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YES24 카테고리 리스트

YES24 유틸메뉴

Global YES24안내보기

Global YES24는?

K-POP/K-Drama 관련상품(음반,도서,DVD)을
영문/중문 으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Korean wave shopping mall, sell the
K-POP/K-Drama (CD,DVD,Blu-ray,Book) We aceept PayPal/UnionPay/Alipay
and support English/Chinese Language service

English

作为出售正规 K-POP/K-Drama 相关(CD,图书,DVD) 韩流商品的网站, 支持 中文/英文 等海外结账方式

中文

Exclusive ticket sales for domestic and international pop artists

Global yesticket

검색

어깨배너

2월 혜택 모음
슈퍼특가
1/6

빠른분야찾기


신용카드 (54x86mm)
신용카드 (54x86mm)
A4용지 (210x297mm)
A4용지 (210x297mm)
dummy
명장면으로 읽는 세계 명작선 1
사이즈비교 공유하기
소득공제 정가인하

명장면으로 읽는 세계 명작선 1

오스카 와일드,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마크 트웨인, 레프 톨스토이, 카렐 차페크 저 외 1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부광출판사 | 2012년 12월 18일 리뷰 총점9.2 정보 더 보기/감추기
  •  종이책 리뷰 (10건)
  •  eBook 리뷰 (0건)
  •  종이책 한줄평 (0건)
  •  eBook 한줄평 (0건)
회원리뷰(10건)
상품 가격정보
재정가 재정가 안내 9,800 4,400원 (55% 인하)
판매가 3,960 (10% 할인)
YES포인트
구매 시 참고사항
구매 시 참고사항
  • 현재 새 상품은 구매 할 수 없습니다. 아래 상품으로 구매하거나 판매 해보세요.

품절

수량
  • 해외배송 가능
  • 최저가 보상
  • 문화비소득공제 신청가능
1/4
광고 AD

명장면으로 읽는 세계 명작선 1

이 상품의 시리즈 (2개)

선택한 상품 0개 / 0 카트에 넣기 바로구매 리스트에 넣기 뷰타입 변경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2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266g | 125*185*20mm
ISBN13 9788990926647
ISBN10 8990926645

관련분류

책소개

목차

저자 소개 (6명)

1854년 영국 지배하의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의사이자 학자였던 윌리엄 와일드와 시인이었던 제인 와일드의 아들로 출생했다. 1874년 옥스퍼드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후, 존 러스킨과 월터 페이터의 영향을 받아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기치 아래 그리스 고전문학에 심취하여 ‘유미주의’ 운동의 새로운 리더가 되었다. 옥스퍼드 대학교 재학 중 이탈리아 라벤나를 여행하며 지은 시 「라벤나」로 뉴디게이트상을 수상... 1854년 영국 지배하의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의사이자 학자였던 윌리엄 와일드와 시인이었던 제인 와일드의 아들로 출생했다. 1874년 옥스퍼드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후, 존 러스킨과 월터 페이터의 영향을 받아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기치 아래 그리스 고전문학에 심취하여 ‘유미주의’ 운동의 새로운 리더가 되었다.

옥스퍼드 대학교 재학 중 이탈리아 라벤나를 여행하며 지은 시 「라벤나」로 뉴디게이트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표어로 하는 탐미주의를 주창했다. 그는 독특한 옷차림과 말솜씨로도 유명했는데 당시 오스카 와일드의 이러한 행태를 조롱하는 희극 [인내]가 발표되어 미국에까지 전해졌다. 그는 이때부터 영국 글램 록의 원조가 되었다. 유미주의의 상징으로 새로운 멋으로써 유행시킨 공작 깃털, 해바라기 장식, 장발, 화려한 벨벳 바지 등을 착용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꿈꾼 서구의 젊은이들을 열광시켰고 자신을 모방하게 만들었다. 오스카 와일드의 유미주의는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1888년에 동화집 『행복한 왕자』를 출판하여 동화 형식의 낭만적 알레고리를 다루는 재능을 보여주었다. 1891년에는 장편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발표하면서 영국 최고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동성애적이고 퇴폐적인 내용으로 도덕적이지 않다는 평단의 악평을 받고 수정하여 출간하게 된다. 미모의 청년 도리언이 쾌락의 나날을 보내다 악덕의 한계점에 이르러 파멸한다는 이야기였다. 비평가들은 그 부도덕성을 비난했지만 와일드는 예술의 초도덕적 성격을 강조했다. 와일드가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장르는 풍속 희극으로, 대표작 『진지함의 중요성』(1895)에서는 빅토리아 시대의 위선을 가차 없이 폭로했다. 1891년 출간한 동화집 『석류나무 집』에 실린 단편 「별아이」가 있다.

