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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2년 04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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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52쪽 | 155*232*23mm |
ISBN13 | 9780593443392 |
ISBN10 | 059344339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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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bracing the bittersweet nature of existence that unites us all. (203)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를 놓친 상태에서 ‘비터스위트’를 읽었다. 독서 파트너에 따르면 최근 같이 읽은 책들이 비슷한 주제를 다룬다고 했다. 개인적인 경험과 관심사를 어떻게든 사회와 연결시키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측면 때문에 그런 말을 했을까. 위기와 고난을 승화하여 자기다움으로 집적화하는 심리전과 글쓰기에 확실히 끌리는 편인 듯하다.
‘비터스위트’는 여러모로 나를 감동시켰다. 우선 왜 슬픈 음악에 꽂히는지에 대한 오래 전 메이트의 질문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완결되었다는 점이다. 장송곡을 좋아하는 이유를 파고들어가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전한다. 흩어질 수 있는 이야기를 쉽고 편안한 문체로 뜨개질한다. 언젠가 큰조카가 이모는 으으흐 우는 노래만 좋아한다고 작은 조카에게 말했던 기억이 나며, 나에 대한 이해에 한 발짝 더 내디딜 수 있었다.
정말 좋은 글은 독자의 마음을 열고 들어가 이야기를 끄집어내도록 만든다고 생각한다. 반백년 인생에서 십년을 학업에 뜻을 두었고 십사년은 강의를 하면서 허기와 갈증으로 배움을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음에도, 지난 3년 멈춰 선 시간이 나에 대한 깊고 밀도 있는 자기인식을 가능하게 했다. 놓치고 외면한 진짜 나를 입체적으로 살필 수 있어 도움이 되었다. 나와 불화하며 무던히 싸운 이유를 좀더 구체화할 수 있겠다.
자주 묻는 질문이기도 한데 “당신은 자신을 잘 아나요?”를 다시 꺼내들게 된다. 반추하니 이십대에도 내가 꿈꾸는 삶은 그리움과 외로움과 괴로움을 아는 인생이었다. 실체 없고 추상적이고 먼 이상이 아닐 수 없다. 당시에는 물기가 넘실거리던 때라 과도하게 낭만적인 워딩으로만 치부했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현재진행형 ‘갈망’임을 깨닫는다.
멀리 있고 가지기 힘들기에 더 원하고 또 원하는 마음은 욕망과는 다른 순수하고 초월적인 감정이 아닐까(적어도 누구를 다치게 하지는 않으니까). 피지컬이 좋은 이성에게 끌리고 그런 상대를 정작 감당하지 못한다고 판단했었는데 그것도 하나의 가림이었던 것 같다. 젊었을 때도 세상을 알고 현상 너머 예술과의 정신적인 교감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이성을 상상하기를 즐겼었다. 에로틱보다는 영성적인 것에 매혹되었던 것.
이제는 내면아이나 어린 시절의 그림자를 말하는데 껄끄러움이 없지만 수치스럽고 인정하기 힘들어 덮고 회피하는 쪽이었다. 융의 “상처 입은 치유자”를 실감할 뿐 아니라, 내 안의 상처와 고통에 멈추지 않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나누며 치유하는 단계로 넘어가는 사람이고 싶다. 적어도 나머지 인생에서는.
If you’re this obsessed,
it’s because he(or she) represents something you long for. (236)
책의 마지막 부분에 던지는 가장 큰 질문으로 “당신은 무엇을 갈망하나요?”에 대해 깊이 들어간다. 당신을 압도하고 당신이 집착하고 무아지경으로 빠져드는 대상이 바로 당신을 대변/상징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전 세대의 고통과 흔적을 체화하는 동시에 몸에 새기는 후생적 텍스트이기도 하다. 이 말은 읽고 해석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표피적인 허울에 그친다는 소리이다.
인간은 타고난 천성(nature)과 양육(nurture)이라는 구성물에 빗대어 설명되곤 한다. 문득 아버지가 오래 전 나에게 보관해달라고 했던 가계부가 떠오른다. 외부 충격으로 깨지고 분열된 아버지의 정신세계가 고스란히 담긴 기록에 가슴 통증 이상의 공포를 느꼈다. 그것을 가지고는 견딜 수 없어서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고자 이사하면서 버렸다. 잊었다고 최면을 걸면서도 타인으로 인해 내 삶이 무너질 위험은 초래하지 말자는 각오를 다졌던 것 같다.
