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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3년 08월 0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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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52쪽 | 496g | 133*200*30mm |
ISBN13 | 9788954695053 |
ISBN10 | 8954695051 |
2024 부커상 인터내셔널 황석영 『철도원 삼대』 최종 후보
2024년 03월 12일 ~ 2024년 05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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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0일 ~ 2024년 08월 16일
2024년 04월 12일 ~ 2024년 04월 30일
2024년 03월 20일 ~ 2024년 0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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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 2024년 04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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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지 않아도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을 거야."
-소설가 권여선, 서평가 정희진 추천
2020 젊은작가상 수상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수록-
전작 『쇼코의 미소』에서는 작가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에 대한 고찰을 다루었다. 그 타인에 대한 탐구를 다음 작품인 『내게 무해한 사람』에서 작가는 미숙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인물들의 내면을 통해 그 속에서 거세게 일어난 마음의 흔들림을 포착하여 섬세한 필치로 써내려갔다. 『밝은 밤』에서 작가는 4대에 걸 친 엄마와 딸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까지 해온 인간과 관계에 대한 논의를 종합하고 가족관계로 더 확장하고 구체화했다.
이번 책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는 여성 서사, 가족관계, 사회 문제를 모두 결합시켜 '더 진실되고, 더 치열하고, 더 용기 있게 살아가는' 여성들을 보여준다. 이 책에 수록된 일곱 편의 이야기들은 그런 마음을 온전히 담아 써내려가는 긴 편지인 것이다.
작품 속에 제시된 첫 번째 이야기이자 표제작인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 작가는 9년 전, 대학교 3학년이었던 '나'인 희원과 수업때 만난 시간 강사였던 '그녀'와의 만남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은행을 그만두고, 대학에 편입하여 영문과 전공 수업을 듣던 희원은 그 수업에서 시간 강사였던 그녀를 만나게 된다. 그녀와 그녀의 수업이 너무나 맘에 들었다. 희원에게 그녀는 단순한 시간 강사가 아닌 동경하고, 닮고자 하는 대상이었다.
"그녀에 대한 공경과 호기심, 어려움이 섞인 마음을 감추려고 나는 그녀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p. 25
사는 곳도 같고, 가고자 하는 방향도 일치해서 희원은 그녀의 삶을 동경하고 그녀에게 동질감과 친밀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에게서 작고 희미한 희망이라도 발견하려고 했는지 모른다. 대학원에 들어가서 그녀처럼 시간 강사를 하고 싶은 목표에 그녀는 어쩌면 희원의 롤모델이자, 희원의 길을 비쳐주는 작은 빛이자, 희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대학원에 가고 싶다는 희원의 말에 "공부는 대학원 아닌 곳에서도 할 수 있는 거" 라고 말하며 희원이가 자신보다는 더 나은 길을 가기를 바랬다. 희원은 동경하는 그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여자 강사여서', '정교수가 아니라서' 라고 말하며 그녀에게 상처를 준다. 왜 희원은 그녀에게 상처가 될 줄 알면서 그런 모진 말을 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한 것일까. 그녀는 희원이 동경하는 대상이자, 따라가고 싶었던 빛과 같은 사람이었으니깐. 그 빛은 사라져버린 것일까. 아니면 희미하지만 남아있는 것이었을까.
어쩌면 그때의 나는 막연하게나마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던 것 같다. 나와 닮은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내 앞에서 걸어주고, 내가 발을 디딜 곳이 허공이 아니라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좇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빛을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에게서 보고 싶었다.