그리고 시인이었던 알프레드 더글라스와 애정 어린 만남을 지속하다가 더글라스의 부친인 퀸즈베리 후작의 소송으로 작품의 도덕성까지 문제시되고 동성애자라는 혐의로 기소되어 2년간 중노동형을 선고 받았다. 1895년 동성애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2년 동안 레딩 감옥에 수감되고 국적을 박탈당하면서 작가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가 죽은 지 98년이 지난 1998년에야 영국 국적이 회복되고,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오스카 와일드와의 대화’라는 제명의 동상이 세워졌다.
1865년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존 록우드 키플링은 작가 겸 삽화가이다. 1871년 부모의 곁은 떠나 영국에서 수양가족과 함께 보냈는데, 그때 경험을 바탕으로 훗날 『꺼져버린 불빛』(1891)을 발표했다. 장교 자녀들을 위한 학교 유나이티드 서비시스 칼리지에 재학하던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1881년에는 『학생 시집』을 개인 비용으로 출간했다. 다음 해 인도에서 저널리스트로 일을 시작해, 그곳... 1865년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존 록우드 키플링은 작가 겸 삽화가이다. 1871년 부모의 곁은 떠나 영국에서 수양가족과 함께 보냈는데, 그때 경험을 바탕으로 훗날 『꺼져버린 불빛』(1891)을 발표했다. 장교 자녀들을 위한 학교 유나이티드 서비시스 칼리지에 재학하던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1881년에는 『학생 시집』을 개인 비용으로 출간했다. 다음 해 인도에서 저널리스트로 일을 시작해, 그곳에서 산문, 단편, 스케치, 시 모음집을 발표하고 일약 문단의 명사가 돼, 1889년 영국으로 귀환했다.

1892년 키플링은 미국인 캐롤린 밸러스티어와 결혼하여, 1892년에서 1896년까지 미국 버몬트에서 거주했고, 그곳에서 『정글북 1』을 집필하고 1894년 출간했다. 이어 다음 해에 『정글북 2』 또한 출간되었다. 『정글북』은 정글이라는 원시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 작품으로,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 상상력의 유희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하는 키플링의 최고 걸작이다. 또한 1901년 『킴』, 1902년 『바로 그런 이야기들』이 차례로 완성되었다. 역사와 과학 소설을 포함한 모든 장르의 이야기들이 그의 펜을 거쳐 계속 탄생했는데, 대체로 『킴』이 키플링에게는 가장 장편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그것을 통해 대영제국의 확장 정책을 옹호하는 작가들 중 최고 반열에 올라섰다.

