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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연대기 3

쇠퇴와 멸망

[ 양장 ]
존 줄리어스 노리치 저/남경태 | 바다출판사 | 2007년 04월 09일 | 원제 : BYZANTIUM: THE DECLINE AND FALL 리뷰 총점9.0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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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연대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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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04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851쪽 | 1,368g | 153*224*40mm
ISBN13 9788955613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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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저자 소개 (2명)

존 줄리어스 노리치는 외교관으로서의 화려한 경력을 포기하고 나와 문화 연구와 역사 저술 활동에 뛰어들어 비잔티움사 연구의 권위자이자 호쾌하고 유려한 문장으로 정평이 나게 된 역사가이다. 그는 1929년에 태어나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 등에서 공부했고, 1952년에 영국 외무성에 들어가 베오그라드와 베이루트의 대사관에서 일했다. 제네바 군축회담에 영국 대표단으로 참가했을 정도로 유능한 외교관이었지만,... 존 줄리어스 노리치는 외교관으로서의 화려한 경력을 포기하고 나와 문화 연구와 역사 저술 활동에 뛰어들어 비잔티움사 연구의 권위자이자 호쾌하고 유려한 문장으로 정평이 나게 된 역사가이다. 그는 1929년에 태어나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 등에서 공부했고, 1952년에 영국 외무성에 들어가 베오그라드와 베이루트의 대사관에서 일했다. 제네바 군축회담에 영국 대표단으로 참가했을 정도로 유능한 외교관이었지만, 1964년에 외교관으로서의 탄탄대로를 박차고 나와 역사 연구에 몰두했다. 그 뒤 왕립 빅토리아회, 왕립 예술협회, 왕립 문학회, 왕립 지리학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세계를 돌며 예술, 역사, 건축, 음악을 주제로 강연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시칠리아의 노르만인들』, 『아토스 산』, 『베네치아의 역사』 등 그가 저술한 책은 외교관 출신다운 노련하고도 생동감 넘치는 서술로 많은 인기를 끌었으며, 일반인들은 물론 전문 연구자들도 그의 학구열과 학문적 업적에 많은 찬사를 보내고 있다.
대표적인 인문학 전문 번역가이자 저술가이다. 그는 학문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듦으로써 국내 대중 교양서의 새 지평을 열었다. 20여 년의 작가 생활 동안 39권의 저서와 106권의 번역서를 세상에 내놓았고, 2014년 별세했다. ‘종횡무진 인문학자’, ‘우리 시대 최고의 르네상스맨’, ‘종합 지식인’이라는 그의 별칭이 말해주듯 그가 전하는 지식의 세계는 넓고 풍요롭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역사와 철... 대표적인 인문학 전문 번역가이자 저술가이다. 그는 학문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듦으로써 국내 대중 교양서의 새 지평을 열었다. 20여 년의 작가 생활 동안 39권의 저서와 106권의 번역서를 세상에 내놓았고, 2014년 별세했다.

‘종횡무진 인문학자’, ‘우리 시대 최고의 르네상스맨’, ‘종합 지식인’이라는 그의 별칭이 말해주듯 그가 전하는 지식의 세계는 넓고 풍요롭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역사와 철학을 종횡무진한 그의 책들은 독자들에게 경계 간의 울타리를 허물고 인문학이라는 숲을 볼 수 있도록 돕는다. 평생 읽고 쓰는 삶을 살며 혼자 공부하는 것의 즐거움과 자유로움을 누려온 그이기에, 지금 ‘혼자 공부’하려는 이들에게 그의 책은 든든한 안내자가 되어줄 것이다.

지은 책으로 《혼자 공부하는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지식: 역사》, 《개념어 사전》, 《한눈에 읽는 현대 철학》, 《철학 입문 18》, 《종횡무진 한국사 1, 2》, 《종횡무진 서양사 1, 2》, 《종횡무진 동양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30년 전쟁》, 《페다고지》, 《비잔티움 연대기 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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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쇠퇴와 멸망 _ 피의 그믐달이 뜬 그날, 비잔티움의 역사는 신화가 된다!