덥석 열어보고 감당할 수 없을 바에야 굳게 닫아걸자고 결심하지 않았을까. 누구와도 나누지 못한 번민들. 바깥세상은 잔인하고 가혹하니 내가 나를 지켜야 한다는 보호기제와 강박이 최고치에 달했던 것 같다. 나를 드러내고 상처를 파고드는 일이 두려워 가리고 가리며 페르소나 가면을 썼으나, 멜랑콜리한 노래 앞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패턴.
아프지만ache 그 이상의 무엇이 마음의 문을 뜯고 들이닥쳤다. 두텁게 둘러싼 장막을 찢고 심장 한가운데를 터치하는 구슬픈 노래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음을 안다. 교회 예배에서도 그런 류의 찬송가를 들으면 눈물샘이 터져 제어하기 힘들어 신앙생활을 중단했다. 그렇지만 정신적으로 힘들 때면 ccm을 여전히 듣는다는 사실. Higly Sensitive Person의 특징이자 비터스위트 유형인 것이다.
나를 들키지 않고 나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서 그나마 나를 다독이고 내밀하게 알아보는 방법이 문학 읽기였다. 상처 입고도 차마 말하지 못하는 고통에 시달리는 인물들은 어둡고 숨고 싶은 것은 나만이 아니라고 일러주고 곁에 와 둘러앉았다. ‘너 따위에 휘둘리지 않아’ 라며 강인한 척 했지만 지독하게 외롭고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고 상처 입기 쉬운 상태였던 것이다. 그 연출(연기 보다는) 덕분에 중심이 있고 미스터리한 심연이 있는 사람으로 비춰진다지만.
‘비터스위트’는 쉴 곳rest을 찾지 못해 동요하는restless 내 안의 가시나무들을 직시하게 한다. 특히나 쌍둥이인 나는 엄마의 자궁에서 함께 했던 존재와 심장 모양으로 갈라져(broken) 세상에 나왔다. 태어나며 ‘분리’되는 경험을 이중으로 겪었으니 그때의 상실과 슬픔과 ‘재합일’의 갈망이 지독할 수밖에 없을 터이다. 완벽하고 아름다운 ‘안김’(품음) 속에 맛보았던 온전하고 충만한 소속감을 되찾고자 허덕이며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상처 받을 위협이나 저돌적인 돌격이나 에너지 방전을 막으면서도 호기심과 갈망을 채우는 대안이 소설 읽기다.
소설에 매력을 느끼다 보니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들이 주변에 꼬였고 그들이 오래 머물지 않은 이유는 같다. 소설을 쓸 사람이 아님을 알아차린 까닭이다. 보통의 창작 지망생과 달리 소설을 읽을수록 소설을 직접 쓰고 싶은 영감이나 자극보다는 내 안에는 이야기가 빈약하다는 자각이 날카로웠다. 재능을 떠나 나에게 맞지도 어울리지 않는 직업군이라고 판단하고 선을 그었다. 완벽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몰래 염탐하고 꿈꾸는 행위는 내게 시작도 하기도 전에 고문일 거라는 직감 같은 게.
그렇다고 ‘표현’(expressive writing)에 대한 갈구와 욕망이 아예 없진 않다. 걸치고 걸친 쓰기라도 풀어내려 하는데(글로 정리하지 않으면 다음으로 못 넘어간다) 그 과정이 외롭고 고되다. 말을 아껴야 글이 써지고, 넘치게 품어야 잉태할 게 있는데, 쓰는 삶으로부터 점차 멀어진다.
더욱이 이제는 몸과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 예전 같지 않은 기억력과 지구력이, 낯설고 이질적인 나를 인정하는 게 씁쓸하지만 그 덕에 이전에 알지 못했던 연민과 인간애가 강렬하게/달콤하게 발동한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고 했던가. 최근 자주 하는 생각이 열정은 몇 개의 바구니들에 나누어 담아야 균형이 깨지지 않는다. 집착이 강박이 되는 순간 경주마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말하며 비좁게 살 테니까.
이런 성향의 내가 ‘비터스위트’를 읽기 직전 본 것이 각본 ‘헤어질 결심’이었다. 산봉우리山를 찾다가 바다 심연川이 되는 서래의 완벽하고도 아름다운 미완성 사랑 이야기가 가슴에 불씨로 남아 있던 상태에서, ‘비터스위트’는 그냥 나를 담은 용기이자 그냥 나인 책으로 스며들었다. 달콤씁쓸함, 제목 자체로도 삶의 이중성을 함축한다. 어둠 속 미세한 틈으로 깃드는 빛을 발견하는 성격과 기질을 있는 그대로 받으라 한다. 이 책에는 내가 사랑하는 단어들이 윤슬처럼 출렁이며 반짝인다. embrace. aware. transcend. yearning. longing and belonging. accept and integrate. beauty and truth. insight….