1902년부터 키플링은 서식스에 거주했지만, 활발한 여행을 계속하며 남아프리카에서 잠깐이나마 전쟁을 처음 목도하는데, 그곳에서 보어 전쟁에 관한 우수한 현지 르포 기사를 작성했다. 그러나 그가 직접 체험한 다량의 기사들은, 반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주전론자에 폭력옹호자라는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는 부와 성공을 누리기는 했지만, 초창기 같은 문단의 자부심은 결코 다시 얻지 못했다. 세계 대전의 발발과 더불어, 그의 작품들은 매우 우울한 분위기를 띠게 되었다. 1915년 외아들의 사망 또한 작가가 내면세계로 관점을 돌린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가 잇달아 집필한 단편들, 『피조물의 다양성』(1917), 『차변과 대변』(1926) 그리고 『한계와 재활』(1932)은 최근에야 그 우수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키플링은 계관 시인의 영예를 안는 것을 거절했지만, 1907년 노벨상을 수상한 최초의 영국인 작가가 되었다. 1936년 사망했고 자서전 격인 미완성 유고 『나에 관한 어떤 점』은 그다음 해에 출간되었다.
저 : 마크 트웨인 (Mark Twain,トウェイン,マ-ク,새뮤얼 랭혼 클레멘스 Samuel Langhorne Clemens)
본명은 새뮤얼 클레멘스(Samuel Langhorne Clemens)이다. 미주리주에서 가난한 개척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4세 때 가족을 따라 미시시피 강가의 해니벌로 이사왔으며, 12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 후 인쇄소의 견습공이 되어 일을 배우고, 각지를 전전하였다. 1857년 미시시피강의 수로안내인이 되었는데, 해니벌로 이사한 뒤부터 이 시기까지의 생활과 경험은 후일 작가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본명은 새뮤얼 클레멘스(Samuel Langhorne Clemens)이다. 미주리주에서 가난한 개척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4세 때 가족을 따라 미시시피 강가의 해니벌로 이사왔으며, 12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 후 인쇄소의 견습공이 되어 일을 배우고, 각지를 전전하였다. 1857년 미시시피강의 수로안내인이 되었는데, 해니벌로 이사한 뒤부터 이 시기까지의 생활과 경험은 후일 작가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필명인 마크 트웨인은 강의 뱃사람 용어로 안전수역을 나타내는 '두 길'(한 길은 6피트)을 뜻한다.

1861년에 남북전쟁이 터져 수로안내인 일자리를 잃고 남군에 들어갔으나 2주일 만에 빠져 나와, 관리로서 네바다주로 부임하는 형 오라이언이 권하는 대로 서부행 마차여행에 동행했다. 그 후 광산기사와 신문기자로 일하다가, 만담과 만문(漫文)의 명수 아테머스 워드를 알게 되었고, 또 작가인 F.B.하트와도 사귀었다.

처녀 단편집 『캘리베러스군(郡)의 명물 뛰어오르는 개구리 The Celebrated Jumping Frog of Calaveras County』를 1867년에 출판하게 되고, 야성적이며 대범한 유머로 명성을 얻었다. 또한 유럽과 성지를 도는 관광여행단에 참가하여 여행기를 신문에 연재하였다가, 귀국한 후에 다시 정리하여 『철부지의 해외 여행기 The Innocents Abroad』(1869)를 출판하였다. 이 책에서 역사가 짧은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으로서 그는 유럽의 역사와 예술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그것을 모른다고 해서 스스로를 낮출 필요는 전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마크 트웨인은 다른 어떤 미국 작가보다도 적극적으로 문학의 힘을 발견했고, 미국적 장면과 모국어의 가능성을 발견한 작가이다. 헤밍웨이 "모든 미국 문학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웨인이 성공적으로 미국 생활을 포착해 낸 것은 그의 경력과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남북전쟁 전 미국의 건립 시기에 중부에서 태어난 트웨인은 현대식 국가의 형성기에 살았으며, 서부 개척지의 관습뿐만 아니라 복잡한 동부의 거실이나 회의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미국 및 세계 문학에서 대작으로 손꼽히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사회부적응자인 허크가 도망 중인 노예 짐과 함께 뗏목을 타면서 시작된다. 이 모험은 인종과 미국의 비극적 결함이라는 핵심 문제와 관련된 트웨인의 사회 풍자를 위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그들의 항해가 허크에게는 일종의 통과의례가 된다. 따라서 짐의 인간성을 대변하며, 또 위엄성 및 자유에 대한 주장을 대신하여 지옥에 가려는 허크의 결정은 그들의 모험을 심화시켜준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을 진정한 미국 신화의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톰소여의 모험 The Adventures of Tom Sawyer』(1876) 『미시시피강의 생활 Life on the Mississippi』(1883) 등의 걸작을 썼으며, 특히 『허클베리 핀의 모험 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1884)은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자연아의 정신과 변경인(邊境人)의 혼(魂)을 노래한 미국적인 일대 서사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서 왕궁의 코네티컷 양키』, 『왕자와 거지』, 『불가사의한 이방인』 등은 중세 봉건주의 시대의 유럽을 무대로 하는 통렬한 사회 풍자물이다.
저 : 레프 톨스토이 (Lev Nikolayevich Tolstoy,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손꼽힌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2살과 9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손꼽힌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2살과 9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곧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하게 생활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카프카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1852년 문학지 [동시대인]에 처녀작인 자전소설 중편 「유년 시절」를 발표하여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1853년에는 『소년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시절』을 썼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쟁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크림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56)를 써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1859년에 고향인 야스나야 뽈랴나에 농민 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농민학교를 세웠다.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하여 슬하에 모두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볼가 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1869년 5년에 걸쳐 집필한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873년에는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시작해 1877년에 완성했으며, 1880년대는 톨스토이가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크로이체르 소나타』『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등의 작품이 쓰인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에 비판을 가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 등을 통해 ‘톨스토이즘’이라 불리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사십대 후반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 문제를 천착하면서 작품세계의 분수령이 되는 『참회록』(1879)을 내놓았고, 정치, 사회, 종교, 사상적 문제들에 관해 계속해서 저술하고 활동했다.