『비잔티움 연대기』 3부작의 마지막인 "쇠퇴와 멸망"은 동유럽과 서유럽의 관계가 역전되는 과정으로 시작해 비잔티움 제국의 비장한 최후를 다룬다. 비잔티움 제국은 창건 이후 줄곧 동방의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서유럽 세계를 보호해 주었고, 그러는 동안 서유럽은 외부의 침략 없이 안전하게 세력을 키울 수 있었다. 그 덕분에 힘을 비축한 서유럽은 12세기부터 십자군을 조직하면서 성지와 성묘를 탈환하는 것을 목표로 대규모의 원정을 시작한다. 하지만 서유럽 교회들이 주도하여 조직된 십자군은 점차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비잔티움 제국을 위협하는 야만스러운 폭도 무리로 변하고 만다.

급기야 제4차 십자군은 무방비의 콘스탄티노플을 침략하여 학살과 파괴를 자행하고 라틴 황제를 제위에 앉힌다. 십자가의 기치를 내건 군대에 동방의 그리스도교 제국이 몰락하게 된 역사의 아이러니. 비잔티움 제국은 결국 이때의 피해를 복구하지 못한 채 1453년 오스만투르크의 대대적인 공격 앞에 멸망한다. 7천 명이 채 안 되는 병력으로 오스만투르크의 10만 대군을 맞아 45일 동안 필사적으로 항전한 비잔티움 제국. 마침내 피의 그믐달이 뜬 그날, 무너지는 콘스탄티노플 성벽과 함께 제국의 역사는 이제 신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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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잔티움 제국에 관한 10가지 질문과 대답

누구나 들어본 적 있지만, 그 이름을 제외하면 사실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비잔티움 제국. 비잔티움은 언제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멸망했으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다음의 10가지 질문과 대답을 통해 알아보자.

1. 비잔티움 제국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
293년 로마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쓰러져 가는 제국을 살리기 위해 제국을 동방과 서방으로 나누고, 그 뒤를 이은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30년 아예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긴다. 이것이 비잔티움 제국의 시작이다. 이후 서방의 로마 제국은 476년에 게르만족 용병 대장 오도아케르의 손에 멸망하고, 동방의 로마 제국, 비잔티움만이 남게 된다.

2. 콘스탄티누스는 왜 로마 제국의 수도를 동방의 콘스탄티노플로 옮겼는가?
당시 로마는 지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점점 화석화되었고, 헬레니즘 세계의 새롭고 진보적인 사고로부터 더욱 멀어지고 있었다. 학교와 도서관도 알렉산드리아나 안티오크, 페르가몬에 비해 뒤처졌다. 경제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이탈리아 반도 전역에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바람에 인구도 점점 감소했다. 제국 전체가 재정 문제로 인해 여러 차례 붕괴할 상황에까지 몰렸던 판에 ‘동방의 부’라고 알려진 동방의 훨씬 더 큰 경제적 자원은 어떤 정권이라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3. 비잔티움 제국은 과연 역사상 가장 오래 존재한 제국이었나?
로마 제국은 공화정이 시작된 기원전 510년부터 서기 476년까지 986년간 존재했고, 신라는 박혁거세가 나라를 세운 기원전 57년부터 56대 경순왕이 왕건에게 항복한 935년까지 992년간 존속했다.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플을 공식적으로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한 330년 5월 11일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갓 스물을 넘긴 이슬람 술탄 메메드 2세에게 멸망하는 1453년 5월 29일에 끝난다. 1123년 18일. 인류 역사상 단일 제국으로서 가장 오래 존속한 제국이다.