-p. 44,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중에서
두 번째 이야기인 <몫>에서는 글을 씀으로써,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는 한편, 좌절하기도 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사회 문제에 대해 알리고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글쓰기를 잘했고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고 싶었던 희영이의 모습과 글쓰기를 통한 좌절로 한계가 있음을 아는 정윤이의 모습을 비교해서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 될 수 없는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p. 52,「몫」중에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고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은 힘든 일일까. 그런 글을 쓰기를 희망했지만, 결국 희영은 글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정윤이는 글쓰기를 포기하고 결혼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녀들보다 글쓰기 능력이 없던 이야기 속 화자인 해진이가 기자의 삶을 살며 글쓰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글쓰는 일이 쉬웠다면, 타고난 재주가 있어 공들이지 않고도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당신은 쉽게 흥미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라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다.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을 수 있다는 행복, 당신은 그것을 알기 전의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p. 75, 「몫」중에서
희영은 자신이 그런 선택을 한 이유에 대해 말한다. 글을 통해 부정의를 비판하고 자신이 할 일, 자신의 몫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그녀 자신도 그런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희영의 말을 통해 너무 글쓰기에 진심이면 오히려 글을 쓸 수 없는 것일까 생각해본다.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오랜 고민과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 편집부 할 때, 나는 어느 정도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 내가 그랬다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달랐겠지만.
-p. 79, 「몫」중에서
세 번째 이야기인 <일 년>에서는 작가는 '지수' , '다희' 이라는 두 인물을 통해서 미묘한 인간관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직장에서 선후배로 사이로 만난 지수와 다희, 하지만, 정직원인 지수와 인턴인 다희는 서로 처해있는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카풀을 하면서, 차를 타고 가며 대화를 나누며 친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계급간의 간격을 좁힐 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상처받기 싫어서, 진심을 털어놓았다가 서운함을 느낄까봐 두려웠던 것일까.
그들은 서로 마음이 잘 통하는 친숙한 관계를 맺을 수도 있었을테지만,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서로의 이익에 의해 맺어진 관계이기에, 서로의 진심을 숨긴다. 어쩌면 사회 속 인간 관계는 그렇게 피상적인 것이고 껍데기뿐일지도 모른다. 서운함이라는 감정도, 서로에 대한 감정과 진심이 있을 때 품을 수 있지만, 지수는 다희와 그런 관계는 맺고 싶지 않았다. 지수가 동료에게 말한 것처럼 '다희는 그저 통근하는 경로가 비슷해서 같이 차를 타고 다니는 거'에 불과할지 모르니깐. 어쩌면 지수에게 다희는 그런 존재이길 바라니깐. 지금까지 외톨이로 고통스럽게 살아왔지만, 나름대로 견뎌오며 그저 '살아왔으니깐' 말이다.
그녀는 다희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넌 내 뜻대로 반응해야 해, 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그녀는 다희에게 그런 마음을 품고 싶지 않았다.
-「일 년」중에서
그녀는 그런 상황에 체념한 채로, 그 모든 일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고통스러웠지만 살아졌고, 그녀는 살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살아진다. 그러다보면 사라진다. 고통이, 견디는 시간이 사라진다.
-「일 년」중에서
작가는 그런 지수의 마음과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직장 안에서도 서로 진심을 터놓지 못하고 그렇게 입에 발린 말을 하며 껍데기뿐인 관계를 유지하는 우리 현대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8년 후, 우연히 다시 만난 지수와 다희는 서로 진심을 전하지 못하고, 연락처도 묻지 않고 그렇게 서로의 삶 속에서 비켜나버렸다.
그녀는 다희의 삶에서 비켜나 있었고, 다희 또한 그녀에게 그랬다.
그녀는 여전히 그녀인 채로 살아 있었다.
-p. 124, 「일 년」중에서
네 번째 이야기인 <답신>에서는 작가는 두 자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렸을 때 엄마에게 버림받고, 아빠의 무관심 속에서 서로 의지하면서 어렵게 자란 자매였다.
하지만, 왜 자매는 서로 화해하지 못하고 더이상 만날 수 없는 남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린 것일까. 이야기는 화자 '내가 '는 더이상 만날 수도 없게 된 조카인 너, 언니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빌려 쓰여졌다.
"넌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가끔은 너에게 미련이 생기다가도 네가 나를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는 나이에 나와 헤어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상처가 나도 금방 회복할 수 있는, 살아온 모든 시간을 망각 속에 던져버릴 수 있는 나이에 너는 나를 떠나보냈구나.