또한 술과 담배를 끊고 손수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 구제 활동도 했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고,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과 『크로이처 소나타』(1889)를 통해 깊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으며, 말년까지도 『예술이란 무엇인가』(1898)와 『부활』(1899) 등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그 자신은 백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이었으나, 『바보 이반과 그의 두 형제 이야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 땅이 많이 필요한가?』, 『세 가지 질문』 등의 집필을 통해 러시아 귀족들이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비판하는 문학 활동을 하여, 러시아 귀족들의 압력으로 『참회록』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 금지를 당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필사본이나 등사본으로 책을 만들어서 몰래 읽었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있는 출판사들이 그의 작품을 출판하여 외국에서는 그의 작품이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극단적인 도덕가가 되어 1880년 이후에 낸 일련의 저술에서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고, 육체의 나약함과 사유재산을 비난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저작물에서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저작권을 포기하는 선언을 했고(1891),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출간되자마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번역되었으며, 출판으로 인한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1901년 『부활』에 러시아 정교를 모독하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통해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1886), 『크로이처 소나타』(1889),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 『부활』(1899)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민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나 폐렴을 앓다가 현재 톨스토이 역이 되어 있는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82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임종 때 아내를 보기를 거부한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왜 사람들은……”이었다.

귀족의 아들이었으나 왜곡된 사상과 이질적인 현실에 회의를 느껴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추구했다. 그는 고귀한 인생 성찰을 통해 러시아 문학과 정치, 종교관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고, 인간 내면과 삶의 참 진리를 담은 수많은 걸작을 남겨 지금까지도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다. 인간과 진리를 사랑했던 대문호 톨스토이. 그는 세계 문학의 역사를 바꾼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이자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에까지 영향을 준 ‘무소유, 무저항’의 철학을 남긴 사상가였다. 톨스토이의 작품만이 지닌 문체와 서사적 힘은 지금 보아도 여전하다. 특히 소설 속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이야기의 서사성, 섬세한 인물 심리 묘사 등이 돋보이며,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로 인정받고 있다.