4. 비잔티움이 천년 이상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장자 상속제가 명확하지 않은 비잔티움 제국은 쿠데타를 통한 황제의 교체로 정치적 모순을 즉각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고, 제위를 이을 사람이 없을 때는 군대가 신속하게 황제를 선출해 권력의 공백을 메웠다. 즉 정치적 혼란을 최소화한 시스템이 가동되었던 것이다. 또한 동방의 이슬람 세력과 북쪽의 슬라브족, 서쪽의 게르만족 사이에서 각각의 문화와 종교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문화 다양성의 모범"으로 세력의 균형을 맞추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략. 유연한 외교술과 포용력으로 제국의 생명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5. 만약 비잔티움 제국이 없었다면 서유럽은 어떻게 되었을까?
문명의 힘과 경제력이 강했던 오리엔트 지역을 기반으로 삼았던 이슬람 제국은 서유럽 세계가 감당할 수 있는 적수가 아니었다. 비잔티움 제국이 없었다면, 서유럽 세계는 이슬람 세계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교는 소수 종교에 머물렀을 것이고, 유럽에는 금발의 파란 눈 이슬람교도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6. 비잔티움 제국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오스만투르크의 침공을 받은 1453년 당시 콘스탄티노플은 말 그대로 폐허가 되었다. 살아남은 학자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피신했고, 그곳에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과 사상을 전파하여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7. 비잔티움 제국 사람들은 스스로를 비잔티움인이라고 불렀을까?
당시에는 '비잔티움 제국'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이름은 18세기의 서구 역사가들이 동로마와 서로마를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 붙인 이름이다. 비잔티움 제국의 시민들은 단지 로마인으로 태어나 로마인으로 죽었고, 항상 스스로 로마인, 로마 제국이라고 불렀다.

8. 비잔티움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누구인가?
비잔티움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황제로는 단연 비잔티움의 시작을 알린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들 수 있다. 또한 유스티니아누스는 동서 로마를 통일하려 노력했고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편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휘하의 벨리사리우스라는 장군을 질투했는데, 비잔티움 제국 역사상 최고의 장군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불가르족의 학살자'라고 불린 바실리우스 2세(재위 976~1025)는 100명의 포로 중 단 한 사람의 한쪽 눈만 남긴 채 99명을 모두 실명시킨 뒤 본국(불가리아)으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9.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남자만 제위에 오를 수 있었나?
레오 4세의 아내 이레네(재위 792~802)는 남편이 살아 있을 때는 남편을 통해서, 남편이 죽은 뒤에는 그 자신이 직접 황위에 올라 제국을 다스렸다. 또한 콘스탄티누스 8세의 딸 조에(재위 1042)는 3번의 결혼을 하여 3명의 남편을 황제로 올리고 양자도 황제로 올렸으며, 나중에는 여동생인 테오도라(재위 1042, 1055~1056)와 함께 공동 여제가 되었다.

10. 비잔티움 제국이 몰락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인가?
비잔티움 제국 몰락의 결정적 계기는 갓 스물의 술탄 메메드 2세의 콘스탄티노플 침공이다. 10만 명에 육박하는 오스만투르크 군사에 맞서 7천 명의 병력으로 45일간 항전하다 멸망했다. 하지만 비잔티움 제국이 결정적으로 힘을 잃게 된 것은 제4차 십자군 전쟁(1202~1204) 때문이었다. 본래의 목적을 잊고 폭도 무리로 변해 콘스탄티노플을 침략한 십자군에게 받은 상처를 비잔티움은 끝내 회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 비잔티움 제국 천년의 명대사

"내 손으로 직접 심은 양배추를 보여 줄 수 있다면, 그도 권력을 추구하는 데서 행복을 찾는 짓을 단념할 텐데."
20년 이상 황제로 재위했지만 스스로 황위에서 물러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자진 퇴임은 로마 제국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 305년 속세에서 물러나 달마치야 해변의 살로나에 은둔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제위에 복귀해 달라는 막시미아누스의 전갈에 한 대답.

"모든 사람들에게 원하는 대로 믿음을 가질 권리를 부여하노라.
313년에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신앙의 자유를 선포한 콘스탄티누스 1세와 리키니우스의 밀라노 칙령. 많은 사학자들은 그리스도교의 공인을 계기로 로마 제국이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이는 또 다른 서양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저는 결코 제 손으로 이 황후의 의상을 벗지 않을 것이며, 자주색 옷은 가장 고귀한 수의라는 옛말에 따를 것이옵니다."
532년 니카의 반란 때 수도에서 대피하려는 유스티니아누스를 꾸짖으며 테오도라가 한 말이다. 여장부다운 황후의 용기와 결단에 힘입어 유스티니아누스는 반란을 진압하고 전제권력을 확립할 수 있었다. 자주색은 황제의 의복을 상징하는 색이다.