-p. 128, 「답신」중에서
과연 두 자매에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왜 나는 언니가 아닌 조카에게 편지를 쓰며 언니에 대한 마음을 전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읽어내려가면서 폭력으로 인해 서로 의지하고 믿어온 자매 관계에 깨져버렸음을 알게 된다. 그 폭력은 개인의 의지로 어쩔 수 없는 너무나 막강하여 피할 수도 없다. 결국 그 폭력이 자매 관계를 망치고 또 다른 폭력을 낳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작가는 그런 폭력의 위험성과 잔혹성을 두 자매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내 안에서는 언니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는 나와
언니를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또다른 내가 싸우고 있었지.”
-p. 164, 「답신」중에서
만약 그 자매들에게 폭력이 아닌 제대로 된 사랑이 주었졌다면, 자매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화자인 나 또한 언니와의 관계를 끊지 않고, 평생을 속죄하면서 살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너무나 보고 싶은 조카도 마음껏 보고 말이다. 그런 아쉬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먹먹함이 교차했던 그런 작품이었다.
다섯 번째 이야기인 <파종>에서는 작가는 두 남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자신을 잘 돌봐주고, 이혼 후에도 자신과 자신의 딸을 잘 보살펴준 오빠의 사랑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오빠가 죽고 난 후, 자신과 자신의 딸 소리는 홀로 남겨진다. 그가 살아 생전엔 그녀를 그를 원망하고 미워했었다. 왜 그녀는 오빠가 살아있을 때는 그 고마움을 깨닫지 못했을까. 그녀가 지닌 슬픔의 깊이와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상처만 보느냐고 정작 자신이 그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모두 다 부질없는 상상일 뿐이었다. 죽어서라도, 다시 태어나서라도 그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녀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을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에는 단순한 진실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이제 세상에 없으며, 그가 자신에게 준 마음을 갚을 방법 같은 건 없다는 진실이었다.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고,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은 지울 수 없는 후회와 미안함으로 남으리라는 진실이었다.
-「파종」중에서
텃밭을 일구며 파종을 했던 일은 그와 그녀, 그녀의 딸 소리에게는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가 죽은 후 그 행복했던 기억도 사라진 것 같았다. 파종을 하고 수확을 하며 행복함을 주었던 텃밭은 이제는 황폐해져고 쓰레기만 가득하다.
이제서야, 그 소중한 행복을, 그에 대한 사랑과 감사함을 깨달은 그녀는 딸 소리와 함께 쓰레기로 가득찬, 버려진 텃밭을 다시 일구고 씨를 뿌린다. 씨를 뿌린 순무가 자라서 푸른 무청으로 가득한 텃밭을 상상하면서, 다시 찾아올 행복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바라지 않아도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을 거야. 그녀는 속으로 말했다. 푸른 무청이 가득한 텃밭을 그리면서 , 그곳으로 찾아올 햇빛과 비와 바람과 작은 벌레들을 기다리면서.
-p. 211, 「파종」중에서
마지막 일곱 번째 이야기인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에서는 작가는 두 모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그 모녀 관계는 살갑고 친밀하지 않고 왠지 어색하고 불편해보인다.
작가는 오랫만에 딸이 사는 홍콩을 방문하게 된 기남이 거기에 머무르면서 겪게 되는 일을 들려준다. 어긋나고 삐그덕거리는 딸과의 관계처럼 각가지 사건들이 기남에게 일어난다. 캐리어, 귀걸이, 지갑 등을 잃어버려 당황하고, 자신을 냉랭하고 어색하게 대하는 딸의 모습에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그러면서 기남은 부모에게 버림받아 식모살이하며 살았던 어린 시절, 딸인 진경과 우경을 키워온 이야기, 진경이 알코올 중독인 것을 알아버린 일, 우경이 있던 미국으로 진경과 초대받아 갔다가 벌어진 사건 등 기남이 살아온 인생과 삶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부모와 가족, 심지어 딸들에게도 제대로 사랑받지도 못하고, 위로받지도 못한 채, 그렇게 힘들고 외로운 삶을 살아온 것이다. 어쩌면 손자 마이클의 말처럼 부끄러운 삶이었기에 수치스러움을 느끼고 감추려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죽고 싶을만큼 괴로웠기에, 그래서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었지만, 기남 곁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기남의 상처받은 마음을 손자인 마이클은 알아주는 듯 하다. 기남은 그동안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그런 기남에게 마이클은 "부끄러워도 돼요. 부끄러운 것 귀여워요.(p. 318)
그런 따뜻함이, 인간적인 마음이 지치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힘이 되지 않을까.
