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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0년 03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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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672쪽 | 1,148g | 152*225*35mm |
ISBN13 | 9791187056300 |
ISBN10 | 1187056308 |
얼리리더를 위한 5월의 책 : 디즈니 캐릭터 PVC 마그넷 증정
2024년 05월 01일 ~ 2024년 05월 31일
상시
18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소련 체제는 너무 막강하고 단단하게 뿌리내려서 그 그늘 아래 사는 사실상 모든 이들을 마비시켰다(159p).
소련 체제 하의 민중들이 체제에 자발적 복종을 하였는지, 아니면 억압적이고 감시가 일상화된 사회 분위기 하에서 비자발적 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대한 견해는 연구자들마다 다르다. 생각해보면 (1990년 기준) 2000만㎢가 넘는 영토에, 2억9천만에 달하는 사람들의 복잡다단한 생각과 삶의 모습을 하나의 견해로 단정지어 표현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돕스의 ‘막강한 소련 체제하에서 마비된 사람들’이란 견해는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의 소련 민중들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 장의 스냅사진에 가깝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스냅사진 속 마비된 듯한 모습의 민중들이 살아 움직여 막강한 체제를 붕괴시키는 과정’
마이클 돕스는 1991년 12월 최종적으로 붕괴된 이 체제에 균열이 일어난 시점을 12년 거슬러 올라간 1979년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에서 시작한다. 소련은 1968년 ‘프라하의 봄’ 사태에서 잘 보여주듯, 소련이 관리하는 국가들 내에서의 체제에 대한 저항과 개혁 시도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무장 병력을 투입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에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실리적인 도움이 아닌 선전용 도움이 되더라도) 정권을 수립하고 지원하는 것에서도 적극적이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개입은 후자에 속하는 것으로, 향후 이 전쟁이 10년이나 지속되어 외교적, 실리적으로 체제의 부담이 될 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이러한 터무니없는 결정은 언론이 철저히 통제된 상황에서의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비밀스럽고 폐쇄적이고 반대를 허용하지 않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스탈린 집권시절부터 이어온 수십 년째 계속된 비밀스런 크렘린의 정치, 통계 수치에만 반영되는 알맹이 없는 경제 발전과 온갖 비효율이 넘치는 구시대적 생산 방식과 의욕 저하. 이처럼 체제의 동맥 경화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등장한 인물이 바로 고르바초프로 그가 소련 체제 몰락에 미친 영향에 걸맞게 돕스는 자신의 스토리텔링 전체에서 그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그만큼 소련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그의 행보, 정치적 고뇌와 외교적 수완 등이 자세히 묘사되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그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하는 과정, 개혁의 완급조절, 개혁파와 보수파 사이에서의 고르비(고르바초프의 별칭)의 고뇌에 감정이입이 되었다.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태도에 대한 돕스의 날카로운 평가는(크렘린) 정치의 본질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옮고 그름이 늘 상대적이고 모든 것이 최종 결과에 달린, 정치와 도덕 사이의 어슴푸레한 세계에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고르바초프의 운명이었다. 먹고 먹히는 크렘린 정치에서 도덕은 정치인이 감당할 수 없는 사치였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정치적 생존이었다(386p).
공산당 1인자로서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한 주역인 고르바초프의 고뇌가 바로 이것이었다. 보수파가 용인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한다면 보수파의 반대와 체제의 붕괴로 자신이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를 사회주의 체제 ‘안에서의’ 개혁으로 한정짓고자 했다. 하지만, 자신이 불러들인 새로운 시대의 물결은 그 파급 효과가 어마어마했다. 소련 체제 아래에 있는 헝가리, 폴란드, 동독, 리투아니아 등지의 자유와 독립의 열망에 불을 지폈던 것이다. 주변 국가들의 상황은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의 열망을 더욱 강하게 키움과 동시에 보수파들의 쿠데타로 이어지게 된다.
’4부 공산당의 반란‘에서는 공산당의 소련 민중들의 의지에 반한 쿠데타의 실행과 실패의 가정을 아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마치, 비밀 작전을 치밀하고 생생하게 묘사한 첩보 영화를 보는 듯하다. 쿠데타는 허술한 준비와 민중들의 대규모 저항, 믿었던 군의 배신 등으로 허망하게 실패하고 공산당은 결국 역사의 한 장면으로 사라진다. 고르바초프 또한 소련의 대통령이라는 역사적 기록으로만 남게 되는 최초이자 최후의 인물이 되고 만다. 고르바초는 돕스의 표현대로 ‘혁명을 시작했지만 결국 자신이 착수한 혁명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돕스는 이런 과정이 중요하긴 했으나, 공산주의 체제의 몰락 원인을 ‘체제 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공산주의는 어느 한 개인이나 집단에 패배한 것이 아니라... 자멸했다’(596p)는 것이다.
공산주의의 내구력과 신속한 붕괴는 동전의 양면이었다. 대규모 억압, 엄격한 중앙집권,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념, 군사력에 대한 집착 등 체제의 강점이 치명적인 약점으로 바뀌는 시점이 왔다. 볼셰비키는 모든 민족주의와 정치적 반대의 발현을 무자비하게 억압함으로써 공산주의와 소련이 한꺼번에 붕괴하는 조건을 만들었다(595p).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탄생했으며 70년 넘게 유지되어온 소련의 체제는 무자비한 체제의 톱니바퀴를 굴린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지탱되었다. 그러나 그 체제가 자멸하면서 동시에 그 사람들의 존재 이유 또한 사라지게 되었다. 고르바초프의 군사보좌관이자, 쿠데타를 주도한 아흐로메예프 원수는 쿠데타가 실패하고 얼마뒤인 1991년 8월 24일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남기고 자살한다. 체제의 과실을 마음껏 누렸던 한 인간의 허망한 자살은 체제의 자멸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조국이 무너지고 있고, 내가 믿은 모든 것이 파괴되는 상항에서 살 수가 없다. 내 나이와 지금까지의 삶을 고려하면 이제 세상을 떠나도 상관없다. 나는 끝까지 싸웠다(594p).
반세기가 넘도록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규율했던 정치체제는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소련 체제의 붕괴는 인간의 삶에서의 정치체제의 중요성과 정치체제를 이끌고 감시하며 통제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역할이 필수적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
돕스의 3부작 <<1945>> <<1962>> <<1991>> 모두 수작임에 분명하다. 그 중 <<1991>이 가장 두꺼울 뿐만 아니라, 전하는 메시지 또한 가장 무겁다. 원서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생생한 사진들이 내용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일독을 권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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