저 단어들은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다. 긴 연마와 수련을 요구한다. 유발 하라리나 곽정은 같은 유명 스피커들도 명상과 요가에 열심이다. 많은 것을 흡수하는 가운데 파편으로 남지 않기 위해선 자기다움으로 통합하는 다듬기가 뒤따라야한다. 평정과 숙성의 시간이(이 점에서 김연수의 신작 소설집이 끌린다).
여담이지만 영부인이라는 작자가 돋보이고 싶은 충동에 짜깁기 관종의 표본이 되었다. 나토 순방에서 질 바이든에게 저스트 비 유얼 셀프라는 충고를 듣고도 여전히 나댄다. 부끄러움과 민망함은 국민의 몫이다(쌍둥이 내 반쪽은 거니가 그냥 예쁘단다. 윤 모지리랑 살아주는 것이 신기하고 돋보이려고 그랬다자나 이런다^^).
‘비터스위트’의 저자는 삼십대 초반에, 나는 삼십대 후반에 겨우 깨달은 앎을 오이디푸스의 브로치처럼 찌른다(피어싱은 성장통이기도 하다). 김윤아의 Going home이 말해주듯 나는 돌아갈 집, 다시 말해 안식처를 찾아 여러 책들과 예술품들과 사람들을 넘나들었던 것이다. 근원이고 순환 고리 상 되찾아야 하는(돌아갈) 장소를 찾기 위해. 오디세이가 귀향하는 장면은 언제나 감격스럽다. 돌아가 안식을 취할 실재적이고도 상징적인 집이 우리에겐 마련되어야 한다. 고통과 슬픔을 창조적이고 진리에 가까운 것으로 ‘전환’ 하는 능력과 함께.
지난 2년을 돌아보면 눈앞이 아득해진다. 동시 다발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아프고 무너져 내릴 수 있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전신거울에 비친 뒤틀린 형체를 잊을 수 없다. 독서 파트너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저러다 죽는 줄 알았다고... 정치가 살렸다고.” 고통을 아름답게 승화하고 초월하며 진화하는 정치인의 현시가 아니었다면 새로운 해를 등졌을지도 모른다.
이재명 당대표는 자기 인식형 인물일 뿐 아니라 ‘새드 리더’로서 국민의 고통을 먼저 헤아리는 섬세한 ‘퍼스널 파워’를 행사한다. 반면 국민과 싸우고 겁박하고 근친애적이고 즉자적 쾌감을 즐기는 대통령은 ‘앵그리 리더’로서 제 멋대로 ‘포지셔널 파워’를 휘두른다…(쌍둥이 동생의 “거기까지!”라며 끊는 환청이^^).
독서 파트너와 나는 어느덧 소울메이트가 되어 가는 중이다. 삶의 반경과 관계망이 많이 다르더라도, 책을 읽고 속 깊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돌보고 교우하는 사이가 되어간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게끔, 살아갈 가치(worthy of living)와 고유한 가치(value)라는 의미를 만들어준다. 소박하지만 일상을 지키는 소중한 창조가 아니겠는가.
책의 2부에서는 강요된 긍정성이 어떻게 긍정이라는 ‘폭군’이 되는지를 폭로한다. 사후와 천상에 포커스를 맞추던 종교가 세속화되고(물론 점지되었다는 선민 사상을 깔고) 지상과 물질과 부로 변질되어감을 조명한다. 무엇보다 핏(fit)이 여러 각도에서 부각되며 “노력 없는 완벽함”을 양산하는 비인간적인 갑질/꼰대 문화를 지적한다. 삶의 일부인 실패나 상실이나 상처나 우울을 ‘루저’로 낙인찍어 승리에 집착하게 만든다.
저자 수전 케인은 삶의 목적과 방향성을 가질 때만이 자신의 에덴동산에 가닿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 맥락에서 작가는 무브 온 보다는 그것을 향한 무브 ‘포워드’를 강조한다. 돌아갈 집 없이 떠돌다가 서쪽으로 기우는 많은 배들이, 우리에게 비어진 서사와 역사를 채울 여지를 제공한다. 함께 걸으며 죽음을 기억(메멘토 모리) 하되 연연하고 집착하여 현재를 망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그리고 노인이 되면 감사와 만족이 반등한다고도 했다. 다시 가질 수 없는 대상을 향한 사무침과 그리움은 물론이거니와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겸손과 감사를 느낀단다. 어디까지나 통계이고 어용 심리학이라고 비판할 함정이 있지만. 나를 품고 세상으로 번지는 대자적 사랑과, 친자식뿐 아니라 폭넓은 모성애(random love)의 확장을 그려본다. 모두 안녕하길요_Be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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