이 책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속에 담긴 7편의 글들이 너무 마음을 울린다. 예리고하고 섬세한 감성으로 우리가 겪게 되는 인간관계와 사회 문제 등을 반영하고 일곱 편의 주옥같은 작품으로 만든 작가의 필력에 대단함을 느낀다. 최은영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녀가 그래도 애써 찾고자 하는 그런 간절한 마음과 희망이 느껴져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소설
문학동네 출판
7편의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어둡고 힘들었던 시기와 잊고 있었던 어린시절, 포기하고 싶었지만 끝내 이루었던 순간들. 다양한 감정들을 나는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언어로 글로 표현한다는 것에 놀라웠다. 책 전체를 필사하먄 작가님 같은 언어를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만큼.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일 년>, <이모에게> 소설이 가장 좋았다. 다양한 인물들이 가진 삶이 나와 내 주변과 닮아있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살아내다보면 살아진다는 말을 고요하게 마음에 전달해준 책 ♥
◈ 작가님과 줌 토크에서
*작가님이 최근에 읽은 책
- 대만 ‘우밍이 작가’의 <도둑맞은 자전거>
(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를 읽고 알게 되었다.)
- ‘우춘희 작가’의 <깻잎 투쟁기>
*좋은 자극을 준 책
- ‘권여선 작가’의 <각각의 계절>
작가님이 경력과 압력에 빠지지 않고 글을 잘 쓰는지 궁금하다.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 ‘포터’로 분위기는 원래도 작가님 환한 미소에 친근했지만 더 가까워진 느낌 ^^ 32-33쪽을 작가님 목소리로 들으니 이야기가 편하고 집중이 더 잘되었다.
*책 이야기
- <파종>이라는 단어의 피상적이면서 저항하는 의미가 좋아 글을 쓰게 되면 제목으로 쓰고 싶었다.
- <답신> 썼을 때는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었었다. 상처받고 보복하고 싶은 마음들이 있지만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은 잘 살고 있을 때의 절망들이 있었다. 유사한 상태의 인물이 있는데 경험을 하고 나서 시간이 지난 후, 끊어버리고 나아가고 싶다. 삶에 찾아오는 불행들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
-마지막 문장을 쓰면 그 세계가 닫힌다는 생각으로 쓸 수가 없다. 사라지는 것은 내가 세계있다는 것을 잊는 고통을 잊는 것이고, 사라지지 않는 것은 인물들과 만났던 시간과 인연은 내 안에 남아 있어 일체감이 있다. 글로 언어로 쓰면서 정리가 되고 납득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ㅡ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희원은 2009년 2학기, 구 년 전 스물일곱 대학교 3학년 학사 편입생.
은행을 그만두고 늦게 대학생활을 하다 시간강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게 되는 일이 있다. 그녀의 글을 읽고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그녀의 삶을 동경하고 또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생각하면서도 여자, 시간강사의 말이 주는 힘은 남자 정교수보다 약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한계에 있는 그녀에게 상처주는 말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자신이 동경했지만 자신도 그렇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눈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 같은 아련함이 가득했고, 아주 희미한 빛처럼 흐릿하게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어떻게 저런 표현을 글로 쓰는지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어도 너무 좋은 글 ♥
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 언어화될 때 행복했고, 그 행복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던 종류의 감정이라는 걸 가만히 그곳에 앉아 깨닫곤 했다. 가끔은 뜻도 없이 눈물이 나기도 했다. 너무 오래 헤매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P11
퇴근해 책상 앞에 앉아 책에 밑줄을 긋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순간에 투명 망토를 두른 것 같았다고 그녀는 썼다. 세상에서 사라지는 기분이었다고. 그녀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려진 세상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보다도 언제나 더 가깝게 느껴졌다고 썼다. 그럴 때면 벌어진 상처로 빛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고, 그 빛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더 가보고 싶었다.’ 그녀는 그렇게 썼다.