체코의 극작가·소설가. 체코가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 G.K.체스터턴보다 자유롭고, 조지 오웰보다 낙천적인, 체코의 몽테뉴(「데일리 텔레그래프」). 카프카, 쿤데라와 함께 체코 문학의 길을 낸 작가로 체코 SF의 대부로 불린다. 1890년 1월 9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헤미아 북동부 지역에서 태어났다. 명문 아카데미 김나지움을 전 과목 A의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프라하 카렐 대학 철학과에 입학했다. 대... 체코의 극작가·소설가. 체코가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 G.K.체스터턴보다 자유롭고, 조지 오웰보다 낙천적인, 체코의 몽테뉴(「데일리 텔레그래프」). 카프카, 쿤데라와 함께 체코 문학의 길을 낸 작가로 체코 SF의 대부로 불린다. 1890년 1월 9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헤미아 북동부 지역에서 태어났다. 명문 아카데미 김나지움을 전 과목 A의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프라하 카렐 대학 철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베를린과 파리의 대학들을 오가며 수학했고, 미국 실용주의를 수용, 1915년 25세의 나이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체코의 대표적인 일간지 『리도베 노비니』에서 편집자 겸 기고가로서 평생에 걸쳐 활동하였으며 일생에 걸쳐 다양한 주제로 철학적ㆍ풍자적인 작품들을 썼다. 일찍이 현대사회의 병폐에 눈을 돌렸던 그는, 희곡 『R.U.R』(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1920)과 『곤충극장』(1921)을 통해 사회적 병폐를 통렬하게 풍자하였다. 『R.U.R』은 기술의 발달이 거꾸로 인간을 멸망시킬지도 모른다는 점을 경고한 작품으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로봇’이라는 말은 이 작품에서 유래했다. 『곤충극장』은 화가이며 작가인 그의 형 요제프 차페크(1887~1945)와의 공동창작으로, 현대생활의 획일주의·물질주의를 풍자한 걸작이다. 같은 시기의 장편소설 『압솔루트노 공장』(1922)과 『크라카티트』(1924)는 후일의 『도롱뇽과의 전쟁』(1936)과 더불어 SF(과학소설)적 수법으로 현대를 비판하여, 사회적 SF의 선구적 작품이 되었다. 단편 소설집인 『오른쪽-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1929)은 추리소설 형식으로 쓰인 작품이다. 철학소설 3부작인 『호르두발』(1933), 『별똥별』(1934), 『평범한 인생』(1934) 같은 철학적·신비적 작품과 『위경 이야기들』 같은 상상 저널리즘을 구현한 소설도 썼다. 1930년대 후기 작품에는 정체성, 자아, 인간 동기 등에 대한 탐구가 나타나 파시즘과 나치즘을 경고하는 『첫 번째 구조대』(1937), 『하얀 역병』(1937), 『어머니』(1938) 등을 썼다.

작품 활동을 하는 동시에 「나로드니 리스티」, 「리도베 노비니」와 같은 체코의 유력 일간지의 편집자로 일했고, 체코 민주주의와 반(反)파시즘의 선봉장이자 문화적 선각자의 역할을 담당했다. 일곱 차례나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나치스 독일에 저항하는 정치 성향 때문에 끝내 수상자가 되지는 못했다. 독일이 프라하를 점령하기 몇 달 전인 1938년 12월 25일 인플루엔자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저 : 앙드레 지드 (Andr-Paul-Guillaume Gide,앙드레 폴 기욤 지드)
인간 내면에 대한 정직한 탐구를 담은 작품들로, 20세기 프랑스 문단의 대표자로 자리 잡은 소설가. 1869년 11월 22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파리법과 대학 교수인 아버지와 청교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지드는 11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엄격한 교율을 강조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예민하고 신경성 발작이 잦은 학생이라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워했다. 18살때부터 문학에 빠지면서 상징주의의 ... 인간 내면에 대한 정직한 탐구를 담은 작품들로, 20세기 프랑스 문단의 대표자로 자리 잡은 소설가. 1869년 11월 22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파리법과 대학 교수인 아버지와 청교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지드는 11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엄격한 교율을 강조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예민하고 신경성 발작이 잦은 학생이라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워했다.

18살때부터 문학에 빠지면서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하이네를 탐독했고 그리스 신화와 성서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평생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던 사촌 누나 마들렌은 그에게 예술혼을 유발시키는 평생의 동반자였다. 1891년 사촌 누이 마들렌 롱도에게 청혼했지만 거부당하고 그녀에 대한 열띤 사랑을 담은 처녀작 소설 『앙드레 발테르의 수첩』을 처음 발표하고 시인 말라르메가 이끄는 ‘화요회’에서 예술가들과 친교를 쌓는 등 작가로서 첫발을 떼기 시작했다.

