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차 세계대전은 20세기 일어난 미증유의 양차대전이라는 측면에서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사건들이다. 덕분에 국내에 출판된 1,2차 세계대전 관련 저술들은 다른 전쟁사들보다 풍부한 편이다(영문 서적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2차 세계대전 관련 도서가 주류를 이룬다. 물론 파시즘, 나치즘, 홀로코스트, 히틀러, 무솔리니 등 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정치이념과 사건, 인물들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뿐만 아니라 1차 세계대전보다 전역이 보다 광범위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1차 대전의 전개과정과 전후 처리 과정이 2차 대전이 발생한 원인임을 생각한다면 국내의 1차 세계대전 관련 도서의 부족은 매우 안타깝다. 그런 측면에서 1차 세계대전 후반기의 전황, 종전 과정과 전후 처리 과정에서의 영국, 프랑스, 독일뿐만 아니라 러시아, 미국 등 주요국들의 정책들과 외교 관계를 충실히 다루고 있는 애덤 투즈의 이번 책 <<대격변>>은 의미가 남다르다.

   ‘대격변’으로 번역된 이 책의 원제는 <<deluge>>로 사전적으로는 ‘대홍수, 범람’을 의미한다. 애덤 투즈는 1차 세계대전의 전개 과정과 전후 처리 과정에서 기존의 열강들을 압도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등장 과정, 미국이 경제적, 정치적 헤게모니를 획득함으로써 급변한 국제 질서의 성립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대홍수’는 1차 세계대전이라는 미증유의 사건과 이전과는 다른 몰라보게 달라진 풍경을 의미할 터, 상황이 급격하게 변한다는 의미의 ‘대격변’보다는 ‘대홍수’의 함의가 풍부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대격변’이 보다 세련된 제목이긴 하다...

  책 제목과 관련된 이야기는 곁가지이므로, 책 내용에 좀 더 집중해보자. 구조가 훌륭하고 짜임이 분명한 책은 다 읽지 않더라도 그 서문을 보면 알 수 있다. 서문을 통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집약적으로 서술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의 서문은 매우 훌륭하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고스란히,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본문은 그 주장에 풍부한 설명과 사례를 덧붙인다. 이 뿐만아니라, 서문은 본문이 거의 700쪽에 달하는 이 책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책을 다 읽고 서문을 찬찬히 읽으니 책 전체 내용이 집약되는 느낌이다.

  이 책의 핵심을 두 어절로 표현하면 바로 ‘팍스아메리카나의 기원’이다. 애덤 투즈는 초강국 미국이라는 ‘새로운 세력 질서의 출현을 상세히 서술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목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질서의 출현은 곧고 단선적인 과정이 아니다. 세계가 미국의 새로운 패권과 질서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복잡하고 울퉁불퉁하다. 애덤 투즈는 이 새로운 질서가 성립되는 시기를 전쟁 중에 시작되어 1920년대까지, 정확히는 1916년부터 1931년까지로 보고 있다.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폭력적인 정치가 배태된 것이 바로 이때다, 이후의 반란자들-이탈리아 파시즘, 독일 민족사회주의, 일본 제국, 소련의 지도자들-은 미국의 영구한 패권이라는 억압적인 미래상을 막기 위해서는 큰 위험이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전쟁 중인 1916년 미국 주도의 경제적 우위를 앞세운 윌슨의 ‘승리 없는 평화’라는 구호에서 시작한다. 이를 둘러싼 당시 열강들의 정치적, 경제적 셈. 러시아 혁명이라는 전례 없는 사건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1918년 독일 패전 직후의 수년 동안의 강화조약 체결과 복잡한 배상 협상에 이르기까지, 애점 투즈는 경제사가로서 당시 각국의 경제적 상황에 대한 분석과 수많은 참고 문헌을 동원하여 약 15년의 시기를 매우 풍부하게 다루고 있다. 정신을 바싹 차리지 않으면 수많은 외교조약과 정치인들의 숲속에서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미국 패권 성립 과정의 복잡한 과정을 일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받아들이는 여러 나라들, 특히 앞서 말한 반란자들이 왜 새로운 전쟁의 포화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진지한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