나는 그녀의 문장에 밑줄을 긋고,
그녀의 언어가 나의 마음을 설명해주는 경험을 했다.
나도, 더 가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P43-44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쫓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빛을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에게서 보고 싶었다. 그 빛이 사라진 후, 나는 아직 더듬거리며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어림해보곤 한다. 그리고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도. 나는 그녀가 갔던 곳까지는 온 걸까. 아직 다다르지 않았나. P 44
ㅡ
<몫>
신입 대학생 혜진, 희영, 한 살이 더 많은 정윤.
공동체 안에 살아가는 사람으로 남겨진 사람들의 몫. 사람으로써의 몫.
풋풋했지만 누구보다 열정 강했고 삶에 대해 진심이었던 스무살. 왜 이 대학생들이 멋있게 보이는 걸까.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 될 수 있는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P52
<일 년>
회사 선배인 그녀는 인턴 다희와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다희는 허물없이 귤을 까먹고 대화했는데 그 모습을 특이하게 느꼈다. 자신은 입사 초기 최선을 다하고도 낙담했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다희의 행동이 부러웠나 혹은 이해가 되지 않았었나.
반복되는 체념 속에 빛을 잃어가고 껍데기만 남은 다희의 표현은 일상에 지쳐버린 일하는 사람들의 고됨같았다.
오래 전 한 사람에게 힘든 일을 털어놓았고 그 사람만 보면 자동적으로 내 힘든 사정을 쏟아내듯 말하는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 힘든 마음을 담아 내준 사람이지만 그 힘듦을 담고 있어서 알고 있어서인지 어느 순간 내가 자꾸 거리를 두게 된 적이 떠올랐다.
그러다가, 실망하는 거죠. 전 언제나 사람들의 기대만큼 밝은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아, 너 이런 애였니? 이러고 가버리는 거예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렇게 말하고 다희는 힘없이 웃었다.
그래서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잃고 싶지 않으니까 무리를 하게 돼요.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어서. P97
살아진다. 그러다보면 사라진다. 고통이, 견디는 시간이 사라진다. 어느 순간, 그녀는 더 이상 겉돌지 않았고, 그들의 세계에 나름대로 진입했다. 모든 건 변하고 사람들은 변덕스러우니까. 그러나 그 후에도 그녀는 잠들지 못하거나 질이 낮은 잠을 끊어 자며 아침을 맞았다. P108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넌 내뜻대로 반응해야 해, 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P115 (-서운함을 이렇게 글로 표현한다는 것에 또 놀라움)
애정이 상처로 돌아올 때 사람은 상대에게 따져 묻곤 하니까. 그러나 어떤 기대도, 미련도 없는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음을 걸어 잠근다. P119
사람들은 때로 누군가에게 진심을 털어놓고는 상대가 자신의 진심을 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상대를 증오하기도 하니까. P120
<답신>
엄마를 닮은 나와 아빠를 닮은 언니. 그런 언니에게 수치스럽다, 창녀같다는 말은 어린 아이에게 상처가 될 거라는 걸 알고 한말이었을까. 아빠는 남겨진 딸들에게 꼭 그렇게 생채기를 내야했을까.
