓋集)’, ‘화개집 속편’ 등을 출판하였다. 이 중에 ‘공을기(孔乙己)’, ‘고향’, ‘축복’ 등을 발표하여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하였는데, 1921년 12월에 발표된 중편소설 ‘아Q정전(阿Q正傳)’은 중국현대문학사상 불후의 대표작으로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다. 많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1920년 이후에는 베이징대학,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4년 저우쭤런과 어사사를 조직하고, 1925년 청년문학사와 미명사(未名社)를 조직하였으나, 1926년 8월 베이양 군벌의 문화 탄압과 격돌한 베이징 학생애국운동 지지로 말미암아 베이징을 탈출, 아모이대학 중문과 주임으로 부임하고, 1927년 1월 당시의 혁명 중심 광저우(廣州)에 이르러 중산대학의 교무주임이 되었다. 1927년 가을 상하이의 조계에 숨어 쉬광핑(許廣平)과 동거하며 문필생활에 몰두하는 한편, 창조사, 태양사 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 등 우익적 그룹에 대한 논전을 통하여 매우 전투적인 사회 단평(短評)의 문체를 확립하였다.

한편 소비에트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1930년 전후하여 중국자유운동대동맹, 중국좌익작가연맹과 중국민권보장동맹에 참가하여 국민당 정부의 독재 통치와 정치 박해에 항거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역사소설집 ‘고사신편’을 출판하였고, 대부분의 작품과 잡문은 ‘이이집’, ‘삼한집’, ‘이심집’, ‘남강북조집’, ‘위자유서’, ‘준풍월담’, ‘화변문학’, ‘차개정잡문’, ‘차개정잡문 이편’, ‘차개정잡문 말편’, ‘집외집’과 ‘집외집습유’ 등에 수록되었다.

또 1931년부터 판화 운동도 지도하여 중국 신판화의 기틀을 다졌다. 루쉰의 일생은 중국 문화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이룩하였다. ‘미명사(未名社)’, ‘조화사(朝花社)’ 등 문학 단체를 영도하고 지지하였으며, ‘국민신보부간’, ‘망원(莽原)’, ‘어사(語絲)’, ‘분류(奔流)’, ‘맹아(萌芽)’, ‘역문(譯文)’ 등 문예잡지를 주편하였고, 청년 작가를 열성적으로 적극 배양하였다. 외국의 진보된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데 힘쓰고, 국내외의 저명한 회화, 목각을 소개하였으며, 대량의 고전문학을 수집, 연구, 정리하고, ‘중국소설사략’, ‘한문학사강요’를 저술하였으며, ‘혜강집’을 정리하고 ‘회계군고서잡록’,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 ‘당송전기록’, ‘소설구문초’ 등등을 집록하였다. 죽기 직전에는 항일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저우양(周揚) 등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에는 대체로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1936년 10월 19일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나고 민중 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공제(公祭)를 거행하여 훙자오만국공묘에 묻혔다. 1956년 루쉰의 유해는 훙커우공원에 이장되었다. 1938년 ‘루쉰전집’ 20권이 출판되었다. 그를 혁명의 모범이자 사상의 근원으로 여긴 마오쩌둥에 의해 20세기 내내 중국을 지배한 개혁과 혁명적 변화의 선동가로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까지 추앙받았다.

인민정부 성립 후, 루쉰의 저서는 분야별로 나뉘어 ‘루쉰전집’ 10권, ‘루쉰역문집’ 10권, ‘루쉰일기’ 2권, ‘루쉰서신집’이 간행되었고, 루쉰이 편교(編校)한 고적(古籍) 여러 종류도 다시 간행되었다. 1981에는 ‘루쉰전집’ 16권이 출판되었다. 베이징, 상하이, 사오싱, 아모이 등지에는 전후하여 루쉰 박물관, 기념관 등이 건립되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일보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1987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 무라타 기요코의 『남비 속』을 우리말로 옮기며 번역을 시작했다. 2019년 서점대상 수상작인 세오 마이코의 『그리고 바통은 넘겨졌다』를 비롯해 미야베 미유키, 기리노 나쓰오, 히가시노 게이고, 하라 료 등 주로 일본 소설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밖에도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과 존 딕슨카가 쓴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일보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1987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 무라타 기요코의 『남비 속』을 우리말로 옮기며 번역을 시작했다. 2019년 서점대상 수상작인 세오 마이코의 『그리고 바통은 넘겨졌다』를 비롯해 미야베 미유키, 기리노 나쓰오, 히가시노 게이고, 하라 료 등 주로 일본 소설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밖에도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과 존 딕슨카가 쓴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 등 영미권 작품과, 하라 료의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 마치다 고의 『살인의 고백』 등을 번역했다. 논픽션으로는 『킬러 스트레스』 『다시 일어나 걷는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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