그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것은 1893년의 아프리카 여행이었다. 아프리카의 작렬하는 태양과 야성적 풍토는 지금까지 그에게 영향을 미쳤던 엄격한 그리스도교적 윤리에서의 해방을 가져왔으며, 모든 구속에서 풀려난 강렬한 생명력을 향유하는 것이 삶의 길임을 가르쳐주었다. 1893년 북아프리카로 떠난 여행에서 첫 동성애 경험을 하게 되고, 모든 도덕적·종교적 구속과 금기로부터 해방감을 체험하게 된다. 새로운 생명의 기쁨을 끝까지 추구하려는 의지는 지드의 문학의 독특한 출발점이 되어주었다.

1894년 어머니가 죽자 앙드레 지드는 1895년 어릴 적부터 흠모해 오던 연상의 외사촌 누이 마들렌 롱도와 결혼했으나, 그들의 결혼 생활은 오로지 정신적인 관계에 국한된 것이었다. 1896년 라로크 자치구의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시장으로 있으면서 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상의 양식』을 완성했다. 젊음의 열광과 자유의 삶에 대한 고백록인『지상의 양식』은 출간 당시에는 주목을 끌지 못했으나 본능에 충실한 자유의 삶과 종교적인 도덕과의 대립에 대한 주제는 이후의 창작으로 꾸준히 이어졌다.

1909년 친구들과 함께 잡지 『라 누벨 르뷔 프랑세즈』(『NRF』)를 창간했으며, 이 잡지의 창간호에서부터 『좁은 문』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지드가 핵심 멤버로 활약한 이 잡지는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중흥에 기여한 수많은 작가들을 세상에 알리는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사회적 현실에도 점차 눈을 뜨게 되면서 식민주의를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공산주의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또한, 프랑스 문단에 새로운 기풍을 불어넣어 20세기 문학의 발전에 이바지 하였고 그가 유일하게 '소설'이라고 지칭한 『사전꾼들 Les Fauxmonnayeurs』(1926)을 발표함으로써 종래의 소설 관념을 타파하고 새로운 형식과 구성을 시도했다. 사회적 현실에도 점차 눈을 뜨게 되면서 식민주의를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공산주의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앙드레 지드는 『배덕자』,『좁은 문』,『전원 교향악』,『사전꾼들』을 쓰면서 작가의 직무에 몰두하는 한편, 이러한 주제에 대한 갈등을 1926년부터 쓰기 시작한 자서전 『한 알의 밀이 죽지 않는다면』에 담아 위대한 고백 문학 작품으로 남겼다.

또 프랑스 식민주의에 시달리는 원주민의 참상을 여지 없이 폭로한 『콩고 여행 Voyage au Congo』(1926)과 문화적 폐쇄성과 획일성을 맹렬히 비난한 『소련기행 Retour de L'URSS』(1936)으로 사회적 활동을 하기도 했다. 여러 논문에서 유명한 『도스토예프스키론』을 비롯한 외국문학과 프랑스 문학에 대한 활발한 비평활동을 하기도 했다. 1938년 아내가 죽자 사실상 모든 창작을 끝맺고 평생 옹호했던 개인의 자유에 대해 전통의 가치와 도덕과의 공존을 모색했다.

앙드레 지드는 종교와 도덕의 구속과 타율성을 거부하고 진정한 도덕성의 탐구를 통해 새로운 인간 정신의 풍토를 만드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47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문학박사 명예학위를 받았다. 기성의 종교, 도덕의 구속을 거부하고 열정적인 구도자로 평생의 작품 세계를 추구한 끝에 그해 11월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1950년 1939년부터 80회 생일에 이르기까지의 삶의 기록을 담은『일기』의 마지막 권을 출판한 지드는 1951년 82세를 일기로 파리의 자택에서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1891년 첫 작품 '앙드레 왈테르의 수기'를 발표한 이래, 주로 도덕과 욕망 사이의 갈등을 다룬 작품을 발표했다. 『지상의 양식』에서는 앙드레 지드는 전세계 젊은이에게 육체와 정신의 해방 찬가를 보낸다. 가르와 몽테블랑에서 카뮈와 사르트르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욕망을 부정하는 종교와 윤리로부터 해방을 꿈꾸던 세대에게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고 표현하라는 이 책의 호소는 전후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삶이 베풀어주는 기쁨을 최대한 향유하겠다는 그의 문학의 독특한 출발점은 바로 이 책에서 비롯하였다.