나쁜남자의 절정을 달리는 형부와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려는 언니. 언니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내가 느낀 언니에 대한 감정을 조카는 알아주길 바래서 편지를 쓴 것 같다. 많이 슬프고 여자를 기만하는 남자들로 기분이 나쁘게 만든 소설. (너무 공감이 되어서요^^)
그렇게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남들이 하자는 대로 끌려다니고 남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느라 나의 욕구를 무시했지. 그때 내가 느꼈던 가장 큰 두려움은 다른 사람들이 내게 실망하는 거였어. 나는 절대로, 절대로, 누군가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어. P133
밤하늘 아래의 불빛들이 반짝이면서 너는 앞으로도 살아야 해, 살아가야 해, 하고 낮게 합창하는 것 같았어. 더 알고 싶은 것도, 더 해보고 싶은 것도 없는데, 이젠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데, 그런데도 살아야 한다고 자꾸만 누가 내 등을 떠미는 것 같았지. P160-161
<파종>
창작과비평 문학부분에서 읽고 이번 소설집에서 두 번째이다.
소리와 엄마는 소라의 삼촌이자 엄마 민주의 오빠의 빈자리를 그리워한다. 오빠가 떠나기전 그녀의 힘든 것을 손바닥에 다 주고 가져가겠다는 말을 하지만 고개를 흔들며 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오빠가 이제는 편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담겨있었다. 소리와 엄마는 삼촌이 일구던 밭을 다시 일구며 그의 흔적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리운 마음을 함께 해본다.
삶을 이어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저렇게 동생의 힘든 마음까지 생각할 수 있을까. 가정폭력 속에 자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가족의 아픔을 본인 마음에 품어줄 수 있는지 삼촌은 따뜻한 사람이었고, 충분히 빈자리가 느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언어로 그 적는 순간순간들을 복원했다. P186
세상은 온통 뿌옇게 보였다. 누구도 그녀에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때 그녀는 처음으로 막연함을 느꼈다. 막연한 두려움, 막연한 슬픔, 막연한 외로움.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 않았고 그 시간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에 가지 않고 길을 돌고 돌았다. 그렇게라도 시간을 버리고 싶었다. P204-205
기약 없이 기다리는 일이 꼭 버려지는 것 같아서였다. 눈물이 났지만 그 마음을 누구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해서 그저 참았다. P206
<이모에게>
파종의 삼촌 같은 남자는 드물다. 대게의 남자들음 밥상 숟가락도 안놓거나 여자를 깔보는게 습관인 사람들이 자주 나오는데 이모에게의 아빠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
희진은 엄마보다 나이가 20살도 넘게 차이나는 이모와 함께 살며 이모의 양육방식으로 자랐고, 부모에게도 할 수 없었던 감정을 유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대상이 이모였다.
어릴 적 함께 살았던 막내 고모가 생각났다. 맞벌이 부모님을 대신해 숙제도 곧잘 봐줬던 고모. 어른들의 관계로 연락도 이제는 닿지 않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늘 있었던 고모는 희진의 이모같은 느낌이어서 그런지 다시 보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이렇게 잘 컸고, 잘 살고 있다고 보여주면서.
고통스러울 정도로 나를 몰아세우자 놀랍게도 나를 아프게 하는 생각의 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건 가학적으로 귀를 막으면서 진짜 문제들을 뒤로 미루는 방식이었지만, 당시의 나는 내가 꽤 잘해내고 있다고 믿었다. P246
더 나은 존재가 되어간다는 고양감에는 중독성이 있었다. P247
돌아보면 그 시절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건 나의 공포와 분노를 마주하는 일이었다. 그러지 않기 위해 나는 쉽게 겁내지 않고, 사소한 일에는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연출했다. P248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헐값에 어린 막내를 팔아버린 가족. 식모살이로 성장한 기남은 홍콩에 사는 둘째 딸 우경이 자식임에도 불편하다. 세월이 지나 가족이라고 생모 생신 잔치에 초대받았지만 불청객같은 대우에 기남은 명동 거리를 방황한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은 가족과 주변으로부터 식모살이하는 사람이었고, 결혼해서도 남편과 자식에게 무시받는 사람이다. 탁구를 칠 때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과 감정이 편하다고 느낄만큼 자신에게 뿌리 깊이 주변의 멸시의 행동과 시선이 익숙했던 기남.
나도 어쩌면 그 사람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직업과 자라온 환경만으로 무시하지는 않았나. 가족이나 친구에게 그런 시선을 보내진 않았나 생각해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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