"설사 새라고 해도 우리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809년 불가르족의 포위 공격을 받게 된 니케포루스 1세의 말. 니케포루스 1세는 가혹한 세금으로 민심을 잃고, 바그다드의 칼리프에게 굴욕적인 공납을 강요당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불가르족 정벌을 떠났으나 군대는 적의 함정에 빠져 섬멸당하고, 그 자신은 전사하였다. 그의 두개골은 크룸을 위해 술잔으로 만들어졌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설득한다 해도 우리는 따르지 않을 것이오."
815년, 스투디움의 대수도원장 테오도루스가 황제 레오 5세에게 한 말이다. 아르메니아 출신인 레오 5세는 황제의 자리에 오름과 동시에 제국 내부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성상 파괴를 진행했다. 수도원장 테오도루스는 이 말을 끝으로 곧바로 해임되었고, 새로 임명된 총대주교의 식탁은 경박한 대화, 유쾌한 이야기, 음란한 농담으로 활기를 띠게 되었다.

"옥좌 앞에는 도금된 청동 나무가 솟아 있고, 그 가지에는 역시 도금된 금빛의 새들이 가득 앉아 있다. 옥좌는 땅바닥까지 내려왔다가 갑자기 허공에 높이 솟아오르도록 만들어져 있다."
949년 서방 사절단으로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한 크레모나의 주교 리우트프란트가 여행기에 묘사한 비잔티움 제국 황실의 풍경이다. 당시 비잔티움에 비하면 서유럽은 촌이나 다름없었다. 황제 콘스탄티누스 포르피로게니투스를 알현하는 이 장면에서 비잔티움의 눈부신 화려함에 압도당한 서유럽인의 놀라움을 엿볼 수 있다.

"도시의 성문을 닫고 그 안에서만 지배하라. 그 바깥에 있는 모든 것은 내 것이니."
오스만투르크의 술탄 바예지드가 마누엘 2세 팔라이올로구스에게 한 말. 1391년에 즉위한 마누엘 2세는 선왕과는 달리 의욕적인 황제였으나 그 역시 커져 가는 오스만투르크 세력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술탄의 이 말은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는 비잔티움 제국의 비참한 상황을 보여 준다.

"우리는 이곳을 파괴했고 시간은 도시의 이름을 파괴했다.
술탄의 가신이 된 마누엘 2세는 제국의 영토를 줄이러 떠나는 흑해 원정에 참가하는 모욕을 당한다. 황폐해진 도시를 거칠 때마다 들려오는 투르크 병사들의 자신만만한 대답이다.

"지금 우리 제국에게 필요한 인물은 위대한 바실레오스가 아니라 훌륭한 관리자다."
1425년 임종을 앞에 둔 마누엘 2세가 과도한 야망을 가진 아들 요한네스 8세를 걱정하며 옛 친구 게오르기우스 스프란체스에게 한 말이다. 요한네스는 투르크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 서유럽에 도움을 요청하고 동서 교회의 통합에 서명했으나 이런 행동은 백성의 반감을 사게 되었다. 결국 그의 모든 시도는 실패했고, 제국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인간이 목숨을 걸 만한 명분은 네 가지가 있다. 신앙, 조국, 가족, 주권이 그것이다. 이것들을 위해서는 누구나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대들은 위대하고 고결한 백성들이며, 고대 그리스와 로마 영웅들의 후손이다."
1453년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 팔라이올로구스가 오스만투르크와의 마지막 결전의 날을 앞두고 군대 지휘관들에게 한 연설. 최후의 결전이 벌어진 그날, 콘스탄티누스 11세는 황제의 의복을 모두 벗어던지고 적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뒤 아무도 그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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