『좁은 문』은 그의 대표작으로 육체적인 쾌락과 지상의 행복을 승화시켜 현실적인 '사랑'을 종교적인 '존재'로 창조하거 사랑하는 남녀의 감정이 얼마나 높을 수 있으며, 절대 순수의 경기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19세기 합리주의 사상에 종지부를 찍고 새것을 제시하는 현대 문학의 복음서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외의 작품으로 『앙드레 왈테르의 수기』(1891), 『지상의 양식』(1897), 『좁은 문』(1909), 『배덕자』(1902), 『교황청의 지하도』(1914), 『전원교향악』(1919), 『콩고 기행』(1927), 『탕아귀가』(1907), 『도스토예프스키론』(1920), 『코리동』(1924), 『위폐 제조자들』(1926), 『나르시스론』 등 다수가 있다.
저자 : 샤를루이 필리프
프랑스의 저명한 문학자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많은 고생을 했다. 문학수업을 위해 고향을 떠나 파리에 머물면서 시청의 가스관련 부서에서 일을 하면서도 문학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았다.
역자 : 박정임
경희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여러 여성지의 프리랜스 기자생활을 했다. 현재 일본 치바국립대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 중이며, 기고 및 번역 활동을 하고 있다.

만든 이 코멘트

저자, 역자, 편집자를 위한 공간입니다.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을 남겨주세요. 코멘트 쓰기
접수된 글은 확인을 거쳐 이 곳에 게재됩니다.
독자 분들의 리뷰는 리뷰 쓰기를, 책에 대한 문의는 1:1 문의를 이용해 주세요.

책 속으로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회원리뷰 (10건)

매주 10건의 우수리뷰를 선정하여 YES포인트 3만원을 드립니다.
3,000원 이상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일반회원 300원, 마니아회원 6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eBook은 다운로드 후 작성한 리뷰만 YES포인트 지급됩니다.
클래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됩니다. 리뷰/한줄평 정책 자세히 보기
리뷰쓰기

10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리뷰 총점9.2/ 10.0

한줄평 (0건)

1,000원 이상 구매 후 한줄평 작성 시 일반회원 50원, 마니아회원 1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eBook은 다운로드 후 작성한 리뷰만 YES포인트 지급됩니다.
클래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됩니다. 리뷰/한줄평 정책 자세히 보기
0/50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배송 안내
배송 구분 예스24 배송
  •  배송비 : 2,500원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반품/교환 안내

※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반품/교환 방법
  •  마이페이지 > 반품/교환 신청 및 조회, 1:1 문의,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직수입 음반/영상물/기프트 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 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30%를 부과할 수 있음

    단, 당일 00시~13시 사이의 주문은 취소 수수료 면제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LP상품의 재생 불량 원인이 기기의 사양 및 문제인 경우 (All-in-One 일체형 일부 보급형 오디오 모델 사용 등)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맨위로
예스이십사(주)
대표 : 김석환, 최세라 주소 : 서울시 영등포구 은행로 11, 5층~6층(여의도동,일신빌딩) 사업자등록번호 : 229-81-37000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05-02682호 사업자 정보확인 이메일 : yes24help@yes24.com   호스팅 서비스사업자 : 예스이십사(주)
YES24 수상내역 정보보호 관리체계 ISMS인증획득 개인정보보호 우수사이트
소비자피해보상보험 서울보증보험
고객님은 안전거래를 위해 현금 등으로 결제 시 저희 쇼핑몰에서 가입한 구매안전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서비스가입사실 확인
EQUUS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